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6분전, 전쟁터에서 갓 돌아온 블랜포드 중위는 그랜드 센트럴 기차역 시계탑 아래를 서성이고 있었다.
잠시후 비록 본적은 없지만 편지로 끊임없이 자기를 격려해준 한 여인이 붉은 장미를 가슴에 꼽고 나타나기로 되어 있었다.
그 여인과의 만남은 참으로 우연이었다.
플로리다 훈련소의 군대 도서관에서 블랜포드 중위는 서머셋 모옴의 <인간의 굴레>라는 책을 빌린 일이 있는데 그 책에 여성의 글씨체로 깨알같이 쓰여진 섬세한 감상문을 보고 도서관 장서표의 이름을 알아서 뉴욕의 전화번호부에서 그녀의 주소를 알아냈는데 그 사람은 홀리스라는 아가씨 였다.
블랜포드는 뉴욕에 사는 그 아가씨에게 편지를 보냈고 그녀도 답장을 보내왔다. 그런데 그녀는 아무리 사정을 해도 사진을 보내지 않고 그때마다 '만일 당신이 나에 대한 감정이 진실한 것이라면 내 용모는 아무 상관이 없겠지요.' 라는 답장만 보내왔다.
여섯시 1분전, 블랜포드의 심장은 마구 고동쳤다. 그 때 한 여성이 블랜포드 쪽으로 걸어왔다. 연두색 정장 차림의 그녀는 몸가짐은 가늘고 늘씬했으며 금발머리가 어깨까지 물결치고 있었다.
그녀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 절 따라오시겠어요 중위님? "
자제력을 잃고 블랜포드 중위는 그녀를 향해 한 걸음 내 디뎠다. 그러나 그 순간 그는 그 아가씨 바로 뒤에 붉은 장미꽃을 꽂은 홀리스 양을 발견했다. 블랜포드의 얼굴은 실망으로 얼룩졌다. 블랜포드보다 두 살 더 많은 서른 살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언뜻 보기에 이 여인은 마흔 살은 넘어 보였고 몸집은 크고 살이 찐 키가 작은 여인이었다.
연두색 옷을 입은 아가씨는 그 사이 재빨리 걸어가 버렸다. 블랜포드는 처녀를 따라가고 싶은 욕망이 강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래 이것은 사랑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 끊임없이 용기를 준 이 여인과 사랑보다 더 귀한 우정을 키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블랜포드는 정중하게 홀리스에게 말을 건넸다.
"홀리스 양이시죠? 제가 브랜포드 중위입니다. 저와 저녁을 드시지 않겠습니까? "
그러자 여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 도대체 난 이것이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군요. 방금 지나간 연두색 옷을 입은 처녀가 나더러 이 장미꽃을 꽂아 달라고 부탁했다오. 그리고 젊은이가 내게 식사초대를 하면 자기는 저 건너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겠노라고 전해달라고 하더군요. 그녀는 이것이 일종의 시험이라고 합디다. 나도 두 아들을 군대에 보냈다오. 그래서 기꺼이 이 일을 맡았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