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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6(목), 낙산 공원(한양도성)및 동묘 탐방[종료]

작성자서울사람|작성시간22.09.28|조회수474 목록 댓글 6

아래 탐방은 향후 중국어권 국가(2023년:臺灣/2024년:大陸) 방문을

위한 기초 준비의 일환임

 

01. 집결/출발 일시:  2022.10.6(목) 오전 11:00 (주최자는 오전 10:40 경 현장 도착함)

02. 모임 장소 : 지하철 1호선/6호선  "동묘앞 역"10번 출구 나가기 직전 =역내 지하 1층 다이소 앞[사진 1] 


03. 탐방  코스
지하철 1호선/6호선 "동묘앞 역" 10번 출구 나가기 직전(=지하 1층 다이소 앞) -->

마을 버스 (종로 03번 ) 탑승   -----> 종점(낙산 공원)하차---> 자기 소개/중국어 기초 표현 학습(10분 정도)  -->한양도성 관람및 간식 ---> 마을 버스(종로 03번) 탑승/하차(동묘앞 역)--->동묘 공원(관우 사당)
탐방 --->
벼룩 시장 구경 --->오후 1:30 경, 식당(뒷풀이) --->오후 3시경:지하철 1/6호선 "동묘앞 역"탑승/해산  
 
04. 걷는 거리 : 약 4km 


05. 탐방 시간 : 3시간(휴식및 뒷풀이 시간 포함)  *오후 3시경 종료, 해산 


06. 식사[오후 1:30 경]: 아래 식당/메뉴로 식사함 

  1)식당명:옛날 국밥

  2)메뉴: 옛날 국밥(6천원), 뼈 해장국(7천원),쌈 제육볶음(8천원) 등 

           
07. 탐방 준비 : 마스크, 충분한 식수, 간식/행동식, 수건, 운동화, 모자, 선글라스, 썬크림  등 각자 필요한
    대로.

                 
08. 탐방 주최 : 서울사람 010-3919-0787 (주최자 휴대폰번호 꼭 저장해 가세요~^^)
                         

09. 난 이 도 : 걷기 난이도는 下  

10. 당일 식사비:  1만원 이내(위 메뉴 가격 참조, 잔돈 준비)   

     
11.카페 (목걸이) 명찰 패용 부탁드림 (없는 분은 현장에서 개당 1천원에 구매 가능)

   *구입 희망자--->댓글로 의사 표시 부탁드림 
     

12.신청 양식 : 참가1 / 닉네임 / 하고 싶은 말
                 
  *참가 신청은 신중히 해주시고, 신청 후 당일 불참하시면, 활동 전에 댓글/또는 핸드폰 
   010-3919-0787 문자로 연락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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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관련 사진 


[사진 1] 집결 장소[아래 사진]:


지하철 1호선/6호선  "동묘앞 역"10번 출구 나가기 직전 =역내 지하 1층 다이소 앞 




[사진 2] 낙산 공원 안내도 
 
 
 
[사진 3] 낙산 공원의 한양도성 위에서 바라 본 서울(종로구 일대) 풍경 
  


한양도성이 처음 완공된 것은 약 620년 전이다. 태조 5년(1396) 음력 1월 9일부터 2월 28일까지 49일 간, 이어서 8월 6일부터 9월 24일까지 49일 간, 모두 98일 동안 전국 백성 19만 7천 4백여 명을 동원하여 쌓았다. 전체 공사구간(총 5만 9,500척)을 600척씩 97구간으로 나누고 각 구간을 천자문 순서에 따라 이름 붙인 뒤 군현(郡縣)별로 할당하였다. 태조 때 처음 축성할 당시 평지는 토성으로 산지는 석성으로 쌓았으나, 세종 때 개축하면서 흙으로 쌓은 구간도 석성으로 바꾸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성벽 일부가 무너져 숙종 때 대대적으로 보수 · 개축하였으며 이후에도 여러 차례 정비하였다. 성을 쌓을 때에는 일부 성돌에 공사에 관한 기록을 남겼는데, 태조 · 세종 때에는 구간명 · 담당 군현명 등을 새겼고, 숙종 이후에는 감독관 · 책임기술자 · 날짜 등을 명기하여 책임 소재를 밝혔다.

한양도성은 근대화 과정에서 옛 모습을 상당 부분 잃어버렸다. 1899년 도성 안팎을 연결하는 전차가 개통됨에 따라 먼저 성문이 제 기능을 잃었고, 1907년 일본 왕세자 방문을 앞두고 길을 넓히기 위해 숭례문 좌우 성벽이 철거되었다. 이어 1908년에는 평지의 성벽 대부분이 헐렸다. 성문도 온전하지 못하였다. 소의문은 1914년에 헐렸으며, 돈의문은 1915년에 건축 자재로 매각되었다. 광희문의 문루는 1915년에 붕괴되었고, 혜화문은 1928년에 문루가, 1938년에 성문과 성벽 일부가 헐렸다. 일제는 1925년 남산 조선신궁과 흥인지문 옆 경성운동장을 지을 때에도 주변 성벽을 헐어버리고 성돌을 석재로 썼다. 민간에서도 성벽에 인접하여 집을 지으며 성벽을 훼손하였다. 해방 이후에도 도로 · 주택 · 공공건물 · 학교 등을 지으면서 성벽이 훼손되는 일이 되풀이되었다.

한양도성의 중건은 1968.1.21 사태 직후 숙정문 주변에서 시작되었고, 1974년부터 전 구간으로 확장되었다. 하지만 일단 훼손된 문화재를 완벽하게 회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과거에는 단절된 구간을 연결하는 데에만 치중하여 오히려 주변 지형과 원 석재를 훼손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서울시는 한양도성의 역사성을 온전히 보존하여 세계인의 문화유산으로 전승하기 위해, 2012년 9월 한양도성도감을 신설하고, 2013년 10월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한양도성 보존 · 관리 · 활용 계획을 수립하였다.

 
한양도성은 2014년 현재, 전체 구간의 70%, 총 12.8km(2014년 기준) 구간이 남아있거나 중건되었다





[사진 4] 동묘[東廟] <----東關王廟를 줄인 말




  중국의 장수인 관우(關羽)의 영을 모신 묘 가운데, 서울 종로구 숭인동에 있는 사당.
  임진왜란 때 관우의 혼이 때때로 나타나 조선과 명나라 군을 도왔다 하여,
명나라 신종(明 神宗: 1563 ~ 1620 , 제14대 황제)의 명에 따라 건립,1601(선조 34)년에 준공되었다.
  단층 정자형(丁字形)의 기와지붕 집으로, 보물 제142호로 지정되었다.
  관우(關羽)의 아래 서울 소재  4개 사당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수 년간 수리하여 최근 새로 문을 열었다.




관우(關羽)의  서울 소재 4개 사당


  남대문 밖에는 동묘(1601년)보다 먼저 생긴 남관왕묘(南關王廟,1598년)가 있었으며, 고종 때에는 북관왕묘(北關王廟)와 서관왕묘(西關王廟)를 지었다.
 남관왕묘(南關王廟, 후에는 개인 소유로 변경됨)는 1979년 동작구 사당동으로 옮겨졌고, 북관왕묘(北關王廟)와 서관왕묘(西關王廟)는 조선총독부가 철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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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유주 | 작성시간 22.09.29 참석합니다.
  • 작성자보니 . | 작성시간 22.09.30 참가 신청합니다
  • 작성자천산천지 | 작성시간 22.10.04 즐거운 하루들 되세요,
  • 작성자헤도네 | 작성시간 22.10.05 참석합니다.
  • 작성자서울사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10.07 참석자(14명):
    서울사람/사와/심송/남양주힐스등 6명/유주/보니/쑥향/꽈후즈/헤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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