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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신자의 생활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시는가 안 하시는가?

작성자이준성|작성시간13.01.07|조회수802 목록 댓글 2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시는가 안 하시는가?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지 아니하신다.(1:13)

그러나 성경에는 그와 반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신다는 기록이 빈번하다.

(22:1, 16:4, 13:3...)

이 두 표현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언어에는 동일한 단어를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

그 의미는 단어가 속한 문맥이 결정한다.

시험,나사(hs;n:)”이라는 용어의 의미도 문맥이 결정한다.

시험의 두 쓰임새를 구분하기 위해

영어권에서는 사탄과 우리의 부패한 본성으로부터 나오는 시험을 tempt,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시험을 test라고 달리 번역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믿음을 시험하신다.

자기를 경외하는지, 율법을 준행하는지를 알기 위해서이다.

[16:4] (4)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22:1, 12] (1)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 (12)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또한 복을 주시려고 시험하신다.

[8:16] (16)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그러나 주의할 점이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실 때에

그곳에는 우리의 대적도 함께 있다.

우리의 대적은 우리가 그 시험에서 실패하기를 갈망한다.(벧전 5:8)

[벧전 5:8] (8)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하나님께서 중생한 우리의 속사람을 시험하시고 연단하실 때

마귀는 부패한 본성의 탐심을 부추기며 간교한 유혹을 시작한다.

마귀의 유혹 앞에 우리의 옛 사람은 탐심으로 반응한다.

하나님의 시험에서 이 두 원수를 이해하지 못하면

시험에 넘어진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금지하실 때에도

사탄은 그곳에서 아담을 유혹함으로 시험했다.

사람들은 에덴의 시험에 넘어진 책임이 하나님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뱀(사탄)을 저주하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광야를 지날 때에

하나님의 대적도 분발하여 그 시험에서 실패하도록 유혹했다.

 

거듭난 신자에게 원수는 둘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우리 밖에 있는 사탄과 세상이다.

예수님께서 광야 40일 금식하시는 동안에도 세상과 마귀를 볼 수 있다.

[4:8-9] (8)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다른 하나는 우리 속에 웅크리고 있는 부패한 본성이라는 원수다.

여기 부패한 본성으로부터 쉬지 않고 탐심이 일어난다.

[1:14] (14)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7:24] (24)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마귀와 우리 안에 있는 사망의 몸은 효과적인 연합군이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실 때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시험에서 실패하도록 우리를 유혹한다.

 

시험을 받았다는 말도 문맥에 따라서는

시험이 있었다는 의미도 되지만(1:13, 20:19)

어떤 문맥에서는 시험에 빠졌다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1:14] (14)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

두 원수로부터 시험을 받는 자체는 죄가 아니다.(4:15)

[4:15] (15)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2)

하지만 미혹을 받아 탐심에 넘어지는 것은 유죄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자기 백성을 낳으셨고(벧전 1:23)

시험은 중생한 백성과의 교제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사탄은 죄로 기울어진 본성을 충동한다.

우리가 시험에 넘어진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속에 있는 부패한 본성(육신)의 탐욕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 속에 있지만 내가 아닌 죄다(7:17, 20)

부활의 날까지만 동거하는 원수이다.

우리는 말씀으로 새 사람이 되었다.

 

우리를 시험하는 부패한 본성을 우리에게 남겨두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본디 믿음이란 시험을 통과할 때에 온전하게 된다.

[1:2-3] (2)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이 시험을 통해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믿음의 진실함을 알려 하신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모두 아신다.

하지만 믿음이라는 속성 그 자체는 머릿속에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불을 지날 때에 참된 믿음으로 드러난다.

우리는 몸을 가진 사람이므로 지식이 몸의 행실로 드러날 때에

비로소 그 자리에 믿음이 존재하는 것이다.(고후 5:10)

 

결론은 이렇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기 위해 시험하신다.

그러나 우리를 탐심에 떨어지게 하는 시험은 우리의 부패한 육신과 사탄으로부터 온다.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심으로 우리의 믿음을 찾으신다.

시련을 끝까지 견디는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1) 야고보서 1:14: 하나님은 우리와 같은 탐심이 없으시므로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신다. 하나님을 시험해서는 안 된다. 동시에 하나님을 시험하라는 요구도 있다. 그러나 우리 사람은 시험에 넘어지는 인성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시험을 받음은 유혹에 넘어진 상태를 의미하는 표현이다. 하나님 때문에 시험에 떨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탐심에 이끌려 미혹된 상태를 말한다.

2) 예수님께서도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으셨지만 시험에 떨어지지는 아니하셨다. 예수님의 무죄를 옹호하기 위해 마치 시험조차도 받지 아니하신 것처럼, 또는 우리와는 다른 방식의 시험인 것처럼 생각한다면 성경과 달리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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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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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준성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1.08 안목사님께서 질문하셨으니 답을 정리해보았습니다.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보려고 했는데 그게 어렵네요. 조언하실 부분이 있으면 댓글 주십시오.
  • 작성자꿈과 자유 | 작성시간 13.01.08 감사합니다. 생각을 글로 나타낸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는데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 52주일에서 명쾌하게 정리하고 있는바 사탄과 세상과 육신을 통해서 오는 시험은 우리를 끊임없이 공격해 옵니다. 이 영적전쟁에서 꺼꾸러지지 않기 위해 늘 말씀으로 무장하고 성령님을 의지하며 기도해야 하겠지요? 새해에는 좀 더 말씀을 가까이 하고 기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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