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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주역 이전의 환역桓易의 역사

작성자도경 미성|작성시간14.05.29|조회수10 목록 댓글 0

주역 이전의 환역桓易의 역사

 

주나라의 역인 주역周易 이전에 배달국에 역이 있었다. 이른바 환역桓易이다.

인류문화사에서, 역易의 시원은 한민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태호 복희가 창안한 하도河圖가 역철학의 거대한 흐름

시초였던 것이다.

 

그런데 환단고기에 보면 태호 복희 이전에도 역이 있었던지, 이에 관한 짤막한 언급이 있다. 주역 이전의 태고적 역

易의 역사에 관하여 환단고기의 기록을 살펴보자.

 

 

반고의 십간 십이지

  “때에 반고班固라는 자가 있어 괴상한 술법을 즐기며 길을 나누어 살기를 청하매 이를 허락하였다. 마침내

  재물과 보물을 꾸리고 십간 십이지의 신장神將들을 이끌고 공공, 유소, 유수와 함께 삼위산 라림동굴에 이

  르러 군주가 되니 이를 제견이라 하고 그를 반고가한이라 했다.” <삼성기 하>

 

환국의 7대 지위리 환인이 천부인을 주어 동방 개척의 길을 떠난 배달국 1대 커발한 환웅의 무리 중에 반고라는 자

가 있었는데 십간 십이지의 신장을 이끌고 삼위산에 이주하여 그곳에서 군주가 되어, 지금 중국의 전설적 시조가

되었다는 것이다.

 

반고가 길을 떠날 때 21세기 현재에도 쓰이고 있는 십간 십이지의 역이론을 가지고 떠났다고 하니, 이미 환국에는

십간 십이지를 포함한 역이론이 형성되어 있었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1대 커발한 환웅과 팔괘

  “뒤에 환웅이 일어나... 신시에 도읍을 세우시고 나라를 배달이라 불렀다. 삼칠을 택하여 천신께 제사지내고

  밖의 물건을 꺼리고 근신하며, 문을 걸어 잠그사 스스로 주문을 외우며 몸을 닦아 공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더

  라. 약을 드시고 신선이 되시니, 팔괘를 그으사 올 것을 알며 천지의 상을 살펴 귀신을 부렸다.(執象運神)”

                                                                                                                               <삼성기 상>

 

배달국의 1대 커발한 환웅이 천신天神(하느님)에게 제사지내고 신선 수행을 하며 팔괘를 그렸다는 삼성기의 내용

이다. 환웅은 태호복희보다 먼저 팔괘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배달국 1세 커발한 환웅이 그린 팔괘도가 전해지면

좋으련만...

 

 

하도와 팔괘를 창시한, 역易의 시조 태호복희

   “<대변경>에서 말한다.

  복희는 신시로부터 나와 우사가 되었다. 신룡神龍의 변화를 보고 괘도를 그리고 신시의 계해를 바꾸어 갑자

  를 처음으로 하였다. 여와는 복희의 제도를 이어받다. 주양은 옛문자에 의하여 처음으로 육서를 전했다. 복희

  의 능은 지금의 산동성 어대현 부산의 남쪽에 있다.”   <태백일사 신시본기>

     

   “환역桓易은 우사의 관리로부터 나왔다. 때에 복희는 우사가 되어 여섯가지의 가축을 기르게 하였으며 또

   신룡神龍이 해를쫓는 것을 살펴 하루에 열두번 색을 바꾸는 것을 보고 이에 환역을 만들었다. 환桓은 곧 희

   羲와 같은 뜻이고 역易은 곧 옛날 용龍 자의 본 글자다.”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

 

인류문화사에서 실질적인 역의 창시자는 태호복희이다. 태호복희가 창안한 <하도>와 <정역팔괘도>가 모든 역의 원

류이자 모태로서, 동양의 모든 종교와 사상, 예를 들어 공자 노자 장자 순자 법가 음양가 등의 사상은  태호복희의

하도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것이 없다.

 

 

지리숙과 팔괘상중론

    “기미 54년(BCE1382년), 지리숙이 주천력周天曆과 팔괘상중론八卦相重論을 짓다.”

                                                                         <단군세기> 19세 구모소 단군 조

 

주나라를 창업한 문왕이 역의 효사를 해석하여 주역을 저작할 때가 BCE1100년 경이니, 그보다 약 300여 년 앞서

고조선의 지리숙이 주천력周天曆이라는 역법과 팔괘에 대한 이론서를 지은 모양입니다. 주문왕의 주역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졌겠습니까? 태호복희의 하도를 바탕으로 하고, 지리숙의 이론서 등을 참조하고 주역을 썼겠죠.

 

 

일년이 365일 5시간...

  때마침 자부선생께서 칠회제신의 역법을 만드시고 삼황내문을 천폐에 진상하니, 천왕께서 이를 칭찬하였다.

  이에 윷놀이를 만들어 이로써 환역桓易을 강연하니 대저 신지 혁덕이 적은 발로 천부의 유의였다... 역법을

  만드사 365일 5시간 48분 46초를 일년으로 하니 이것이 바로 삼신일체의 웃어른이 남긴 법이다.”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단군이 환역을 강의하고 있다. 그리고 고조선에는 역법이 시행되고 있었으니, 일년이 365와 5시간이라고 하니 얼마

나 정확한가.

 

 

자부선생과 칠정운천도

  “자부선생은 발귀리의 후손이다. 태어나면서 신명하여 도를 얻어 날아 오르사, 일찍이 해와 달을 측정하여

  이를 정리하고 다음으로 오행의 수리를 따져서 칠정운천도七政運天圖를 저작하니, 이것이 칠성력七星曆의

  시작이다. 뒤에 창기소가 또 그 법을 부연하여 이로써 오행치수의 법을 밝혔다. 이 역시 신시황부의 중경中

  經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우인 사우는 회계산에 이르러 조선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자허선인을 통해 창수 사자 부루를 뵙기를 청하

  여 <황제중경皇帝中經>을 받으니 신시황부의 중경이다. 우임금이 이를 취하여 쓰니 치수에 공이 있었다.”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

 

 

배달국 신시로부터 내려오는 역과 관련한 경이 있으니 "중경中經"이라는 것이다. 이 중경을 바탕하여 자부선생과 창

기소가 각 저작을 했다는 것.

 

우임금이 창수사자 부루 단군에게서 황제중경을 받아 치수에 공을 세웠는데, 그 부루단군의 황제중경皇帝中經이 배

달국 신시로부터 내려오는 그 중경中經이라는 것.

 

고조선에는 태호복희가 창안한 하도와 팔괘의 역이론이 전해지고 있었고, 지리숙의 팔괘상중론이 있는가 하면, 신

시의 천왕가(黃部)에서 비전되는 중경中經이 있다는 것.

 

배달국 고조선의 이러한 역易 또는 역법曆法이 중국으로 전해지는 계기가 있었으니, 중국에 물난리가 나서 치수사

업을 할 적에 우임금이 창수사자 부루단군에게서 황제중경을 받아간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우임금이 치수사업에 사용한 황제중경은 중국의 이름으로 재탄생하여 역사 기록에 나타나는데, 그것이 <서경書經>

에 보이는 이른바 우임금의 정치 교서 “홍범구주弘範九疇”이다.

 

이렇듯 중국으로 건너간 역과 역법이 문무주공 공자를 거치면서 발전을 거듭하였는데, 오호라 지금의 한국인들이

역과 역법은 전부 중국의 것으로 알고 있으니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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