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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千曲 0293 | 춘수] 뜨거운 안녕 - 쟈니리

작성자춘수|작성시간22.11.09|조회수573 목록 댓글 1

쟈니리의 첫 독집은 지금껏 중장년 세대의 애창곡으로 사랑받는 <뜨거운 안녕>을 처음 발표한 음반이다. 이 음반은 나오자마자 품절되며 35만 장이 팔려나간 1960년대의 베스트셀러였다. 또한 <사노라면>의 원곡 <내일은 해가 뜬다>도 수록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뜨거운 안녕>은 잡지 「아리랑」에서 수여한 독수리상을 비롯해 각종 언론의 가요상을 쟈니리에게 안겨줬다. 유명세를 탄 쟈니리는 음악감상실 쎄시봉과 뒤세네에서 열렸던 이종환의 「한밤의 음악편지」 공개 방송에 단골 출연했다.

이 노래가 발표되고 얼마 뒤, 인천에서 어느 연인이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비관하여 동반자살을 하였는데, 유서(遺書) 대신 ‘뜨거운 안녕’ 가사를 적어놓고 숨을 거두어 세인(世人)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이 노래는 더욱 유명세를 탔습니다. 당시로는 꿈의 수치인 35만장이라는 경이적인 판매고를 올렸습니다.

그 여세로 1967년에 후속음반을 발표하였으나, ‘뜨거운 안녕’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게 남아 그 벽을 넘지 못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훗날 가수 '전인권'이 불러 크게 히트한 ‘사노라면’의 오리지널 곡 ‘내일은 해가 뜬다’가 쟈니 리의 목소리로 그 음반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후일담은 차중락 최고의 히트곡인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쟈니 리'가 부르기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실연의 아픔을 겪고 있는 차중락에게 선뜻 양보하였다 합니다. 그 역시 같은 병을 앓고 있었기에 상련을 느꼈을 것으로 짐작되죠.

만주에서 태어나 6·25때 단신으로 월남하여 고아원을 전전하며 삶을 이었던 소년 이영길. 그 소년은 미국인 양아버지를 만나 미국에까지 가는 행운을 얻은 듯했으나, 합법적인 입국이 아니어서 쫓겨 와야만 했고, 쟈니 리라는 가수가 되기까지 우리의 현대사와 궤를 같이하는 질곡의 생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 잡초와 같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팔순을 넘긴 지금도 그는 무대를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쟈니리

춘수


또 다시 말해주오
사랑하고 있다고
별들이 다정히
손을 잡는 밤

기어이 가신다면
헤어집시다
아프게 마음새긴
그 말 한마디

보내고 밤마다
울음이 나도
남자답게 말하리다
안녕이라고

뜨겁게 뜨겁게
안녕이라고

또다시 말해주오
사랑하고 있다고
비둘기 나란히
구구 대는데

기어이 떠난다면
보내드리리
너무도 깊이 맺힌
그날 밤 입술

긴긴 날 그리워
몸부림 쳐도
남자답게 말하리다
안녕이라고

뜨겁게 뜨겁게
안녕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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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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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인강 | 작성시간 22.11.09 젊은 시절 저의 18번 노래였어요ㆍ
    지금도 노래방 반주로 노래하면
    키가 맞아요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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