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이 이방인보다 나은 점은 말씀을 먼저 맡은 것이다.
120311오전유대인이 이방인보다 나은 점은 말.hwp
성경낭독: 요한복음 4:3-30, 39-42
[요 4:3-30, 39-42] (3)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4)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5)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6)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제 육시쯤 되었더라 (7)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8)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9)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10)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1)여자가 가로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12)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5)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16)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17)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19)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23)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25)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26)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27)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저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이가 없더라 (28)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30)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 (39)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40)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41)예수의 말씀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 (42)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 하였더라
설교본문: 로마서 3:1-2
[롬 3:1-2] (1)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2)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시편찬송: (오전)시편 ; 시편 ; 시편 ; 시편 ; 시편
주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자매여!
구약성경에서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에는 적대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에 대해 거리를 두시고 미워하시는 것 같은 기록들을 성경에서 읽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에 대해 가진 적개심이 오늘날에도 계속되어야 합니까? 오늘날 신자와 비신자들 사이에서도 신앙의 색깔이 다른 사람들과 사이에 어느 정도 적대감이 유지되어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나안을 정복하면서 가나안 족속을 하나도 남기지 말고 멸절시키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분명 적개심을 명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동일한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명령은 사랑과 충돌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방인에 대해 적대감을 품었던 유대인들의 모습은 오늘 신자들의 삶에서도 어느 정도 남아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늘 우리는 과거의 유대인이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을 미워했던 것처럼 오늘 그리스도인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미워해야 합니까? 믿지 않는 이웃들과 어떤 방식으로 거리감을 두어야 합니까?
오늘 훈화의 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유대인이 이방인보다 나은 점은 말씀을 먼저 맡은 것이다.”
주안에서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을 정복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과정은 많은 피를 불러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인들에 대해 아무런 자비심도 가져서는 안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어린 아이들까지도 몰살시켜야만 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자손들이 오늘 그리스도인을 상징한다면 오늘 우리도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미워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셨다면 이방인에게는 아무런 자비도 남겨두지 아니하셨습니까?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
[요 4:21-23] (21)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23)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를 일부러 통과하셨습니다. 틀림없이 수가성에 사는 한 여인을 만나시려는 목적이었습니다.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에게는 혐오의 대상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를 피해서 다녔습니다. 그들과 접촉하는 것을 부정한 일로 여겼습니다.
예수님께서 수가라는 성에서 한 여자를 만나셨습니다. 물을 달라는 말로 대화를 시작하셨습니다. 유대인이 말을 걸어오는 것은 낯선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음과 같이 반문합니다.
[요 4:9] (9)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유대인들은 이방인과는 상종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과 달리 사마리아인을 멀리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영생을 주시려고 세상에 오신 이유는 바로 여기 사마리아 여자 때문이었습니다.
[요 4:10] (10)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대화가 이쯤 되자, 여자의 눈에 예수님이 선지자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신앙적인 문제 하나를 꺼냅니다.
[요 4:20] (20)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과 다른 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유대인들은 다른 곳에서 예배하는 자들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분명 이것은 큰 차이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할 유일한 장소는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다른 산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마리아인과는 상종하지도 않았습니다. 혐오스러운 이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생각과 달랐습니다. 여인을 만나기 위해 유대인들이 혐오하는 사마리아를 통과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에 있는 차이를 말씀하셨습니다.
[요 4:21-23] (21)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23)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예수님 말씀에 의하면, 어디에서 예배하느냐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이점이 아닙니다. 본질적인 차이는 예배하는 대상을 알고 예배하는 것과 알지 못하고 예배하는 차이입니다. 이방인인 사마리아인들은 모르고 예배합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에 근거해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하는 것이 정통이고 그리심산에서 예배하는 것은 이단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율법이 말하는 유일한 예배장소인 성전은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성전은 폐지되었습니다.(마 27:51) 성전은 껍데기이며 그 실체는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유대인은 성전이신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껍데기 성전만 붙잡았습니다.
성전을 차지한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들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이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은 그들이 잘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남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 예배하는 특권을 얻은 것입니다.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예배합니다.
그러나 유대인이라고 모두가 하나님을 참으로 예배하는 것은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비록 복음을 먼저 들었지만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참으로 예배했더라면 성전이 가리키는 그리스도를 배척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돌로 된 성전만 바라보는 유대인들이 아닌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 참된 예배자를 찾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사마리아 여자를 찾으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바울사도는 이방인이 모르는 것을 유대인이 알고 있는 이유에 대해 설명합니다.
[롬 3:1-2] (1)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2)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에 비교해서 나은 점이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선택하시고 그들과 교제하셨습니다. 선지자들을 그들에게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기회를 독점했습니다.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예루살렘에서 예배하는 특권을 얻은 것입니다.
복음이 이방인에게로
그런데 이제 예수님은 유대인이 맡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방인에게도 주려고 하십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주려고 방문하셨습니다. 사마리아인이라도 복음을 듣게 된다면 유대인과의 차이는 없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를 지나시면서 그리스도는 유대인만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생명의 물이 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복음은 이제 유대인의 범위를 벗어나 온 세상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이후로 말씀이 온 땅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만 하나님의 말씀을 독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온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순서대로 시간이 흐르면서 복음은 세상으로 퍼졌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마리아 사람들이 복음을 들었습니다.
[행 1:8] (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유대에서 구원의 역사가 시작했고 수가성 여인을 비롯하여 보다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복음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역시도 사마리아 사람들이 다른 민족보다 나아서가 아니라 복음과 가장 가까운 지역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복음은 땅 끝까지 전파되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가장 먼저 주어졌을 뿐입니다. 좋은 것을 먼저 받았기 때문에 책임도 그만큼 큽니다. 그들이 더 뛰어난 민족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얻는 복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완성이 되는 날까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에게 맡겨두셨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약속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약속한 성령님이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부어지셨습니다. 이제 누구든 복음을 들을 수 있습니다. 어디서든지 이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낙원에 들어갑니다. 이런 시대적인 상황을 천국은 침노를 당한다고 묘사합니다.
[마 11:12] (12)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침노라는 말은 힘으로 무엇을 억지로 빼앗는 뜻입니다. 누구든지 복음을 열심히 듣고 믿음을 얻는다면 천국을 빼앗다시피 얻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유대인만의 소유가 아닙니다. 듣고 믿는 자들이면 이방인이라도 낙원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성취는 언제나 이스라엘 안에서 시작했고 완성이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는 이방의 백성들이 복음을 듣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구약시대라도 이방인이 복음을 들을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는 기회는 이스라엘을 통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로서의 이스라엘의 국가적인 행보는 하나님을 세상이 알리는 통로였습니다.
이스라엘 왕국은 이방인들을 위한 성경책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 가운데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출애굽 이후 아브라함의 후손,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하셨습니다. 오직 그들만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과 교제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오직 자기 택한 백성들과만 교제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범죄하면 책망도 하셨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만 제사를 허락하셨습니다. 이방인들은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할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얼핏 이방인을 미워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가나안 정복의 피비린내가 그렇게 보이게 합니다.
하지만 이방인들은 이스라엘 백성과 교제하시는 하나님을 소문으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활과 역사는 이방인의 눈에 하나의 성경책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홍해를 건넜다는 소문은 주변의 열국들로 퍼져나갔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을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이스라엘만 아니라 이방인들의 귀에도 알려졌습니다. 피상적으로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이지만 그 역사는 하나님을 알리는 도구입니다.
[출 15:14-15] (14)열방이 듣고 떨며 블레셋 거민이 두려움에 잡히며 (15)에돔 방백이 놀라고 모압 영웅이 떨림에 잡히며 가나안 거민이 다 낙담하나이다.
[수 5:1] (1)요단 서편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네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연고로 정신을 잃었더라
[수 2:9-12] (9)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10)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11)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 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
[히 11:31-히 11:31] (31)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군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신 것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계시였습니다. 세상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그들의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실감나게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모세를 통해 성경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성경은 오늘 우리 이방 신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오늘 우리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읽으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되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소극적이지만 하나님을 세상에 전했습니다. 소문이 세상에 퍼져나감으로 소수이지만 이방인에게 구원의 문을 열었습니다. 솔로몬은 다음과 같이 기도하였습니다.
[왕상 8:41-43] (41)또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아니한 자 곧 주의 이름을 위하여 먼 지방에서 온 이방인이라도 (42)저희가 주의 광대한 이름과 주의 능한 손과 주의 펴신 팔의 소문을 듣고 와서 이 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43)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무릇 이방인이 주께 부르짖는 대로 이루사 땅의 만민으로 주의 이름을 알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경외하게 하옵시며 또 내가 건축한 이 전을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줄을 알게 하옵소서
성전 건축을 마치고 하나님께 올린 솔로몬의 기도의 일부입니다. 이 기도에 이방인을 위한 기도가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성전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이방인이라도 하나님에 대한 소식을 소문으로 듣고서 성전을 향하여 기도한다면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여주시기를 간청했습니다. 솔로몬은 이방인들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시는 일들을 소문으로 듣고 믿음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솔로몬의 기도에 대해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응답하셨습니다.
[왕상 9:2-3] (2)여호와께서 전에 기브온에서 나타나심 같이 다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3)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앞에서 기도하며 간구함을 내가 들었은즉 내가 너의 건축한 이 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의 이름을 영영히 그곳에 두며 나의 눈과 나의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기도를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비록 사람이 돌과 나무로 지은 성전에 계시는 분은 아니시지만 성전에 당신의 이름을 두어 세상에 알리고 이방인이라도 성전을 향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면 응답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소식을 듣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된 이방인들이 멀리서 찾아와 성전을 향해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들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물론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단편적일 것입니다.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으므로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행 8:30-31) 하지만 아는 만큼이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성전을 찾아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은 물리치지 않으실 것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경배하러 먼 길을 왔던 일, 기생 라합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들었던 하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정탐군을 영접했던 일들은 모두 선지자의 설교나 율법서의 낭독을 통해서 직접 얻은 지식이 아닙니다. 여러 사람의 입소문으로 전달된 조각 지식입니다. 필경 결핍이 많은 지식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처지의 이방인들을 꺼리지 않고 영접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만큼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은혜로 택함을 받아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습니다. 이스라엘이 더 위대한 민족이었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맡기셨고 당신의 백성을 삼으셨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바라보는 주변의 이방나라에 하나님을 알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스스로 높아져서 이방인들과 상종하지 아니했습니다. 교만해졌습니다. 마치 자신들이 남들보다 더 특별한 사람들인양 착각에 빠졌습니다. 성전이 그리스도를 상징하듯 이스라엘도 참된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는 그림자입니다. 참된 백성은 혈통의 문제가 아니고 믿음의 문제였기에 이스라엘은 누구보다 먼저 믿음으로 구원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혈통을 자랑하느라 믿음을 버렸습니다. 그 대신 이방인이 믿음으로 구원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성전이신 예수님은 성전을 자랑하던 유대인들에게 미움을 받으셨고, 발길을 유대인들이 멸시하던 사마리아인에게로 돌리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이제 유대인의 나음이 사라졌습니다. 사마리아 여자의 소개로 예수님을 만났던 그 동네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요 4:40-42] (40)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41)예수의 말씀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 (42)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 하였더라
유대인들은 말씀을 맡았고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자기들 중에서 출생하셨지만 믿지 않았습니다. 그대신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믿고 참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믿는 자들을 오늘도 찾으십니다.
하나님을 먼저 안 신자의 책임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성령님께서 오순절 강림하신 이후로, 각 사람에게 세례를 통하여 임하셨습니다. 유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같이 성령세례를 받고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가 되어 복음을 전하는 직무를 받은 시대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이제 복음은 유대인이나 팔레스타인이라는 지역을 벗어났습니다. 유대인들은 혈통상 유대인으로 남았고 이방인들은 믿음으로 참된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오직 하나님을 알고 예배하는 자들과 모르고 예배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 둘 사이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단지 복음을 전하지 않아 듣지 못하고, 듣지 못하면 믿지 못합니다. 믿지 않는 자들의 책임이 복음을 전하지 않는 이들에게 있음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방인과 유대인의 차이는 복음을 듣는 일에서 차이가 납니다. 하지만 이제는 복음을 듣기 위해 유대로 가지 않아도 됩니다. 온 세상에 복음을 가진 제자들을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의 이방인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소문을 들었듯이 오늘날 믿지 않는 이들은 신자들의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고 배웁니다. 신자와 불신자 사이에는 긴장이 없습니다. 불신자를 미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도리어 신자는 자신을 하나님을 계시하는 성경으로 제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갑자기 성경을 펼쳐 깨닫지는 못합니다. 이방인이 하나님을 믿으려면 세상에 흩어져 사는 하나님의 자녀의 행실입니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그들에게는 성경입니다. 우리와 불신자 사이에는 적개심이나 경계가 없습니다.
[마 5:14-16] (14)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15)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16)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그들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우리를 봅니다. 그들은 성경 대신 우리의 생활을 주목합니다. 우리가 행복하고 잘 나갈 때만 아니라 슬픔과 절망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도 주목합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우리가 세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두 부류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과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둘 사이의 차이는 먼저 들은 것과 아직 듣지 못한 차이입니다. 자신의 말과 행실로 본을 보여야 할 사람과 그것을 보고 하나님을 믿어야할 사람으로도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 둘 사이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우리가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나은 것이 전혀 없습니다. 유대인이 이방인보다 더 나은 것은 말씀을 먼저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특권은 참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삶을 보여주어야 하는 책임과 함께 해야 합니다.
어리석은 유대인이 자신들을 이방인보다 더 위대한 민족이라고 생각했던 교만을 오늘 신자들이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불신자를 경계하고 신앙이 다르다고 혐오하고 죽음으로 내모는 것은 구약의 상징을 오해한 것입니다. 이단이라고 불신자보다 특별히 더 악한 것은 아닙니다. 참된 신앙을 가졌다면 선민의식으로 이방인들을 멀리하는 대신에 그 믿음을 행실로 증명하는 것이 과업입니다. 우리는 더욱 겸손하게 단지 하나님을 조금 먼저 알게 된 자로서 세상에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단지 먼저 복음을 듣고 알고 예배하는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모르기 때문에 모르는 신을 경배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 원인은 상당부분 하나님을 아는 우리가 믿음대로 살지 않는 우리의 책임입니다. 아멘
(2012년 3월 11일 훈화의 말씀, 이준성에 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