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같은 사람
덕현스님
이제 법정스님을 살아야 한다
살아서 그를 먼빛으로 그리고
그 떠나신 허적함에 울던 사람은
이제 당신을 살아야 한다.
스님을 보았던 사람,
스승을 가슴에 품고
그 눈매를 사랑했으며
그 발자국 되밟기를 행복해했던 사람은 이제
고요히 일어서 걸어야 한다
하여,
그 옷깃 발걸음에서
숲의 향기 나는 사람이 되기
다른 사람에 닿아도 피 흘리게 하지 않는,
도리어 살아갈 힘과 표적이 되는
서슬 지니기
삶의 굽이진 아픔에 심장이 아릿해져도
그 빛나는 장면들을 순간순간
앓고 사랑하기가
우리의 길이어야 한다
여정의 걸음이어야 한다
아름다움에 굽신거리지 않아도
아름다움이 제 풀에 따라오는,
세상이 잘못 흘러
다 욕하고 돌아서거나
굴종으로 허리가 굽어질 때,
붓을 들어
눈물로 세상을 씻어내고 아픈 향기로 감싸는,
세상을 벗어나
세상을 사랑하는,
별과 후박나무와 청매와 백련의
가장 내밀한 친구가 되기
맑은 차 한 잔을 건네도
그 청적한 울림이 한 생의 메아리가 되는,
나머지 내 살아갈 날에
별빛 같은 이유가 되는
사람이 되기
말과 글의 길을 지났으되,
소박하고 겸손하고
쇄쇄하고 단정한 조약돌 같은 말의 향기를 주워들어
넌지시 보여주는 사람이 되기
그런 삶을 살아
그런 사람이 되기
보라,
내 걸음 속에 그가 가고 있지 않은가
바로 지금
내 눈길에서 그가 보고 있지 않은가
봄날에
망울 망울
매화꽃 웃음 들려오네
(2014. 2. 25 법정스님 입적 4주기에)
삶의 여행길에서 늘 새로운 것들을 만나고 또 떠나보내는 길입니다. 어떤 때는 지루하고 길게도 느껴지지만, 돌이켜보면 그저 한 순간이고 너무나 덧없고 유한한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목숨입니다. 삶에서 만나는 수많은 것들 가운데 무엇이 우리 가슴을 흔들고 우리 눈길을 붙들고 발길을 멎게 하는지 여러분 다 아시죠? 바로 사람입니다. 풍경도 아니고 어떤 사건도 아니고 우리와 다름없는 사람.
태어나 살다가 문득 정신차리고 또 철들고 보면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든, 어떤 믿음을 가지고 살든 무엇을 추구하고 살든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여기 실존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어디서 왔는지 모르고 무엇을 향해 가야하는지 아직 결론을 찾지 못했을지라도 분명한 것은 내가 지금 여기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외롭고 막막하고 도대체 풀 수 없는 수수께끼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이 어마어마한 실존적인 의문에 하나의 답처럼, 구원처럼 우리 눈을 뜨게 하는 것이 바로 내가 이 삶의 길에서 만나는 사람입니다.
내 존재는 마치 하나의 거울처럼 스쳐가는 것들을, 왔다 가는 것들을 다 비출 수 있는 것이지만 그 거울이 어디서 생겨났는지 왜 있는지도 모른다 할지라도 너무 놀랍게도, 나 말고 다른 거울이 있다는 것!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기적과 신비는 바로 너와 내가 마주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거울이 온갖 것들을 너무 신통하게, 잘 비춘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또 다른 거울이 있어 내가 비추는 것들을 그 거울도 비추고, 그 거울이 비추는 것들을 나도 비추고 또 본래 비춰지는 온갖 형상들 말고 그 본바탕 거울 자체를 자기 스스로는 보지 못하지만 다른 거울에 비춰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또 나를 저 거울에 비춰 내 본 모습을 알 수 있게 한다는 것, 이보다 더 큰 기적과 신통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사실은 지금 여러분과 나도 그렇게 만난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비추고 있는 것입니다.
이슬람의 신비주의 수피즘의 시인 루미는 이런 시를 읊었습니다.
여기 향과 초와 꽃이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이것들이 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또 만약 당신이 오신다면
이것들이 더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살아오면서 그런 분을 만나셨어요?
네, 여러분은 이미 다 만나셨고, 사실은 이 순간순간이 다 그런 만남입니다.
다만 그런 관점을 갖고 사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우리 삶을 단조롭고 무의미하게 질곡으로 만들기도 하고, 더 바랄 것 없는 은총과 놀라운 선물로 만들기도 합니다. 이 지구상의 몇 십억 인구, 그렇게 많은 존재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면 우리 존재는 사실 먼지처럼 초라합니다. 그러나 방금 제가 말씀드렸듯이, 내가 지금 여기 존재한다는 이 신비로운 사실을 자각하고 또 나의 이 마음 거울에 저 존재가 송두리째 비추어져서 빛나고 있다는 것을 느껴본다면 순간순간이 더 보태고 뺄 것 없는 의미이고 아름다움입니다.
옛날 중국의 왕휘지(王徽之)가 하루는 강에 배를 띄우고 강상에서 아름다운 풍광을 보면서 유유자적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무심히 강에 나와서 저 땅을 바라보고 있자니, 길가에서 가마가 하나 지나가는데, 그 가마에 앉은 사람이 얼핏 보기에도 인생의 심오한 진리를 알고 있는 사람 같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곁에 탄 사람들에게 저 가마에 앉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환이(桓伊)라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환이는 당대 피리의 달인이었습니다. 피리를 통해서 존재의 모든 것을, 그 아름다움과 의미를 담을 수 있는 거장이었던 것이죠. 마치 왕휘지가 자신의 붓자국으로 삶을, 또 우리 존재를, 만남과 이별을 돌에 새기듯이, 그리고 가장 아름답게 꽃피워내듯 드러낼 수 있었던 것처럼, 그래서 문득 환이를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혹시 내가 왕휘지인데, 저 가마타고 가는 분을 보고 나를 위해 피리를 한 곡조 불러줄 수 있는지 청해보라고 부탁했습니다.
기다리고 있자니 마침내 그 배가 호숫가에 닿아서 가마 탄 사람에게 뭐라 하니 그 사람이 돌아보더니 기꺼이 그 가마에서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강둑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피리를 불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강상에서 들려오는 피리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세요? 일상에서 우리가 내는 소리나 지나는 자연의 소리가 아름다운 것이 많지만, 피리로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대가가 부르는 피리소리는 평화로운 강위를 부드럽게 미끄러져와 왕휘지의 심금을 울리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왕휘지는 소리에 취해서 그 소리가 다 지나갔음에도 꼼짝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환이는 곡을 다 마치더니 조금도 지체 없이 주섬주섬 피리를 챙겨들고 다시 가마에 올라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길을 떠났습니다.
이 두 사람은 만났습니까, 만나지 못했습니까? 아마 그 환이는 왕휘지의 필적을 익히 보았을 것입니다. 마음속으로 깊이 존경하고 좋아하고 그리고 또 모든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 왕휘지 같은 사람이라면 내가 이렇게 부르는 피리소리로 나의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말 한 마디 건네지 않고 가던 길을 다시 떠났을 것입니다. 당대의 가장 아름다운 글씨를 쓸 수 있는 서도의 성인, 또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지어낼 수 있는 피리의 달인. 동시대의 두 사람은 그렇게 인생의 짧은 한 순간, 한 사람은 피리를 불고 또 한 사람은 듣는 것으로 완전한 만남과 합일을 이루고는, 거기에 그 어떤 사족도 붙이지 않고 헤어진 것입니다. 사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만남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굽이굽이 늘어져 길다고 해서, 평생을 함께 한다고 해서 그런 만남이 꼭 진실해지고 심오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단 한 순간일지라도 그 사람의 진면목을 목도하게 되었을 때, 단 한 순간이라도 내 모든 속을 거짓없이, 진실로 드러내어 보일 수 있을 때 그 만남과 공존은 완성되고 비로소 빛이 나는 것입니다.
저는 법정스님을 고등학교 다닐 때, 무소유라고 하는 작은 문고본을 통해서, 여러분도 아마 그 책으로 법정스님을 알게 되고 그리고 스님이 떠난 뒤에도 내내 그리워하게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도 마찬가지로 그 책으로 스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실제로 스님을 직접 뵙게 된 것은 대학시절이었습니다. 당시 5공화국 초기 대학가 주변에는 연일 시위가 이어지고 시위진압용 최루탄이 터지고, 그리고 수많은 투사들이 투신하고 분신하고 끌려가던 때였습니다. 그때 스님께서 학교에 '선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오신다고 해서, 그 답답하고 막막한 한 젊은, 고뇌하는 청년의 마음속에 한 줄기 빛이 스며드는 기분이어서 강의도 다 제쳐두고 그 법문을 들으러 갔습니다. 스님을 뵙자마자 마음속이 환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때 스님은 아마 한 오십 쯤 되셨을까 했는데 대춧빛처럼 불그스름한 얼굴엔 밝은 광채와 맑고 서늘한 기운이 얼굴에 가득했어요. 온갖 잡다한 것에 물들지 않고 홀연히 벗어나 조금도 거침이 없고 너무나 활달하고 당당한 한 인간을 먼빛으로나마 보게 된 것입니다. 그때 당신이 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별다른 수식 없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머러스하고 통쾌하게 강연을 하시는 것을 보고 내 존재는 송두리째 흔들렸지만 당신의 그 모습, 기상, 그 자유로운 한 인간의 존재가 저로 하여금 비로소 삶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눈뜨게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나중에 학교도 마치고 군대도 다녀오고 또 세상에서 발을 붙이고 살아보려고 방황에 가깝긴 했지만 공사판에도 막노동도 해보고 하다가, 마침내 이제는 내 길을 가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을 때 조금도 주저 없이 법정스님을 향해서 밤기차를 탔습니다.
법정스님은 어떤 분인가?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그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아주 간단하게 한 마디로 줄이자면 무엇보다 스님은 살아있는 지성인이었습니다. 그분이 스님이다, 혹은 수필가다, 다인이다. 그렇게 불리기 전에 깨어있는 한 인간이었다는 뜻입니다. 진정한 지성이 무엇인가를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신 분이었죠. 한 순간도 저는 스님이 흐릿한 채로 계신다거나 혹은 뭔가 분명하게 옳고 그름을, 또 좋고 나쁨을 가리지 못하는 흐리멍덩한 마음으로 계시는 것을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무엇인가 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어느 순간에라도 그것을 주저 없이 할 자세가 늘 서있는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조금도 우물쭈물하신다거나 이리저리 계산하면서 미적미적하시는 것을 본적이 없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자기 안에 지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지성이 오히려 어떤 때는 대단히 우유부단하고 옳고 그름을 얼른 결론내리지 못하고 사변, 혹은 철학적인 회의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님의 지성은 언제든지 깨어있는 것이었고 또 그것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자신의 존재로, 행동으로 증명해보일 수 있는, 살아있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지금 '법정스님이 이렇게 대단한, 위대한 분이셨다.'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혹여 여러분을 주눅 들게 하거나 스님을 스타처럼 여기고 팬이 되어 따르라고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 안에 그런 가능성이 다 있어 그렇게 나아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한다면, 지금부터 그렇게 결행해갈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드리기 위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아마 우리가 법정스님 같은 분을 만나고 알게 되었고 또 지금 다시 법정스님을 배우려고 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스님이 살아오신 시대는 대단히 거칠고 수많은 질곡이 있는 암흑, 혹은 과도한 격변기였습니다. 태어나신 곳은 저 땅 끝, 해남의 바다가 보이는 마을, 일제 치하에 태어나셨고,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님은 돌아가시고 어머님은 개가하셔서 할머니 밑에서 불우하게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아주 어릴 때부터 그 격변의 시대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 그런 큰 비전을 분명히 지녔고 그것을 향해서 조금도 망설임 없이 화살과 같이 나아갔습니다. 그렇게 만든 것이, 그렇게 이끈 것이 바로 스님의 지성이었습니다.
대학 다닐 때는 6.25전쟁을 만났습니다. 겨우 일제 치하에서 해방 돼서 이제부터 민족의 앞날을 열어 가야 할 시기에 동족끼리 사상적인 대립으로 갈라서 결국은 서로 죽이고 온통 민족의 운명을 파멸로 몰아가는 전쟁의 참상을 목도하시고는 굉장히 좌절하시기도 했지만, 어쨌든 거기서 세속의 모든, 혼탁하고 시시한 것들을 떠나서 높고 분명한 진리의 세계로 나아가야겠다는 마음을 굳히고 출가하시게 되었습니다. 지성이란, 즉시 행동해 나아갈 수 있는 '깨어있음'이라고 말씀드렸지요. 그런 지성의 힘으로 스님은 출가를 결행하시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책을 좋아하고 문학을 사랑하셨는지, 출가하실 때도 결국은 그 책을 놓지 못해서 그 책들 가운데 몇 권을 고르고 골라 가지고 가셨다는 이야기, 한 번쯤은 들어보셨지요? 나중에 효봉스님을 모시고 수행을 하시던 중에도 책을 놓지 못하시다가 결국 효봉스님께 뺏겨서 보는 자리에서 불태워지는 것을 보면서 굉장히 큰 좌절감을 느끼게 되었다는 이야기 또한 아실 것입니다.
스님의 그런 지성 가운데에는 자유에 대한 사랑과 그 추구가 녹아 있었습니다. 사실 지성의 본질은 정직성과 사유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고의 틀, 닫혀있는 사상, 혹은 그런 스승, 교조적인 도그마에 갇히면 지성의 친구는 깨어있음이고 살아있음이지 도그마나 짜인 이론, 정해진 가이드라인이 아닙니다. 지성은 자유롭게 제 걸음을 그 스스로 가는 것입니다.
심지어 스님은 선풍이 드높은 우리 한국의 불교에 귀의한 사문으로서, 자기 수행 끝에 큰 깨달음을 얻어 진리를 파지하고 그래서 이 생사의 괴로움을 초극하고 다른 존재들에게 삶과 죽음의 온갖 고통과 그 미혹함을 벗어나도록 이끄는 선의 본질과 그 가치에 크게 공감하고 그 세계에 투신하기도 했지만, 어떤 때는 거기에도 갇히지 않고 모든 격 밖에 초연히 벗어나는 데 오히려 선의 살아있는 정신이 있다고 믿고 몸소 그렇게 실천해보이시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스님은 고준하고 탈속한 선의 세계보다는 오히려 국가와 인류의 시대정신을 더 바르고 견고하게 지니고 실천해가고자 하셨다고 봅니다.
스님께서 효봉스님을 모시고 지내실 때의 이야기는 여러분도 책에서 많이 보셨을 것 같습니다. 전쟁이 막 끝나 궁핍하고 어려운 시절 쌍계사, 지리산 산골의 절에서 노스님을 모시고 지내는데 먹을 것이든 생활에 필요한 다른 것들이든 무엇 하나 변변한 게 없었겠죠. 장에 가서 무엇을 사고자 하면 몇 십리 길을 걸어서 다녀와야 하던 때였다고 합니다. 게다가 스님은 선사라면, 혹은 수행자라면 늘 검박하고 가난하게 살아야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효봉스님께 밥 조금에 김치 몇 조각 놓은, 너무 조촐한 공양을 매일 지어 올렸다고 해요. 효봉스님께서도 거기에 대해 조금도 불편해 하신다거나 조금 더 나은 것으로 공양하자고 하시지는 않았지만, 제자가 세속의 글줄 같은 데 메이고 문학 따위에 탐닉하는 것을 경계하고 진실한 수행자의 내면은 오로지 자기의 마음을 밝히는데 두어야 한다고 경책하시느라 책을 뺏어 불태우셨겠죠.
그런데 결국 스님은 안팎이 철두철미하게 선의 기봉으로만 드높은 효봉스님보다 운허스님, 청담스님 같은 분, 생각이 원칙이나 전통적 원류에 뮦여 있기보다는 활달하고 자유롭고 시대의 요구에 응하는 수행의 방식에 더 끌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효봉스님을 떠나게 됐죠. 효봉스님과의 안거가 끝나고 미얀마에서 세계 불교대회가 열렸는데, 다른 스님들은 거기 한국 대표로 참석하시는 효봉스님의 시자로 법정스님이 따라가야 한다고 하면서 그곳에 가서도 스승을 잘 모시라고 했는데, 효봉스님이 다른 스님을 데리고 가겠다고, 법정스님은 선방에 가서 수행을 하라고 하셨다고 해요. 보통 사람들 같으면 스님을 가까이에서 모시지 못하기 되었기 때문에 실망하고 좌절했을지 모르지만 스님은 효봉스님 슬하를 떠나서 산문 밖을 나서면서 너무 후련하고 기분이 좋아 논둑에서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었다고 합니다.
효봉스님은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일제시대에 한국의 최초의 판사가 되어서 온갖 명예 속에서 세인의 부러움을 사면서 지내시다가 민족의 해방을 위해 싸우는 독립군에게 사형 선고를 해야 하는 운명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지금까지 자신이 처해 있던 세속의 삶에 크게 회의를 느끼고 집을 떠나 엿장수로 3년을 떠돌다가 훗날 금강산에서 석두화상(石頭 和尙)을 만나 출가하셨고, 치열한 용맹정진 끝에 무문관에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그 후로 대한불교조계종의 초대종정을 역임하시고 송광사 해인사 등에서 높이 선풍을 드날린 위대한 선사이셨지요. 그런 분도 법정스님은 당신이 타고난 기질이나 지향하는 것에 맞지 않고 함께하기 힘들다고 판단이 서면 돌아서서 떠나셨던 거예요.
나중에 법정스님은 실제로 선방에 가서 수행을 하다가, 전형적인 선수행자의 삶을 접고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해인사에서 한 사건이 그 계기가 되었습니다. 해인사는 법보종찰, 부처님의 팔만대장경이 모셔진 큰 절이고, 그 장경각에서 매일 기도하면서 스님의 퇴설당 선원의 수행을 이어가셨죠. 그런데 하루는 장경각에서 나오는데 어떤 할머니가, 여기 부처님 말씀이 새겨진 대장경이 있다는데 그게 어디에 있느냐고 법정스님께 물었다고 해요. 그래서, 방금 보살님이 거기서 나오시지 않으셨느냐고, 거기 목판이 다 대장경판이라고 대답하니까, 아, 그 빨래판 같이 생긴 게 부처님 경판이냐고 반문을 하자, 크게 충격을 받습니다. 대부분 불제자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이야말로 궁극의 깨달음을 이룬 위대한 각자가 설파한 진리, 인류가 발견한 존재에 대한 더할 나위 없는 통찰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부처님의 가르침은 과학이 발전하고 현대의 온갖 지식과 기술이 우주의 전모를 드러내는 이 시대에도 조금도 흔들리거나 수정되지 않는 영원한 진리입니다. 그런데 법정스님은 불법이 아무리 그런것이라고 할지라도 해독할 수 없는 문자로 되어 있다면, 부처님의 일대장교가 알 수 없는 문자만 적혀 있는 나무판이라면 그건 빨래판만도 못하다는 자각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스님은 어떻게 하면 이 시대의 온갖 고난과 어려움에 혼돈, 바쁜 일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불법을 전할 것인가로 골몰하시게 되죠. 여러분은 아마 법정스님의 글을 보면서, '참으로 우리말을 잘 다루는 분이시구나. 정말 유려하고 아름답고 다시 음미하면 음미할수록 깊이 있는 울림이 있는 글이다.'라고 느끼셨을 테지만, 또 하나, '참 쉽고 간결하구나. 정말 이해하고 따라가기가 매끄럽구나.'하고 느끼셨을 것입니다. 스님의 그런 쉬운 글쓰기는 그 할머니가 대장경판을 빨래판이라 일컫는 것을 들은 데에서 기인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좋은 글, 그리고 이 시대의 아픈 중생들에게 위로가 되고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글을 써보자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처음에, 그 무렵 팔만대장경을 한글화하는 작업을 시작하셨던 운허스님께서 법정스님과 같은 유능한 인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셔서 청하셨고, 거기에 응하면서 스님의 글쓰기가 시작되었죠. 그래서 스님을 위시한 몇몇 선구자적인 불교인들에 의해서 한글대장경이 나오기는 했지만, 스님은 그조차도 사람들에게는 어렵고 멀다고 느끼신 거예요. 그래서 결국, <영혼의 모음>이나 <무소유>와 같은 초기의 저서에 실린 글들을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스님은 그 무렵에 4.19혁명과 같은 일들을 겪으며 시대의 흐름에 눈뜨게 되셨어요. 모든 지성은 자기 내면을 철저하게, 깊이 들여다보고 파고들지만 세상을 도외시하지도 않습니다. 자기 세계에만 갇히지 않습니다. 근대화, 해방, 전쟁, 개발독재, 이런 것들이 우리 부모님 세대와 우리 세대를 관통하는 시대적 흐름인데 그 과정의 어떤 것들도 순조롭고 무난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상처받고 피땀 흘렸고, 또 삶 자체가 왜곡되었습니다. 그런 시대를 스님은 깨어 살아오셨기 때문에 시대를 직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연히 시대 속에서 함께 아파하고 참여하는 지식인들과 교류하게 되었고, 한국 민주주의 발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인 함석헌 선생이나 장준하 선생을 만나 가깝게 지내며 독재정권과 대결했습니다. 유신정권이 유신헌법을 만들어서 거기에 반대하는 지식인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할 때, 스님 같은 지성인들은 거기에 목숨을 걸고 저항했습니다. 이것이 또한 지성의 역할이고, 소명이고 특권이었습니다. 행동하지 않은 지성은 아직 동굴 속에 있는 것이고, 아성을 벗어난 것도 아닙니다. 그때 장준하 선생이 원인 모를 의문사를 당하게 되죠. 혼자 산에서 등반하다 실수로 떨어졌다고 했지만, 최근 그 사인이 실족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런 어둡고 아픈 시대였습니다.
그런 시간이 지나고 스님을 다시 산중의 스님으로 돌아오게 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인혁당 사건이었습니다. 친북세력이 남한에 당을 만들어서 체제를 전복하려고 한다는 명분으로 유신체제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엮어서 투옥시키고 또 일단의 젊은이들에게 사형을 선고한 뒤 8시간 만에 바로 사형을 집행해버린 일이었습니다. 그것으로 스님은 다시 산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포기나 좌절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스님은 그때 잡혀가서 심한 고문을 당하고 정보부 사람들이 거의 만신창이가 된 스님의 몸을 길거리에 버려놓다시피 했는데, 그 스님을 모시고 가서 병원에 입원시키고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당시의 동아일보 해직기자들과 몇몇 언론인들이었다고 합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아무리 옳은 것을 향해 몸을 던지고 행동한다고 해도 그 속에 적에 대한 증오심이 담겨 있고, 또 그것이 궁극적인 선이나 우리 모두의 행복을 기약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면 부처님이 가르치셨듯이, 이 생사의 덧없음과 고통을 총체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구도의 길에 투신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고 또 진실로 사람들을 도와 이 시대를 구원하는 길이라는 자각을 하신 것입니다.
2013년 10월 21일 인도네시아 법문 中
소식지 法華법화 2014 / 3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마음 작성시간 15.03.15 스님의 글을 통해 어줍짢지만 불자의 자리 한켠에 있게 해주셨습니다.
언제나 당당하시고 명쾌하셨던 사자후가 늘 그립습니다. -
작성자carlthomas 작성시간 15.03.15 내일이면 현대인의정신적인 지주였던,영혼을 울리던 어른스님의다례날 입니다.그땐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하나?,그러나 나약한 중생은 가슴깊은곳 에 그리움이 쌓이면 눈시울을 적시곤 했지요.어른스님.영정앞 에 한송이곷과차 를 올립니다.가장 가까이도 닮으셨던 ,마지막 열반적에 드셨을때도 뫼셨던 우리들의선지식이신 암주스님!
존경스럽고 감사 드립니다.
眞虛 母 _() -
작성자heidy 작성시간 15.03.23 맑음님 감사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