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이게 그 맛이야
― <삼양1963> 시식 후기
나는 솥에 들어가는 것이라면 빨래와 쇠죽 빼고는 다 먹는다.
말 그대로 잡식성인데, 특별히 편식을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무엇이건 한 번 꽂히면 그것만 찾는다.
특히 빵, 라면, 국수 등의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는데
어느 집 자장면이 맛있다 하면 먹어보고 마음에 들면 그 집에만 간다.
이처럼 먹는 것에는 그 음식마다 단골집이 있어 그 곳만 찾는다.
라면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또래들 다 그렇겠지만, 처음 먹은 것이 <삼양라면>이다.
다른 라면이 없어서도 그랬지만 여러 종류가 출시되어도
삼양라면에 맛이 들어 그것만 먹었다.
그러다가 구봉서와 곽규석의 꼬임(?)에 넘어가 안성탕면을 꽤 오랫 동안 먹었고
그리고는 줄곧 '사나이 울리는' 신라면이다.
수많은 라면 중에 오로지 신라면만 먹었다.
그러는 와중에 삼양라면이 자취를 감췄다.
많이들 알고 있는 저 80년대 후반에 있었던 우지파동.
쇠기름의 원료가 되는, 수구레와 기름이 붙어 있는 쇠가죽을 수입하여
거기서 기름을 추출하여 식용 쇠기름으로 만들어 면을 튀겼는데
'공업용기름'에 튀겼다는 누명을 쓰고 삼양라면이 퇴출되었다.
이후 삼양라면도 다른 라면과 같이 식물성 기름으로 튀겼단다.
그러니 맛이 전혀 다를 수밖에.
게다가 '공업용기름'이란 오명까지 쓰고 있었으니.
식용 쇠기름이어 인체에 무해하다는 연구 결과도 무용지물이었으니까.
검찰에 의해 구속되는 삼양식품 관계자의 수갑을 찬 모습
그리고 언론의 호들갑으로 '삼양라면 = 공업용기름'만 뇌리에 박혔다.
아무튼 검찰과 언론의 공조가 그렇게 라면 판도를 바꿔버렸다.
그 사건을 수사 지휘한 김기춘이 농심의 고문으로 갔대나 어쨌대나……
그런데 다들 알고 있듯이 몇 년의 재판 끝에 삼양식품은 무죄로 결론이 났지만
이미 삼양식품은 곤두박질 친 후였다.
그런 삼양식품이 불닭볶음면으로 기사회생하더니
이달 초에 라면이 처음 나왔던 1963년을 기억하며
<삼양1963>이란 제품명의 우지로 튀긴 라면을 출시했다.
이미 여러 언론에서 보도를 했는데,
※ 관련 기사(2) 보기 → https://blog.naver.com/lby56/224079360252
※ 관련 기사(1) 보기 → https://blog.naver.com/lby56/224072995297
보도를 듣자마자 그 시절의 삼양라면 맛이 그리워
슈퍼와 편의점을 돌았지만 부천에는 아직이었다.
지난 목요일, 드디어 <삼양1963>을 부천 이마트에서 구입했다.
4개 들이 두 봉지를 샀다.
오자마자 뜯어 두 개를 끓였다.
유투브에는 '라면 맛있게 끓이는 법'이라고 온갖 레시피가 올라와 있지만
가장 맛있게 끓이는 방법은 라면 봉지 뒷면에 인쇄되어 있다.
그것 대로 따라하면 된다.
인덕션 위에 냄비 - 물이 끓기를 기다렸다가,
기다리는 동안 이렇게 미리 준비를 해 놓고,
물이 끓으면 면과 액상 스프를 넣고 4분 더 끓인다.
그리고 불을 끄고 분말 스프를 넣고(더 끓일 필요 없이) 잘 저어준다.
(이때 나는 달걀도 하나 풀었다.)
김치 반찬에 밥 반 공기 - 나는 잘 먹으니까.
끓일 때 냄새부터가 달랐다.
안성탕면, 진라면, 신라면과는 다른 냄새.
다만 그것이 내가 예전에 먹던 삼양라면 냄새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미 후각 기억은 가물가물하니까.
면이 불었는지 탱탱한 건지 구분이 안되었지만
내 입맛에 맞았다.
참 맛나게 먹었다.
그리고 국물.
역시 라면의 뒤끝은 국물에 말아먹는 밥이다.
확연하게 느껴졌다.
그래 이게 그 맛이지.
이게 라면 국물이지.
아마도 식물성 기름에 튀긴 것만 먹다가
쇠기름(우지)에 튀긴 면을 먹으니 전혀 다른 맛을 느꼈으리라.
그것도 면을 먹을 때보다 밥을 말았을 때 더 강하게 느껴진다.
라면 국물을 남겨 버린다?
그것은 바로 구속이라 했던가.
<라면국물 + 밥 = 국룰>이라 했던가.
<삼양1963>을 끓이며 다른 냄새를 느꼈지만
면을 건져 먹을 때에는 크게 느끼지 못한 맛의 차이는
바로 국물과 밥이었다.
내가 예전에 먹었던 그 맛 그대로였다.
혼자 중얼거렸다.
"아직 미각은 솨라있네."
아마도 앞으로는 쭈~~~욱 <삼양1963>만 먹을 것 같은 느낌.
왜?
맛있으니까.
마시쓰니까?
아니,
마디쓰니까.
― <삼양1963> 내돈내산 후기 끝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역삼남 작성시간 25.11.18 역시 글귀가 예사롭지가
않으셨습니다.
반갑습니다.^^ -
작성자낭주 작성시간 25.11.18 부천 이선생님이 아니라
부천 이박사님이 가끔
들려주셔 이 날은 시니어 게시판 경축일 이지요.
감칠맛나게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부천이선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5.11.18 과찬의 말씀을~~~
고맙습ㄴㅣ다.
^(^ -
작성자한스짱 작성시간 25.11.18
부천이선생님 선배님
안녕하세요~^^
오늘 같이
쌀쌀한 날씨에
라면 이야기를
열거하시니
라면이 급 땡기네요~^^
라면 국물이~국물이
끝내줍니다~이미지 확대
-
답댓글 작성자부천이선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5.11.18 오우, 예~~~!
언제 분식집에 가서 마주 앉아 라면을~~ 김밥도 두어 줄.
ㅎㅎㅎㅎㅎ
정성이 담긴 댓글,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