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서사(敍事), 세계를 품다
매경춘추
매일경제
2026.06.18 목요일 지면 A29
- 이두헌
음악가·
중앙대 예술대학원 초빙교수
1967년 2월 13일,
비틀스는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더블 A사이드 싱글로 평가받는
'스트로베리 필드 포에버/페니 레인
(Strawberry Fields Forever/Penny Lane)'을 발표한다.
리버풀 울턴의 구세군 보육원 정원이었던
'스트로베리 필드 Strawberry Fields '와
동네 버스정류장이 있던 교차로
'페니 레인 Penny Lane '은
멤버들의 유년 시절이 깃든 지극히
사적이고 평범한 장소였다.
존 레넌은
멜로트론의 환각적인 음색으로
무의식 속
유년의 불안을 신기루처럼 그려냈고,
폴 매카트니는
이발소와 은행원이 등장하는 거리 풍경을 한 폭의 수채화처럼 묘사했다.
이 곡들로 인해
리버풀의 변두리 골목들은
국경과 세대를 넘어
전 세계 팬들이 찾아드는 문화적 '성지'로 거듭났다.
이 현상을 관통하는 경영학적 원리는
하이퍼 로컬리티(Hyper-locality)다.
이는 특정 지역이나
미시적 공간이 지닌
고유의 서사(敍事)를 극대화하여
보편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전략을 의미한다.
리버풀 존 무어스 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비틀스라는 지극히 사적인 유산이
리버풀시[都市, city]에 창출하는
직접적인 경제적 가치는 연간 8190만파운드(약 1430억원)에 달한다.
매년 80만명에 육박하는 전 세계 방문객이
리버풀의
좁은 지하 클럽과
누추한 골목길로 모여드는 현상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선다.
그것은
에드워드 렐프가 강조한 장소성,
즉 공간이 인간의 경험과 결합할 때
얼마나 강력한 자산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증적 지표다.
공간에 서사(敍事)가 입혀지는 순간,
그곳은 단순한 좌표가 아니라
고밀도의 경험을 판매하는
거대한 경제적 발원지로 변모한다.
2020년대
대한민국 미디어 생태계 역시 이러한
하이퍼 로컬리티 (Hyper-locality)의 확장에 열광하고 있다.
가수 성시경의
유튜브 콘텐츠
'먹을텐데'(구독자 약 180만명)는 화려한
미식 정보가 아닌,
동네 노포의 투박한 풍경과
그곳에 투영된 개인의 삶에 주목한다.
비틀스가
기억을 통해 공간에 신화를 입혔다면,
성시경은
'발견'을 통해 공간이 숨기고 있던 진실함을 인양한다.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골목 습도와 공기,
이웃과의 사소한 대화를 담은 이들의 서사(敍事)는
디지털 과포화 시대에 지친 현대인에게
'진정성'이라는
강력한 가치를 제공한다.
과거
점유의 대상이었던 공간은
이제 데이터를 통해 세계와 연결되는 고밀도
콘텐츠의 발판이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의 알고리즘은
골목의 미시적 서사(敍事)를
전 세계로 실시간 전파하며 새로운
'장소 브랜딩'을 실현한다.
비틀스가
리버풀의 흙먼지를 신화로 만들었듯,
현대의 크리에이터들은
오래된 골목의 숨겨진
서사(敍事)를 발굴하여 디지털 영토를 확장한다.
위대한 경영은
이제 거대한 담론을 설파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사적인 진실함이 어떻게 타인의 공감을 얻고
정서적 연대를 구축하는지 그
'공감의 지도'를 설계하는 일이다.
나의 일상이 누군가의 동경이 될 때,
변두리의 골목은
비로소 세계의 중심이라는 지위를 획득한다.
< 끝 >
- 이두헌
음악가·
중앙대 예술대학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