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 양파
무안의 밭과 농민은 전국 양파 생산량의 20%를 감당한다. 양파는 거의 수입되지 않으므로 우리가 먹는 양파 다섯 개 중 하나는 무안 것이라 여기면 된다. 무안읍내를 중심으로 바닷가 쪽, 그러니까 망운면, 운남면, 청계면, 현경면, 해제면에 특히 양파밭이 많다. 바다 끝자락이 언뜻언뜻 보이는 야트막한 구릉지에서 양파가 자란다. 무안 양파는 단단하고 아삭하며 즙이 풍부하고 단맛이 강하다. 구릉지의 흙과 그 곁의 바다 덕이다.
| 1 무안의 밭은 야트막한 구릉지이다. 큰 산도 없다. 낮은 지역에서 보면 구릉지 끝이 바로 하늘이다. 2 양파를 망에 담는 작업 중이다.밭은 복사열로 찜통이지만 햇볕을 가리기 위해 긴옷과 모자를 쓴다. 3 무안군청 마당에 있는 양파 조형물.양파가 무안 농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것을 상징한다. | |
무안 양파가 맛있는 까닭은
무안 구릉지 흙은 붉다. 황토 중에서도 적황토에 든다. 황토에는 칼슘, 철, 나트륨, 칼륨, 마그네슘 등 각종 미네랄이 풍부하다. 미네랄이 풍부한 땅에서는 기본적으로 농산물이 잘 자란다. 이 중에 양파 맛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미네랄이 있다. 칼륨이다. 양파의 매운 향은 토양에서 황을 흡수하면서 얻어지는데, 이 황을 적절하게 흡수시키면 양파는 부드러운 단맛을 낸다. 이 황의 흡수를 막아주는 것이 칼륨이다. 칼륨은 양파의 세포벽을 단단하게 하고 수분을 잡아주는 역할도 한다. 그러니까 달고 단단하며 즙이 많은 무안 양파 맛은 황토 덕이라 할 수 있다. 또 무안 황토에는 게르마늄이 특히 많이 함유되어 있는데, 이 역시 양파 맛에 영향을 미친다고 봐야 하며, 바로 곁의 바다는 수시로 해풍을 밭으로 보내 양파를 병해충에 강하게 만든다.
무안에 양파가 재배된 역사는 길지 않다. 양파가 우리 땅에 들어온 지도 얼마 되지 않는다. 기원전 5000년경 페르시아 지방에서 신에게 바치는 물건으로 쓰였으며 고대 이집트에서는 피라미드를 쌓는 노예들에게 마늘과 함께 먹였을 만큼 오래 전부터 재배되었지만 우리 땅에 처음 들어온 것은 1906년이며 대량 재배된 것은 1960년대 이후의 일이다. 현재 양파의 다양한 활용도와 소비량으로 봐서 대량 재배에 다소 늦은 감이 있는데, 이는 식량작물이 아니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식량 절대부족 시대에 양파 같은 향신채소를 대규모로 심는다는 것은 ‘죄악’이었을 것이다. 또 일제시대에 일본이 우리 땅의 쌀을 수탈하기 위해 대체 식량작물로 고구마, 감자, 보리, 밀 등의 재배를 권장한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경제사정이 나아지면서 양파의 소비량이 늘어나고 이에 따라 맛있는 양파가 재배될 수 있는 지역으로 무안이 주목받아 현재에 이른 것이다.
출처(팔도식후경, 황교익)
무안화설당(務安花雪堂)
무안화설당은 유운이 1610년경에 건립했는데 명칭은 1612년 겨울에 나주 목사 박동렬이 수은 강항과 찾아와 겨울인데도 동백꽃이 있어서 화설(花雪)이라 하고 시 1수를 남긴 데서 연유한다. 강항은 화설당기(花雪堂記)를 남기고 이후, 송시열이 편액을 써 전해 내려온다. 1728년과 1869년에 중수하였다. 건축 구성에 있어서도 다른 정자와 평면 형식이 구별된다. 대청 2칸 순으로 꾸며져 있고 전·후로 모두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특히 좌측 방에는 이 지역 민가에서 볼 수 있는 봉창도 설치하였다. 화설당 앞으로 인공 연못에 작은 섬(봉래산)을 조성하여 한 그루의 동백나무를 심고, 정자 뒤꼍으로 야트막한 둔덕을 조성하여 은행나무와 괴석을 올려놓았다. 무안화설당은 강학 교류 공간으로서 중요한 유적지로 관련 인물이나 자료 등에 있어서도 오래된 유서가 있는 역사성과 평면구성상의 건축 특징이 학술적, 역사적 의미가 있다.
출처:(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2026-06-17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