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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감아라 눈감아라......

작성자메딕|작성시간04.03.19|조회수68 목록 댓글 0
집에 석유 보일러가 고장이 난 모양입니다.
펑 하고 돌다가 갑자기 피시시 꺼져 버리곤 했어요.
답답한 마음에 보일러 시공자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어디 어디를 눌러보고 다시 전원을 넣어 보라고 하더군요.
시키는 대로 했지만, 펑 하고 터졌다가는 피시시 완전히 죽어버렸습니다.

다시 전화를 하자, 시공자가 왔어요.
다짜고짜 물을 머저 빼내야 된다며 호스를 가져오라고 했죠.
집에 있는 호스를 찾아다가 보일러에 끼우자
뜨거운 물이 호스를 따라 나와
김을 모락모락 피우며 마당에 퍼졌습니다.
그때였어요.
어머니께서 마당으로 나오시더니
마당에 퍼지는 뜨거운 물 가까이에서 이렇게 조용조용 말씀하셨죠.
"눈 감아라, 눈 감아라."
나는 그 모습이 너무도 엄숙하고 진지하여
그저 가만히 숨 죽이고 있다가
말씀이 끝나자 어머니께 여쭤 보았습니다.
"어머니, 지금 누구더러 눈 감으라고 말하는 거예요?"
어머니의 대답은 너무나 진지했어요.
"뜨거운 물이 땅에 스며들어
땅 속 벌레들의 눈에 닿으면 눈이 멀지 않겠냐?
그러니 벌레들에게 눈을 감으라고 일러줘야지. 당연한 거 아니냐?"

캄캄한 땅 속 벌레들의 눈...
그 때 나는 어머니와 내 둘레에서
캄캄한 어둠 속의 눈들이 반짝이며, 별빛처럼 빛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별빛 하나 다치게 해선 안 됩니다.
별빛처럼 빛나는 세상의 모든 살아 있는 눈빛들에게
지금 우리는 "눈 감아라, 눈 감아라."는 경고도 없이
뜨거운 물을 마구 붓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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