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48]
방책선 부대는 술 반입(搬入)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실탄이 지급되기 때문에 총기사고 우려 등 정신적인 긴장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술이 귀했다. 술을 구경할 수 있다면, 결혼한 선임하사들이 마을로 외출, 외박 후 귀대할 때 술 몇 병을 숨겨 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제대를 앞둔 고참 병사들은 제대 회식이나 그 밖의 극히 중요한 행사시 마실 술을 보관하기 위해 술을 땅에 비밀리에 묻어놓았다. 만약 벙커에 보관하다가는 금세 도둑맞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다. 그만큼 술이 귀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특별한 행동이었다.
그런데 땅에 묻어놓을 때도 혹시 누가 훔쳐 갈까 두려워 찾기 아주 어려운 장소에 묻어 놓기 때문에 술 지도를 따로 만들어 놓아야 할 정도였다. 그래서 전방에서는 “피 같은 술”이라고 하면서 술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야단이 났다.
[에피소드49]
방책선 근무자와 근무자간의 입을 통해 인접 연대에서 들려온 놀라운 소문이 있었다. 군대에서의 소문은 입과 입을 통해서 금세 퍼지며 대체적으로 사실인 경우가 많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았다. 3사관학교 출신 소대장 한명이 우리 연대와 인접된 52연대 방책선 경계근무 소대장으로 근무했다. 그런데 그 소대장은 평소에 소대원들을 너무나 비인격적이고 가혹하게 다루었기 때문에 소대원들의 원한이 뼈에 사무쳤다. 그러다가 불행히도 더 이상 견디다 못한 소대의 고참병들은 어느 날 그를 제거할 무서운 음모를 꾸미기에 이르렀다.
방책선 부대는 야간의 경계 근무 시 적과 아군의 식별을 하기 위해 암구호를 사용했다. 가령 상대방을 향해서 사전에 약정된 암구호로 “xxx”하고 부르면 상대방은 아군이면 “xxx”이라는 대답을 해주는 방법이었다. 암구호는 매일 해지기 전에 사단 정보참모실로부터 만들어져 각 예하부대에 유선으로 전달되었다. 육군의 규정은 초병이 야간 경계 근무 시 암구호에 상대편이 불응하거나 엉터리 암구호로 대답할 때에는 사살해도 책임이 없다고 되어있다. 그러나 통상 소대장이 순찰 시 자기의 목소리를 병사들이 잘 알기 때문에 병사들이 검문하려고 하면, “나야 나” “소대장이다” 하며 대답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소대의 고참병들은 음모를 꾸밀 때 이점을 착안하여 합법적으로 소대장을 제거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치밀하게 준비한 그들은 마침내 밤이 되기를 기다려 작전을 실행에 옮겼다. 경계병이 소대장에게 암구호를 불렀을 때 소대장은 통상 하는 행동대로 “나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준비된 수류탄과 개인화기는 소대장을 향하여 불을 뿜었다. 그는 제대로 비명한번 지르지 못한 채 부하들에 의해 완전 폭사 당했다. 사건이 일어난 후 사단 보안대와 헌병대에서 현장에 출동하여 철저히 조사했으나, 소대장을 죽인 병사들을 처벌할 법적 근거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사건은 경계규칙에 의한 완전 합법적인 범죄였기 때문이다.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는 경우였다.
그러나 죽은 자의 피가 얘기 하는 법, 이 소문은 전 사단 지역에 조금 씩 조금 씩 퍼졌다. 나는 이 소문의 사건을 통해서 인간의 죄성(罪性)의 끔찍한 모습에 섬뜩함을 느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월남전에서도 전투 중 아군에 의해서 죽는 장교가 간혹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인자무적(仁者無敵)이란 옛 성현의 말이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