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국자감 이란?

작성자정재삼|작성시간19.11.08|조회수411 목록 댓글 0

국자감

[ ]

요약 고려시대 국립교육기관으로 국가에서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다.

국자감은 고려성종

이에 앞서 고려 태조가 930년(태조 13)에 서경(西)에 행차하여 학교를 세웠는데,

 태학조교() 송승연()을 국자박사()에 임명하였다.

이런 사실들로 미루어 보건대 개경에는 고려 건국 직후부터 이미 신라의 국학()에

 해당하는 국립대학이 설립되어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다가 992년에 이르러 종래의 학교를 개편,정비하면서

국자감이라 이름하지 않았나 여겨진다.

국자감은 1275년(충렬왕 1)에 국학()으로 개칭되었다가

1298년(충렬왕 24)에 충선왕()이 즉위하여 성균감()으로 바꾸었고,

1308년(충렬왕 34)에 충선왕이 다시 즉위하여 성균관()으로 개칭하였다.

 그 후에도 몇 차례 명칭이 변경되었지만, 성균관의 명칭은 조선

고려의 왕들은 국자감 교육을 매우 중요시하였다. 1109년(예종 4)에는

 교과 과정을 체계화하기 위해 국자감 안에 7재()를 설치하였다.

7재는 7개의 전문 강좌로, 주역()을 공부하는 여택재(),상서()를

공부하는 대빙재(),모시()를 공부하는 경덕재(),주례()를

공부하는 구인재(),대례()를 공부하는 복응재(),춘추()를

공부하는 양정재(), 그리고 무학()을 공부하는 강예재()로

구성되었다.

고려시대의 과거제도에서 무과()가 없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가운데 강예재가 포함되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아마도 당시 여진과의

관계가 긴박했기 때문에 설치되었으리라 여겨진다. 그렇지만 1133년(인종 11)

 문신들의 반대로 무학재는 폐지되고 말았다.

인종()은 그 동안 형부에 예속되어 있던 율학()을 국자감으로 옮겨 

 국자학(),태학(),사문학(),율학(),산학(),서학()의

경사6학()을 설치하였다.

국자감의 입학 자격은 신분에 따라 제한을 받았다. 국자학은 3품 이상,

태학은 5품 이상 사문학은 7품 이상의 자손이 입학할 수 있도록 규정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술학부에는 8품 이하의 관리나 서민의 자제가 입학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국자감 본문 이미지 1

[네이버 지식백과] 국자감 [國子監] (두산백과)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