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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힐 동호회

나의 인생 이야기ㅡ 군시절 에피소드 제14화

작성자다저스|작성시간26.05.26|조회수108 목록 댓글 2

나는 화랑에서는 불과 몇 개월 근무하지 않았다. K 대위도 내가 떠난 후 소령으로 진급하자 사단 작전처로 이동했다. 박병남 중위도 내가 떠난 후 1대대 작전장교로 이동해 갔다.

화랑에 있는 동안 매화막사에 있는 3사관학교 출신 김규동 소위와는 거리관계와 그의 과묵한 성격으로 인해 친분을 돈독히 나누지 못했다. 대신 옆 소대장인 박병남중위와는 가까이 지냈으나 그는 특이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진짜 영어공부를 하는지는 모르지만 항상 TIME 지를 손에 끼고 있었다. 그는 또 원래 GOP 부대는 술 반입을 못하게 되었지만, 중대 인사계나 선임하사를 시켜 천도리에서 소주를 몰래 구해 소대 회식을 자주 시켰다. 1소대 회식 때는 나도 참여해 노래를 한 두곡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박중위는 뽕짝조의 옛 노래를 모르는 노래가 없을 정도로 일가견이 있었다. 나도 어지간한 옛 노래를 알고 있었지만, 그는 내가 도저히 알 수 없는 옛 노래도 기가 막히게 불러댔다.

나중에 어떤 1소대원이 나에게 귀띔을 해 주었다. 그는 경남 남해가 고향인데, 홀어머니 슬하에서 외롭게 자랐고, 그의 어머니는 주점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 나갔다 한다. 그러다보니 살림방이 붙어 있는 주점에서 매일 들려오는 노래들을 하도 듣다보니, 귀에 녹음이 되어 모르는 뽕짝이 없을 정도가 되었던 것이다.

박중위는 회식 분위기가 고조 되면, 눈에 약간 물기를 머금고, 먼 곳을 바라보며 아주 슬픈 일본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아마 고향 남해의 그가 살았던 주점에서 있었던 슬픈 애환과 삶에 지친 어머니를 그리는 노래인 것 같았다. 그 노래는 지금 생각하면 일본의 국민가수인 미조라 히바리가 1966년 불러 대히트를 친 일본 엔카의 대표곡인 가나시이 사케(슬픈 술)인 것 같다.

박중위는 제대한 뒤 소식을 들어보니, 대령으로 전역해 모 대학에서 군사학을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지금은 은퇴해서 군인연금으로 노후를 보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중대장인 K 대위는 성동고를 나온 약간 내성적이고 얌전한 분이었다. 그의 부인은 초등학교 교사여서 내외간에 떨어져 생활했다. 내가 연대본부에 일이 생겨 천도리 마을을 들렸을 때 다방의 레지 한명이 글래머한 자신의 수영복사진과 K대위에게 한번 놀러오라는 편지를 중대장에게 전달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나는 화랑에 와서 어김없이 그 사진이 든 편지를 최우선적으로 중대장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는 욕망을 참지 못하고 대대장에게 핑계를 대고 그 다음날 바로 천도리에 가서 하루 밤 자고 돌아 왔다. 그는 육사 25기였으니까 당시 나이를 감안하면, 다방 레지의 수영복 사진을 보고는 도저히 정상적인 근무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K 소령은 사단 작전처에 잠시 있다가 그 해 처음으로 출범한 유신사무관제도 1기 선발에 응시하여 군을 전역하고 감사원에 근무하기 시작했다.

 

K씨는 고위직인 감사원 감사위원에서 은퇴한 이후 분당에서 살고 있는데, 7, 8년 전 전화통화를 한번 한 바 있다. 그 때 그는 나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는 최전방 화랑에서 정상적이고 보편적 인간생활을 영위할 수 없었던 그 때의 엄혹한 상황을 지워버리고 싶었던지, 그의 기억의 공간에서 그 시절에 만났던 사람들에 관한 기억이 그다지 선명하지 못 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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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다저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5.26 new 아이고 군원로님을 만나 뵈었네요. 언제 한번 만나기를 바랍니다ㅡ 다음 6월 팝힐방 정모에 한번 나오세요ㅡ 거기서 만나면 됩니다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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