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난 죄가 외치는 교훈
부제) 죄를 드러난 죄와 숨은 죄 둘로 분류할 수 있다.(1)
훈화자: 이 준 성 형제 (2012. 10. 21)
성경낭독: 마태복음 18:15-18
[마 18:15-18] (15)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17)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1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성경낭독: 누가복음 13:4-5
[눅 13:4-5] (4)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5)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주안에서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사람들은 죄를 감춥니다. 슬프지만 대부분의 죄는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죄가 숨겨져 있는 동안 사람들 앞에서 의인인체 합니다. 예컨대 죄인들을 만나면 정죄합니다. 그러나 이면을 들여다보면 죄를 잘 감춘 사람이 죄를 들킨 사람을 정죄하는 꼴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의 일부를 드러내십니다. 우리가 지은 죄의 대부분은 은밀하게 숨겨져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모든 진실이 다 드러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도 세상에서 모든 죄를 드러내지 않으십니다. 만일 죄가 세상에서 드러나지 않는다면 반드시 심판의 날에 드러날 것입니다. 죄를 감추었다고 다행이라고 생각하거나 죄를 숨겼다고 의인인체 하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죄를 안 지은 것처럼 하는 것은 죄를 잘 감추었다는 자랑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들 가운데 얼마를 드러내십니다. 죄를 드러내시는 이유는 그가 죄를 지었다고 세상에 알리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죄가 드러나지 않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려는 것입니다. 드러난 죄는 그 사실을 아는 양심을 향해 숨어있는 죄를 일깨워줍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은 “드러난 죄가 외치는 교훈”
은혜 이후에 주신 율법
율법이 없으면 죄도 없습니다. 율법은 죄를 정죄하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율법을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유익을 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란 여자에게서 낳은 생명에 거듭난 생명이 더해진 사람들입니다. 한 인격 안에 두 생명이 공존하지만 이 둘은 서로 남남입니다.(롬 7:20)
[롬 7:20] (20)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과 맺은 언약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 안에 여전히 옛 사람의 죄된 경향이 그대로 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거듭난 백성의 속사람을 향해서 말씀하시지만 우리 속에 있는 옛 사람의 악함을 늘 각성시킵니다. 부활의 날까지 말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묵상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편에서도 율법에 대해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이 일어납니다. 한편으로는 율법을 몹시 사랑하고 준행하기를 즐거워합니다. 동시에 율법을 미워하는 것이 함께 있습니다.(롬 7:25)
[롬 7:25] (25)...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하나님께서 죄로 죽은 우리를 다시 창조하신 일을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거듭났다는 이해를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거듭난 자기 백성과 더불어 교제하시려고 율법을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율법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맺은 언약입니다. 율법은 율법을 사랑하는 거듭난 속사람을 향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도 율법을 사랑함으로 믿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율법은 우리 속에 죄된 것이 남아있다는 사실도 함께 말합니다.
출애굽 이후에 주신 율법
율법을 주신 때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의 시내산에서입니다. 애굽을 나오기 훨씬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안에서 이스라엘을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은혜 이후에 율법을 주셨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은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난 자들에게 주셨습니다. 율법은 죄로 죽은 자들에게 주신 것이 아닙니다. 죄로 죽은 자는 죄를 깨닫지도 못합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그 법을 따라 자기 백성을 돌보시겠다는 약속이며 백성의 편에서도 이 언약에 서약을 했습니다. 그래서 중생한 하나님의 백성은 율법을 사랑하면서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시 119:92)
[시 119:92] (92)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출애굽 이후 시내산에서 계명을 받습니다. 애굽에서 해방된 이후, 율법을 받았다는 점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실에 대한 감사의 생활을 가르쳐줍니다. 율법에 순종하는 행위는 그 은혜에 대한 감사이며 믿음이 됩니다.
불순종의 이유
우리는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이며 아들의 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율법을 범하는 일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애굽에서 해방되었지만 애굽을 사랑하는 옛 사람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날에 새롭게 변화되기까지는 우리에게 남아있어서, 우리 속에 거듭난 속사람이 성령님의 뜻을 따라 계명에 순종하는 삶을 살지 못하도록 훼방합니다.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지만 남아있는 우리의 옛 사람은 조금도 변함이 없는 죄의 노예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고백하지만, 우리 속에는 나와 싸우는 것이 있습니다.
이런 우리의 형편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지만 우리가 율법의 정죄 아래 떨어지는 참담한 결과를 낳습니다. 율법을 범하는 것은 우리의 속사람이 불완전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속에 남아있는 죄악된 본성의 일입니다. 율법을 범할 때에 율법은 우리의 거듭난 속사람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우리 속에 남아있는 옛 사람의 정체를 드러냅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우리는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고백하고 또한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죄를 통해서 우리 속에 하나님을 미워하는 원수도 함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율법은 죄를 지적하여 우리 속에 동거하는 죄를 드러내줍니다. 이런 우리의 옛 사람은 표범이 그 무늬를 변할 수 없는 것처럼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렘 13:23)
[렘 13:23] (23)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큰 죄와 작은 죄의 구분?
죄를 지으면 회개하고 죄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기 옛 사람을 부인하는 생활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죄에서 돌아서야 하지만 때로 어떤 죄에는 익숙해져버립니다. 더 이상 죄를 죄로 생각하지 못하는 오류에 빠집니다.
이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엄격하게 설교하도록 가르치는 교사들을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 속에 있는 부패한 욕망을 따라 느슨해집니다. 죄와 타협하거나 어떤 죄는 매우 가벼운 죄라고 옹호하기도 합니다. 어떤 종교단체는 더 심각한 죄와 덜 심각한 죄로 서열을 정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회에서는 큰 죄 작은 죄라는 개념은 없습니다. 모든 죄는 동일하고 그 파괴력도 동일합니다. 모든 죄는 동일하게 불신이라는 같은 근원에서 나옵니다.
죄에는 죄의 현상과 죄의 본성이 있습니다. 현상은 이웃의 돈을 만원 훔치는 것과 1억을 훔치는 크고 작은 차이가 있지만 그 본성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동일한 죄입니다. 다양한 현상으로 나타나지만 모든 죄의 본질은 하나입니다.
작은 죄라고 생각하면 곧 익숙해져버립니다. 그러나 율법은 형제를 미워하기만 해도 그것을 살인과 같은 것으로 규정합니다. 본성에 있어서는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작은 죄를 지은 사람이 큰 죄를 지은 사람에게 손가락질 할 수 없습니다. 그 모든 죄는 하나같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불신을 의미하며 모든 불신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심각한 죄를 범했다고 회개하고 아주 사소한 죄라고 해서 무감각하게 생각한다면 옳지 않습니다. 사실 심각한 죄와 가벼운 죄라는 개념은 사람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가장 작은 죄라도 우리를 지옥불로 멸하기에 충분합니다.
딱히 그렇게 말하지는 않더라도 신자들의 대부분은 큰 죄와 작은 죄를 구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죄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지나쳐버립니다. 그러나 어떤 죄는 몹시 괴로워하며 회개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죄를 용서받았기 때문에 그 죄의 성격이 달라졌습니다. 죄가 심각해서가 아니라 죄가 불신을 의미하기 때문에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아주 작은 죄라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 죄의 현상은 사소하게 보여도 불신 때문에 지옥불에 멸망당하게 될 것입니다.
드러난 죄와 사회적인 책임
크고 작은 죄로 구분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모든 죄가 똑같지는 않습니다. 죄들 사이에 구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죄는 두 가지 형태를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 사회에서 한 지체로 살아가는 동안 죄는 드러난 죄와 숨은 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또 알고 지은 죄와 모르고 지은 죄라는 관점에서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동일한 성격의 죄라도 그 책임이 똑같지는 않습니다. 죄와 죄에 대한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도 유익합니다.
일반적으로 죄는 숨기려는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범하는 죄의 일부는 이웃에게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죄가 드러나게 되면 그 죄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책임이 됩니다. 형제의 죄를 발견한 사람은 그 죄를 적절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침묵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복음서가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 18:15-17] (15)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17)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이 명령은 죄를 짓는 순간부터 시작하지 않습니다. 이미 지은 죄가 들통 난 순간부터 시작합니다. 모든 죄가 다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경우 죄를 목격한 형제는 반드시 죄를 지은 형제를 찾아가서 회개할 것을 격려해야 합니다. 대개 죄 인줄 알지만 죄를 지은 사람들은 스스로 죄를 회개하기가 대단히 어렵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인 권면의 목적은 회개와 용서를 은밀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회개하지 않는다면 공개적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이것은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할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야 여러 가지 이유로 침묵하고 싶지만 특정한 죄가 드러났다면 주님은 죄를 지은 사람만 아니라 죄를 목격한 사람의 책임에 대해 말씀합니다.
죄용서의 권세를 사람에게 주심
드러난 죄는 판단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이를 위해 우리는 한 개인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두세 사람 혹은 두세 가정으로 구성된 교회를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에 우리는 드러난 죄를 다루는 공의의 나라를 세상에 보여줄 수 있습니다. 혼자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죄를 감출 수는 있겠지만, 죄 용서를 누릴 수도 없고 형제의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베풀 수도 없습니다. 그러한 교회의 모습을 세상에 전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 가르치신 기도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한 것처럼...” 하나님만이 사람의 죄를 용서할 권세가 있지만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우리에게 나눠주셨습니다.
[눅 17:3-4] (3)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4)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죄 지은 형제를 찾아가는 것이 대단히 힘든 일이지만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죄용서가 이 땅에 임하는 것입니다. 드러난 죄의 경우 자신이 자신의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용서는 반드시 자신 밖으로부터 옵니다. 주님은 죄를 사하는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형제가 없다면 주님의 용서가 어디로부터 임하겠습니까? 죄를 목격한 형제는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지고 형제를 찾아가야 합니다.
죄가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당사자의 양심의 문제로 남습니다. 교회는 숨은 죄에 대해서는 책임을 면제받았습니다. 교회는 숨은 죄를 들추어내는 과업이 없습니다. 단지 말씀의 설교를 죄를 깨닫게 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드러난 형제의 죄를 다루어 회개할 때에 용서함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세상에 증거할 수 있습니다.
죄 지은 형제를 사랑으로 권면해야 합니다. 성경은 한마디로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고전 13:1] (1)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사랑이 없다면 아무리 그 자체로 선한 것이라도 무익한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죄 지은 형제를 찾아가야 합니다.
공공연하게 드러난 범죄가 있지만, 어느 소수의 형제에게만 드러난 죄도 있습니다. 세상의 법정에서도 일단 고소가 들어오면 수사를 진행해야 합니다. 이처럼 죄가 드러나 형제로부터 고소가 있는 경우는 하나님과 개인적인 문제로 끝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은밀한 죄를 알게 된 형제는 더 알려지기 전에 개인적으로 찾아가 회개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드러난 죄는 숨은 죄인에게 말함
하나님께서 죄를 드러내셨을 때는 교회 전체의 유익을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죄가 드러나 공개적으로 죄가 다루어질 때에 드러난 죄는 숨은 죄가 있는 다른 지체들을 두려워하게 만듭니다. 죄를 지은 형제가 공적으로 책망을 받게 될 때에 죄 지은 형제의 책망을 통해 온 교회가 책망을 받고 두려워하면서 스스로 죄에서 돌아서게 됩니다.
[딤전 5:20] (20)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 나머지 사람들로 두려워하게 하라
한 마디로 죄를 드러나게 하시는 것은 죄가 드러나지 않은 나머지 교중을 두렵게 하여 죄에서 떠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로써 죄를 미워하고 계명을 사랑하는 거룩한 교회, 하나님의 신부를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교회가 죄를 떠나게 될 때에 장차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고전 11:32] (32)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드러나지 않은 죄는 좀처럼 회개하기가 어렵습니다. 설교를 통해서 죄를 깨닫게 될지라도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주님은 교회에 권징이라는 심판의 권한을 맡기셨습니다. 드러난 죄가 징계를 받을 때에 숨은 죄인들이 놀라고 두려움을 품게 됩니다. 이렇게 할 때에, 교회는 심판의 날에 세상과 똑같은 책망을 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부패한 본성 때문에 죄에 둔감해지기 쉽고 속사람은 억압을 당하게 됩니다. 죄를 드러내셔서 죄를 덮고 감추려는 다른 지체들이 심판의 날까지 죄를 덮고 지내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교회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덮고 감추는 것이 하나님의 명예를 높이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한 생각이 아닙니다.
사실 죄가 드러났을 때에 우리는 드러난 죄만을 주목합니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의 죄가 숨어 있습니다. 드러난 죄인을 사람들 앞에 세워서 죄를 들키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을 주목하도록 해야 합니다. 드러난 죄의 관심은 드러나지 않은 죄로 확장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 세상은 죄인과 의인으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죄를 들킨 사람과 죄를 들키지 않은 사람으로 구별됩니다. 죄를 들키지 않은 사람은 의인인체 행세하지만 사실은 들키지 않은 것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망대가 무너져 열여덟 사람이 죽었던 사건이 있었는데, 아마도 당시 유대인들은 그들의 죽음이 죗값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유대인들은 재난을 당한 사람들이 죄가 더 많거나 훨씬 심각한 죄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눅 13:4-5] (4)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5)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그러나 주님은 망대가 무너져 참변을 당한 이들이 더 죄가 많은 까닭은 아니라고 하십니다. 망대가 무너져 죽은 일은 회개해야할 더 많은 죄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하셨습니다. 죗값으로 심판을 받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의 심판은 평안하고 안일한 사람들에게 회개를 경고합니다. 평안한 삶은 그들이 의인이라는 증거가 아닙니다. 참담한 사건들이 평안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회개할 것을 무수하게 경고하고 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장차 모든 죄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신부가 심판받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러나 그들의 모든 죄를 낱낱이 들추어 내어 회개케 하시는 대신에 드러난 죄를 책망하심으로 더 많은 숨은 죄를 회개하게 하십니다. 이로써 모든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 정결한 교회로 서도록 도우십니다. 그러므로 드러난 죄를 교회에 교훈이 되도록 잘 다루어야 합니다.
[신 29:29] (29)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가나안의 죄를 들추어내시고 그들의 죄를 심판하셔서 가나안 족속을 그 땅에서 제거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숨은 일들을 드러내십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숨은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하나님께서 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드러난 죄를 공정하게 다룸으로 교회는 신부가 심판의 날을 위해 단장하게 해야 합니다.
[고전 5:12-13] (12)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13)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숨은 죄는 교회의 책임이 아님
사도바울께서는 고린도교회 안에 있는 드러난 한 죄를 지적하면서 그 죄를 교회가 다루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교회는 우리 마음 속에 숨은 죄를 밝혀내는 일이 아닙니다. 숨은 죄를 추리하기 시작하면 역사적으로 마녀사냥과 같은 무서운 종교재판이 시작될 것입니다. 교회는 오직 드러난 죄를 판단해야 합니다.
무당은 찾아오는 사람의 숨은 일들을 드러내는 용한 재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당처럼 성도의 숨은 일들을 알아맞히는 것이 신령한 일인 줄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의 일이 아닙니다. 대단히 위험한 일이며 사람의 영혼을 노예로 팔아넘기는 짓입니다.
숨은 죄는 오직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도록 해야 하며 당사자가 자신의 양심으로 하나님 앞에 서도록 해야 합니다. 숨은 죄를 추적해냄으로 사람의 양심을 지배하려는 종교적인 공포를 조장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사람의 마음에 숨은 죄에 대해 알도록 허락받지 않았습니다.
숨은 죄를 드러내시는 날을 준비함
형제의 죄를 다루는 이 일을 우리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도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숨은 죄가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구에게도 큰 소리를 칠만큼 의롭지 못합니다. 그러나 드러난 죄를 다스리라고 하셨기 때문에 정직한 신자라면 형제를 찾아가 죄를 지적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허물을 살펴보았을 것입니다. 먼저 자기 죄를 회개하고 그 후에 죄를 지은 형제를 찾아가야 할 것입니다. 형제의 죄를 다루는 일은 참으로 곤혹스럽습니다. 그를 정죄할 때에 그것은 바로 자신을 정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를 숨은 죄와 드러난 죄로 나눈다는 말씀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심판하시는 재판장으로서 모든 죄를 심판하시지만 드러난 죄에 대해서는 목격한 형제들과 교회가 판단하도록 맡기십니다. 그렇게 하여 교회의 모든 지체가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날을 위해 준비하도록 하셨습니다. 교회의 유익을 위해 죄를 드러내시고 어떤 형제를 부끄럽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분명 세상을 살다보면 악인이 자기 죄를 숨기고도 활개 치며 잘 사는 모습을 봅니다. 그래서 죄를 잘 감춘 형제들은 죄를 들킨 형제를 향해 돌을 던지면서 의인인체 합니다. 이런 일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하나님께서 모든 죄를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은밀한 죄를 잘 살펴야 합니다. 선한 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남들이 칭찬하는 것으로 자기 자랑을 삼지 않아야 합니다.
죄가 불신을 의미하듯 죄의 회개는 신앙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선행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준비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많은 죄를 범하지만 대부분 감추어져있어서 슬며시 넘어가기 쉽습니다. 그럴지라도 일부의 죄가 드러나 책망을 받을 때에 드러난 죄인만 주목하지 마십시오. 드러난 죄만 유죄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숨은 죄를 모두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을 기억하십시오. 숨은 죄를 회개하지 않는 양심은 우리의 불신을 말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계 22:15] (15)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
죄가 드러나는 것은 당사자에게는 불명예이고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죄가 드러날 때에 죄 용서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죄가 드러나 고통스러울 때에 회개하여 용서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하늘에서만 아니라 이 땅에서 시작합니다.
멀리만 들리는 죄 지은 이웃의 불행과 고통을 접할 때에 평안한 자신은 마치 죄인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지 말고 그들을 통해 나에게 주시는 경고를 받아들입시다. 아직 죄가 가려져 있는 동안, 심판의 날이 임하기 전에 속히 회개하도록 합시다.
우리가 죄를 회개할 때에 우리의 불신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에서 돌아설 때에 우리의 죄가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이미 용서된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드러난 형제의 죄를 보고서도 자신의 죄를 더욱 은밀하게 감추고 의인인척 한다면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에 감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부패한 옛 사람의 욕망에 굴복하여 산다면 결국 우리의 죄를 심판의 날로 가져가는 것입니다. 기회가 있을 때에 미리 죄를 회개치 않으면 끝까지 갑니다.
[마 5:25] (25)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드러난 죄를 통해 우리의 숨은 죄를 회개합시다. 그래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용서를 누립시다. 그렇게 하면 마지막 날에 죄인들과 함께 심판을 받지 않게 될 것입니다. 아멘
(2012년 10월 21 훈화의 말씀, 이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