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누구는 말씀하셨습니다.
감정과 사고, 직관과 감각 등의 네 가지를 구사하면서
그 방향을 외적이거나 내적으로 향한다고요~
그 네 가지는 외부 세계에 대한 인식과 정감일 것 같고
아무튼
젊은 청춘 시절 아무 근거 바탕 없이 스스로 생각했었던
기억들을 더듬어 보면
사랑하라~
즐거워하라, 기뻐하라, 생명이어라~
이런 말을 수없이 되새겼던 걸 보면
아마 어쩌면
그만큼 내면에서 고통이 함께 하면서 극복해야 할 상황이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언젠가 또~
참된 앎이란 어쩌면 감흥이 동반된 사고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은데,
이 또한 지금도 유효하게 느껴지곤 합니다.
결국 이런 것들은 엘랑비탈 혹은 리비도의 흐름으로 응용해도
무방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청춘~
조수에 떠밀려 멀어져 가는 청춘이라는
희미하면서도 뚜렷한 추억의 조각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면서
이제 시니어 노년 시대에 새롭게 되새겨 떠올릴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여겨지기에 한 두 글 긁적거려 봅니다.
여담으로
초년 시절 그 어느 곳에서 따오지 않고 스스로 떠올랐던 그
많은 생각들 중 한 두 가지를 보면
스스로 독존으로 동일성이 성립할 수 있을까?
말하는 자 알지 못하고, 아는 자 말이 없다...
아니, 진리는 말로 표현될 수 없는 면이 있구나~
사고와 감정~
아마 어떤 면에서
사고가 잘 못 되면 정신증이 되고
감정이 잘 못 되면 신경증이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감정이 동반되지 않은 사고는 생명력이 결여된 석화된 사고로
생화가 아닌 조화이겠지요.
생각하면서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이것이 진정한 철학적 취미 생활이지 않을까 싶어요~
엘랑비탈과 리비도의 원활한 흐름 속에서
사랑하고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생명이어라~~~~
칸트 순수이성비판의 첫 장을 펼치면서~~~ㅎㅎ
https://www.youtube.com/watch?v=-HevAHIYZI4&list=RD-HevAHIYZI4&start_radio=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