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보지 못한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방법
부제) 우리의 믿음을 위해 수많은 증인들을 세우셨다.
훈화자: 이 준 성 형제 (2012. 10. 7)
성경낭독: 요한복음 20:24-31
[요 20:24-31] (24)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30)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성경낭독: 요한복음 20:27
[요 20:27] (27)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주안에서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제자들은 예수님과 3년을 넘는 세월동안 함께 지내면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고 만지며 지냈습니다. 그들은 확실히 보고 만진 사실을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증거가 참이기 때문에 말만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말씀에 마음을 다해 순종하였습니다.
[요일 1:1-2] (1)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2)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굳게 믿도록 하시려고 많은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마지막에는 부활하신 몸도 보여주어 확실히 믿게 하셨습니다. 부활의 믿음을 갖게 하시려고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것을 목격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도마는 결석해서 다른 제자들이 본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의 말을 듣고서도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고 불평했습니다. 믿음은 사실을 확인해야 생기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진리를 확인해야 믿음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아무리 원해도 믿을만한 증거가 있어야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은 “직접 보지 못한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방법”
도마의 믿음을 위해 예수께서 찾아오심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부활을 증거하려고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나 도마는 그 자리에 있지 못해서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셨다는 형제들의 말을 믿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25) ...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이런 일이 있은 지 8일 만에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모습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도마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시면서 직접 만지고 확인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대화를 하는 동안 도마는 믿지 않았던 자신을 부끄러워하면서 다음과 같이 신앙을 고백하게 됩니다.
(28)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이로써 도마는 모든 제자들이 가진 같은 믿음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29)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 하시니라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한 몸을 보고서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도마만 아니라 나머지 제자들 역시도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하고서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부활의 증인으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자신의 몸을 제자들에게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나 이후로는 아무도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몸을 볼 수 없습니다. 더 이상 세상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보지 않고서도 믿어야 합니다. 이렇게 보지 않고도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게 될 우리를 가리켜 주님께서는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보지도 못한 사실을 믿을 수 있습니까? 31절이 그것을 말합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자들을 위해 주님께서는 당신의 생애를 충분히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30)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의 부활 이후 세대는 비록 그리스도를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복음서라는 성경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증인의 증거를 읽을 때에 믿음을 얻게 됩니다.
믿음은 성경을 펼칠 때에 나온다.
보지 못하고 믿고자 하는 사람은 성경을 펼쳐야 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고 만지고 그의 말씀을 들을 때에 믿음을 얻고 믿음이 자랐듯이, 말씀을 펼쳐 읽을 때에 성경은 우리를 설득하여 믿음을 갖도록 인도합니다. 이것이 바로 종교개혁의 역사가 늘 성경번역과 함께 했던 이유였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부터 옵니다.(롬 10:17) 그래서 성경은 읽는 이에게서 믿음을 일으키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있는 말씀이라고 증거합니다.(벧전 1:23) 말씀이 믿음을 일으키지만 그것을 펼쳐 읽는 책임은 자신에게 있습니다.
믿음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나오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믿음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 은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는 믿을 수도 없으며 하나님께서 믿게 하시면 비로소 우리가 믿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믿음의 책임을 하나님께 전가하는 것입니다. 믿는 일은 하나님의 책임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몇 가지 말씀에 주목해봅시다. 믿음은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생겨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일은 우리의 일입니다. 누가복음 24:32절을 보십시오.
[눅 24:30-32] (30)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31)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32)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던 제자를 만나 자신의 부활을 나타내시고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셨던 일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약성경을 풀어주시자 제자들은 듣고 마음이 감동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구약성경)은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살아있는 힘이 있습니다.
다시 45절에서 반복해 말합니다.
[눅 24:44-45] (44)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예수님께서 구약성경으로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깨닫게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마음을 여는 일과 성경을 깨닫게 하시는 일을 서로 다른 행위로 나누어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두 말은 마음에 말씀의 빛을 비추어 깨닫게 했다는 한 가지 뜻입니다. 먼저 마음을 열어놓고 그 다음에 깨닫게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일은 바로 마음을 여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사용하셨던 마태복음 13:14-15, 19-21절의 비유를 봅시다.
[마 13:14-15, 19-21] (14)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
말씀을 듣지만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말씀합니다. 이들은 말씀을 듣지만 깨닫기를 두려워하는 완고한 사람들입니다.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완악한 사람들입니다. 마음이 완악해서 깨닫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깨닫기를 두려워하여 마음을 완악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완악한 마음을 가진 이들은 그 책임을 스스로 져야 합니다.
(19)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말씀을 듣지만 깨닫기를 원하지 않으면 그 말씀을 빼앗기게 됩니다.
(20)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그러나 마음이 열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깨닫고 기뻐했지만 열매는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말씀을 듣는 이유는 단지 깨닫기 위해서가 아니라 결실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두 들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완고해서 깨달으려 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깨닫기는 했지만 결실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그 말씀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믿음의 유무와 믿음의 크고 작음의 책임을 우리에게 묻고 책망하시며 심지어 믿음이 없는 자를 영원한 심판에 던지십니다. 그래서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들어가는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우리의 믿음으로 얻는 것입니다.
믿을만한 증인들의 증언을 듣고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믿지 못하던 도마를 엄하게 꾸짖지 아니하셨듯이, 믿지 못하는 자들에게 믿으라고 요구만 하지 않으시고 믿을만한 증거를 제공해주십니다. 우리가 믿음이 없을 때에 예수님께 동정을 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능력으로 자기 백성들을 가르치고 믿을만한 증거들을 제공하셨으며 마침내는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아들이 하는 일들을 보고 하나님을 믿게 하셨습니다.
[요 14:10-11] (10)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믿음이 없는 제자들에게 믿을 수 없거든 예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이적과 권능들을 보고서라도 믿으라고 권고하셨습니다. 믿을만한 증거도 없이 막무가내로 믿으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더 이상은 그리스도를 볼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를 보고 믿었던 제자들이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성경만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세상에 증거하기 위해 기록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한 객관적인 진술만은 아닙니다. 거기에는 더 많은 것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지만 동시에 그리스도의 증인들인 제자들의 믿음의 행위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증인은 그들이 믿는 바가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진술할뿐 아니라 그 진술이 진실하다는 것을 믿을만하도록 제자로서의 삶을 실천했습니다. 많은 증인들이 있지만 모든 증인이 다 믿을만한 것은 아닙니다. 도무지 믿음이 가지 않는 증인도 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진실한 증인임을 보여주었고 그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실한 증인이 없이는 증언도 없습니다. 누가 위선자의 말을 진실로 믿겠습니까? 제자들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헌신해야 했습니다. 우리의 말과 행실들을 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가 말하는 진리에 대해 믿음이 가도록 행실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성경은 구약시대로부터 복음과 함께 허다한 증인들에 대해 말씀합니다. 복음은 단순히 교리 자체만을 진술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그 복음을 증거하던 믿을만한 증인들과 함께 기록되어 있습니다.
계시록은 그러한 신실한 증인들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단순히 자신들이 믿는 교리를 비밀문서처럼 간직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말씀이 진실하다고 증언하는 많은 신실한 증인들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진리 자체를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증인들을 보고서 진리에 관심을 보입니다. 성경은 증인으로서 교회의 행실을 역사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 5:14] (14)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증인으로서 교회의 행실에 대해 데살로니가전서 1:6-8을 봅시다.
[살전 1:6-8] (6)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7)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8)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사도들을 본으로 삼아 살았습니다. 비록 많은 환난이 있었지만 말로만 아니라 행함이 따르는 믿음으로, 힘을 다해 사랑하고, 소망을 바라보며 끝까지 인내했습니다.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은 데살로니가를 둘러싼 마게도냐와 아가야 전 지역에 있는 신자들에게 본이 되었습니다. 소문이 아주 멀리까지 퍼져나갔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더 할 말이 없을 만큼 감격했습니다. 달리 말하면 사람들은 이들의 행실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본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복음은 교리적인 체계만 아닙니다. 언제나 교회의 역사가 함께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들의 행실에서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살아계시고 큰 능력을 나타내고 계십니다.
오늘날 복음이 널리 전해진 것 같지만 신자들의 행실에 대한 소문은 그에 비해 들리지 않습니다. 도리어 주님을 모욕하는 소리만 들려옵니다. 이런 현실을 변명하기 위해 점점 복음을 교리적인 진술로만 국한하려고 합니다. 증인으로서의 책임을 덜어볼 생각이겠지요. 이런 점에서 복음이 매우 어두워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자들의 삶이 더 이상 믿음을 위한 증인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저 혼자만의 착각이기를 진심으로 바라지만, 오늘날은 복음이 오직 교리적인 형식으로만 증거되는 것 같습니다. 신실한 증인이 없는 교회의 증언은 사실상 죽은 복음입니다.(약 2:17)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고 믿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더 복된 자입니다. 도마는 보기 전에는 못 믿겠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주님께서는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만져보고서라도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보지 못하고 믿어야 하는 이 시대에 사람들은 당연히 도마와 같은 의심을 품습니다. 뭔가 믿을만한 증거가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성경은 덩그러니 그리스도가 누구신가에 대해서만 기록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믿었던 증인의 행실, 교회의 역사를 함께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의 유언을 참되다고 믿습니다. 이처럼 죽기까지 충성된 증인들의 선한 행실들을 보면서 그리스도가 참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증언을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스데반이 죽으면서도 믿음을 지켰던 순교의 이야기를 성경에서 듣습니다. 계시록에서도 믿음을 굳게 지킨 순교자들을 봅니다.
진심으로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으로 믿음을 증거했던 이러한 증인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믿음을 일으키는 증언들입니다. 이 신실한 증인들을 통해 그들이 믿는 그리스도를 우리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되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말로만 믿는다고 하고 행실로 그리스도를 본받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들의 증거를 결코 믿지 못했을 것입니다.
[히 12:1] (1)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우리는 그리스도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습니까? 성경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었던 셀 수 없는 많은 증인들을 세워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도록 권고합니다. 그들은 환난의 위협 속에서도 그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우리는 그들이 행실로 증거했던 복음이 진리라고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성경을 펼칠 때에 우리의 믿음도 더욱 견고하게 자랍니다.
그렇다면 믿는 우리 역시도 우리가 사는 시대의 사람들에게 우리가 믿는 진리가 참됨을 증거하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말로만 아니라 행실로 말입니다. 비록 지금은 아무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직접 볼 수 없지만 먼저 믿는 우리 안에서 살아계시는 그리스도의 선행과 능력이 나타날 때(빌 1:21)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의 부활을 세상에 증언하게 될 것입니다.
[빌 1:21] (21)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2012년 10월 7 훈화의 말씀, 이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