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라 쏘렌트로 “Torna a Sorrento”
1900년대 초 이탈리아 바질리카타 지방은 오랜 가뭄으로 인하여 큰 피해를 보고 있었다.
이탈리아 수상은 재해의 현장을 순방하는 길에 소렌토의 임페리얼 호텔에 묵게 되는데,
당시 소렌토에는 훌륭한 호텔은 있었지만 우체국이 없었기 때문에 당시 소렌토시장을
역임하고 있던 호텔 주인 트라몬타노는 수상에게 우체국을 하나 세워줄 것을 청원했다.
수상은 그의 청원을 받아들였고, 시장은 쿠르티스 형제에게 수상이 우체국을 세워주겠다고
하는 약속을 잊지 못 하도록 즉시 노래를 하나 만들도록 요청 했다.
두형제는 소렌토의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호텔의 발코니에서 불과 몇시간 만에 노래를 만들고,
나폴리의 어느 소프라노를 데려다가 수상이 소렌토를 떠날 때 부르게 했다고 한다.
몇 년이 지난 후 이 곡은 한 축제경연에 참가했는데 이를 계기로 사람들의 입가에
불리어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세계적인 노래로 변하고 말았다고 한다.
아름다운 저 바다와 그리운 그 빛난 햇빛
내 맘속에 잠시라도 떠날 때가 없도다.
향기로운 꽃 만발한 아름다운 동산에서
내게 준 그 귀한 언약 어이하여 잊을까
멀리 떠나간 그대를 나는 홀로 사모하여
잊지못할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노라.
돌-아오라 이곳을 잊지말고
돌아오라 소렌토로 돌아오라.
이 노래가 나폴리의 피에디그롯타 가요제에 첫 선을 보였을 때, 관중들은 모두 넋을 잃고 말았다.
단순한 ‘우체국 신축 청원가’에서 세계적인 명곡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이 때는 자르나델리 수상이 이미 세상을 떠난 다음이고, 소렌토에는 이미 우체국이 세워져 있었다.
레몬 향기와 오렌지 나무로 가득 찬 정원의 도시 소렌토.
세계적인 칸쪼네와 함께 낭만이 넘쳐흐르는 소렌토.
눈이 부시도록 찬란한 지중 햇살의 소렌토!
그러나 진정 이곳은 그런 도시만은 아니었다.
100년 전 바로 이곳에선 슬픔의 이별 눈물을 바닷가에 뿌리며 이민선이 떠났던 것이다.
그러기에 소렌토는 그 아픔과 슬픔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도시이기도 한 것이다.
이탈리아는 세계 제1위의 이민자를 송출한 나라로 1876년부터 1976년까지 1세기 동안
2500만 명이 고국을 등지고 일을 찾아 미국, 캐나다, 아르헨티나 등으로 떠났는데,
특히 1차 대전이 끝난 후인 1913년 한해에만 87만 명이 떠났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이민선은 주로 나폴리 항구와 바로 이곳 소렌토 항에서 떠난 것이다.
고국을 떠나는 이민자의 슬픔과 아픔.
공항의 닫히는 문을 “철문”이라고 부르는데 이유는 그곳에 들어가면 다시금 나오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당시 쿠르티스 두 형제가 이런 이민선을 생각하고 “돌아오라 소렌토로”
노랫말을 지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떻든 이 노래가 당시 고국을 떠나는 이민자들의 마음을
저미게 하였고, 애창을 하도록 하였을 것이다.
전 세계 흩어진 칸쪼네의 나라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애창곡이 세계적인 유명 곡으로
탈바꿈한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리라.
"돌아오라 소렌토로"는 감미로운 서정적 낭만의 노래로 부르기보다 역사의 뒤안길에
서려있는 아픔을 생각하며 부를 노래인 것이다.
"어느해 제가 우리까페 년말 송년회에서
이노래 연주를 하게 되었는데
그날따라 음향설치 준비에 시간이 부족해서 리허설을 못했답니다.
항상 긴장되는 부분이 노래소리 키가 맞게 나와는데 하는 불안감이 조금있었요
노래는 조금 낮아도 높아도 따라부르면 되죠
돌아오라 쏘렌토로 이노래를 연주를 하는데 소리높이가 맞지를 않는다
그러기나 말기나 하모니카를 불렀는데~~힘들고 이상하고
나중에 음향담당께서 알아차리고는 반주기를 꺼주시더라구요
반주기없이 노래던 악기던 불면 힘들잖아요
그렇게 아쉽게 마쳤는데
며칠후 개띠방 유근선배님께서 이노래 동영상을 하모니카방에 올려주셔서 깜짝놀랐던
기억이 추억이 있어요
열어보니 선배님께서 제가 보통 불러서 파일올린걸 다운받어셔서 영상을 만드셨더군요
넘감사하고
그날의 감동으로 아쉬움이 가시며 가슴뿌듯한 그런 추억이 있습니다
까맣게 잊고 있다 오늘 세삼스레이 생각이 떠오르네요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요즘 파일이 저작권이라고 안올라가는데 이곡은 올려보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