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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2일(화) 연산군묘, 정의 공주묘,간송 옛집, 김수영 문학관[종료]

작성자서울사람|작성시간22.03.21|조회수838 목록 댓글 21
01. 모임/출발일시 : 4월 12일(화요일) 오후 1시

02. 모임장소 : 지하철 4호선 "쌍문역" 2번 출구 나가기 직전[역내] 


03. 탐방 코스 : 

  "쌍문역"--버스(130번)탑승--하차:정의 공주묘--간송 옛집--연산군묘--김수영 문학관----버스(130번) 탑승--"쌍문역"


04. 걷는거리 : 6km 내외


05. 걷는 시간 : 2.5시간 내외 (휴식시간 포함) <--- 오후 3:30 경 종료 예정 


06. 식사 준비 : 간식으로 대체함 


07. 탐방 준비 : 마스크,식수,간식, 운동화, 모자, 선글라스, 썬크림, 방풍의 등  각자 필요한 대로 

               

08. 탐방 주최 : 서울사람 010-3919-0787 (주최자 휴대폰번호 꼭 저장해 가세요~^^)


09. 난 이 도 : 걷기 난이도는 "하" 입니다.


10. 참 가 비 : 없음(단, 지각시 1,000원 받음)


11.신청양식 : 참가1 / 닉네임 /3차 접종 일자/하고 싶은 말

                  참가신청은 신중히 해주시고, 신청 후 당일 불참하시면 사전에 연락 바랍니다. 

※주요 관련 사진  







1.정의(貞懿)공주(1415~1477) 묘


조선 세종의 딸로 한글 창제의 도우미였던 정의 공주와 그의 남편 양효공 안맹담(安孟聃:1415∼1462)의
묘소와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이다.

안맹담은 세종 10년(1428)에 부마(駙馬:임금의 사위)가 되어 죽성군이 되었고, 세종 14년(1432)에는
연창군에, 세조 3년(1457)에는 원종공신이 되었다.

묘는 정의공주와 쌍분으로, 봉분 2개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으며 봉분 앞에 석등과 4기의 문인석이 있다.
묘역 아래에 세워져 있는 신도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얹은 모습이다. 받침돌의
거북조각과 머릿돌에 새겨진 두마리의 용조각은 매우 뛰어나면서도 정교한 편이다. 비문은 정인지가
지었고 글씨는 안맹담의 넷째 아들 빈세가 썼다.



2. 간송(전형필) 옛집


간송 전형필(1906~1962)은 일제강점기 때 수탈되어 가던 우리 문화유산을 보호, 수집하고 해외에 유출된 문화재를 되찾아오는 등 문화재 수호에 큰 공을 세운 인물로서, "간송의 수집품을 거론하지 않고는 제대로 된
한국 미술사를 논할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많은 국보급 문화재를 지켜낸 바,
100여년이 된
전형필 가옥에는 그의 자취가 많이 남아있다.



3.연산군(燕山君:1476~1506) 묘 





조선시대 제10대 임금인 연산군(1476~1506년)과 왕비였던 거창군 부인 신씨의 묘로, 왕릉보다는
간소하나 
조선시대 전기 능묘석물의 조형이 잘 남아있다.

연산군은 성종 7년(1476) 성종의 큰 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폐비 윤씨이다. 1494년 왕위에
올랐으나 1506년 왕직을 박탈당하고 강화 교동으로 추방되었다가 그 해에 죽었다.

부인 신씨가 연산군 무덤을 
강화에서 현재의 이곳으로 옮겨 달라 청하여, 중종 8년(1513)에 이곳으로
옮기게 되었고, 부인 신씨의 묘,
연산군의 딸과 사위의 무덤이 있으며, 혼유석·장명등·향로석 등 석물이 서 있다.


연산군은 비록 왕을 지냈으나 그 지위가 군(君)으로 강봉되었기에 무덤을 묘라 하였다.




4. 김수영(金洙暎:1921~1968) 문학관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 <시여, 침을 뱉어라>중에서




거짓을 배격하고 구속과 억압을 거부한 시인, 자유시인 김수영.
자유와 사랑을 노래한 우리나라의 대표적 시인 김수영(1921~1968),

그는 1921년 11월 27일, 서울 종로에서 8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 김수영은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예술을 향한 열정을 간직한 청년으로 성장한다.
그 시작은 연극을 통해서였다.
이후 1945년, 광복의 기쁨을 안고 가족과 함께 만주로부터 서울로 돌아왔다.

이듬해 김수영은 <예술부락> 제2집에 시 <묘정의 노래>를 발표하며 자신의 예술적 무대를 연극에서
문학으로 옮기기에 이른다.

김수영의 시에서 한국 현대시 사상 처음으로 시적인 말과 일상적인 말의 차별이 사라졌다.
이것은 시와 삶을 완전히 일치시키려는 김수영의 치열한 노력과 극단적인 정직성이 낳은 결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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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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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서울사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4.07 채송화 1님! 참가자로 변경됨,확인
    부탁드림(맨 아래 댓글 참조)
  • 작성자한유니 | 작성시간 22.04.12 대기합니다(3차접종)
  • 답댓글 작성자서울사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4.12 참석자로 변경됨
  • 작성자서울사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4.12 *참가자(9명):
    서울사람/신미주/재경/대사방/난타/핑크수정/지현이/채송화1/한유니(현재 9명)

    ♧대기자(약간명): <---부득이한 사정으로 불참하는 회원 대신 참석하실 분

    -----------------------------
    *도봉구 소속 전문 해설사에게 의뢰한 관계로, 코로나 수칙상 9명까지만 접수하니, 깊은 양해 부탁드림

  • 작성자서울사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4.12 해설사외 8명(서울사람/신미주/재경/대사방/난타/핑크수정/채송화1/한유니) 참석,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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