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글은 사단법인 전국 주부교실 중앙회에서 발행하는 월간지인,
"주부교실" 2002년 9월호에 "중년기의 부부적응"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글입니다-
중년기의 부부적응
중년기 부부라고 하면 중후한 모습의 남편과 후덕해 보이는 인상의
아내가 떠오른다. 그들의 얼굴에서 젊은 날의 앳된 신랑신부의 모습을
찾아 볼 수는 없지만 오랜 세월 함께 해온 든든한 동지애 같은 것이
그들 사이를 단단히 묶어주고 있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서로 의지하며 손을 잡고 천천히 산책하는 노부부의 모습도
아름답지만 조금은 살집이 있어 보이는 중년 부부가 빠르게 걷거나,
달리기를 함께 하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바쁘게 나누고 있는
모습도 보기 좋다.
중년은 참 바쁜 시기이다. 사회적으로도 가장 바쁜 시기이지만,
위로는 연로하신 부모님과 아래로는 아직 성가하지 않은 자식들을
보살피느라, 가정적으로도 힘들고 중요한 일들을 도맡아 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그래서 중년세대를 협공 받는 세대라 한다.
늙고 의존적인 노부모와 독립을 준비하고 이루어 나가는
자녀사이에서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가족을 이끌어 나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년기에는 여러 가지 변화가 나타난다. 갱년기 증상 등
신체적 변화가 나타나고 자신이 늙어간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살아온 세월보다는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를 생각하게 되어
시간에 대한 개념도 달라진다.
성격도 내향적으로 신중하게 변화하고, 자아에 대한 재평가도
이루어진다. 한 마디로 말해서 중년은 또 다른 위기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겪는 사춘기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중년기에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미 다 큰 어른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
"다 컸다"는 말은 있을 수 없다. 인간은 일생을 통해 변화하고
성숙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중년의 위기는 부부관계에도 위기로 다가 올 수 있다.
드라마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중년 부부의 방황은 바로 중년기가
가지는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 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중년기 부부적응을 위해 알아야 될 특징적인 변화로 성 역할 지각의
변화를 들 수 있는데, 남자에게는 여성성이 증가하고 여자에게는
남성성이 증가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 결과, 남자는 집안으로
들어오려고 하고, 여자는 집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젊은 시절 늦게 들어오는 남편을 기다리던 부인은 나이 들어 일찍
들어오는 남편이 조금은 귀찮게 생각되고, 자녀양육의 부담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친구도 만나고 취미생활도 하고 싶어한다.
반면 남편은 여성성이 증가하여 가정적이 되면서 부부간의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노인이 되면 이러한 경향은 더 심해지는데,
중년기에 시작되는 성 역할 지각의 변화에 부부가 잘 적응해야
노년기도 잘 보낼 수 있다.
따라서 중년기에는 서로의 역할을 바꾸어 보는 것도 좋다.
여성성이 증가하는 남편이 가사노동이나 요리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남성성이 증가하여 이전
보다 활달해지는 아내를 위해 부부가 함께 친구모임이나 취미 활동에
참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중년기 가족관계는 부부가 중심이
되어야 하지만, 부부관계에 집중하는 것 만으로는 건강한 가족관계를
이루기 어렵다. 부부관계만큼 중요해지는 것이 중년이후의
친구관계이다. 부부가 함께 참여하기도 하고 때로는 독립적으로
참여하기도 하는 다양한 인간관계가 중년이후의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
또한 중년기에는 성 기능이 감퇴하므로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성적중요성을 감소시키고, 동료로서의 상호관계를 강화시켜
성 기능 저하에 따른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자녀들과의 원활한 관계도 중년기 부부적응을 위해 중요한 요소이다.
독립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자녀들의 독립성을 인정하면서 그동안
자녀중심으로 이루어지던 가족관계의 무게중심을 부부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중년기의 부부관계는 그동안 이루어온 부부간 적응에 대한
중간 성적표이다. 일반적으로 결혼 만족도는 U자 커브를 그리는데,
신혼 초에 만족도가 높다가 자녀양육기간에 낮아지고 자녀양육이
완료되어 가는 중년이후에 다시 높아지는 양상을 나타낸다.
그러나 모든 부부의 결혼만족도가 중년이후에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중년기 이전 자녀양육기간에는 자녀양육이라는 공동의 목표 때문에
잠재되었던 부부문제들이 중년기에 불거져 나와서 부부관계에 위기를
맞는 부부들도 많다. 중년기는 결혼생활의 강점과 약점이 그대로
나타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여름내 우거졌던 나뭇잎에 가리워서
보이지 않던 나뭇가지가 가을이 되어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그대로 드러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신혼기에는 신혼의 단꿈에
젖어서, 아이를 낳은 후에는 아이 기르느라 정신이 없어서
가리워 졌던 부부관계의 기본골격이 중년기 이후에는 그대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이때 나타난 약점들을 잘 보완하지 않으면
노년기가 되었을 때 요즈음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황혼이혼에 직면
할 수 도 있다. 그러므로 중년기에는 결혼생활을 중간 평가해
보아야한다. 중년기 부부관계의 중간평가는 아름다운 노부부가
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거쳐야할 단계이다.
부부가 함께 보내는 시간이나, 애정표현이 부족하지는 않은지?
대화가 단절되어 있지는 않은지?
대화가 단절되어 있지는 않지만 돈이나 자녀 문제 등 특정분야에만
국한된 이야기만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부부싸움의 습관이 잘못되어 문제제기가 아니라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습관적인 싸움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부부 각자가 서로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불만들은 무엇인지?
남편과 아내가 머리를 맞대고 여러 가지 항목들을 짚어가면서
이제까지 함께 해온 부부관계를 점검하고 앞날을 위한 계획을
세워보는 것은 다른 어느 것보다도 우선적으로 해야 할 노후준비이다.
다정한 노부부의 모습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녀양육의 부담이 줄어들기 시작하는 중년기부터 노력하며 준비해야
사이좋은 노부부가 될 수 있다
-박미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