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의 전반부, 즉 그리피스와 가츠와의 만남, 용병전, 거듭되는 승리, 그리고 가츠의 이별, 그리피스의 패망, 환생에 이르기까지, 이 만화에서 그리피스는 가츠를 분명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 감정을 사랑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남학교나 군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종의 동성애적 성향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사실, 만화에서 그리피스에게는 사랑이 없었습니다. 다만 가츠에 대해서는 자기 이외의 2인자로서 인정하며, 좋아하는 마음과 가지고 싶은 마음, 뺏기고 싶지 않은 마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자신도 모르게 가츠를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동성만으로 구성된 폐쇄그룹에서 조직의 2인자가 '부인'이나 '마누라'에 비유되는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이것은 용병사회에서는 있을 수 있는 당연한 현상입니다.
따라서 캐스커도 이런 가츠를 질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가츠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캐스커가 2인자로서 이런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캐스커는 그리피스를 여자로서 좋아하는 감정보다 이러한 감정이 더 큰 것으로 보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관계를 (둔탱이) 가츠 외에 다른 모든 부대원들은 알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부대원들은 그리피스를 구하러 가면서 '아마도 내 생각에 그리피스는 가츠를...' 이라고 말하다가 쥬도에게 제지를 받기도 하고, 가츠만이 유독 신임을 얻는 것을 질투하곤 합니다. 캐스커도 가츠에게 여러 번 '왜 그리피스는 너 아니면 안되는 거야' 라는 식으로 말하곤 하죠.
그리피스가 가츠에게 실연(!)당한 이후에 공주에게 자러 간다던가 하는 식의 에피소드는 어떻게 보면 이별한 남자가 자신의 몸을 창부에게 맡긴다- 라는 식의 상투적인 전개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재생의 탑에서 고문당하는 와중에도 그리피스에게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가츠의 환한 모습 뿐입니다.
그리피스가 대단히 모호하고 어려운 목표인 '왕이 되자' 에 매진하는 중에 가츠는 자신의 마음 속에서 어느새 커져갔으며, 두 목표 중에 어느덧 더 커져버린 가츠라는 목표가 사라지자, 그리피스는 '왕이되자'라는 목표조차 쓸모없다고 여겨버려서 무의식중에 과감히 포기해버린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 벨섹 카페원들은 '정신상태가 불안한 그리피스의 줄줄이 도미노현상'이라고 표현했었습니다 ^^
전생의 과정에서 그리피스가 캐스커를 겁탈한 것은, 바로 가츠를 겁탈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리피스는 가츠에게 가학적인 방법으로 잊혀지지 않는 자신의 상처를 남기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는 성공해서, 캐스커를 매개로 가츠와 그리피스는 가장 강력한 복수의 상대자가 되며 서로를 갈구하게 됩니다.
이 만화에서 사실 누가 더 나쁜 놈인가 하는 감상보다는 가츠와 그리피스의 서로에 대한 상처주기/감정싸움에 초점을 맞춰서 읽어보시면 아마도 사건의 전말이 더 확연히 이해될 겁니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구리비석 작성시간 05.08.10 데미안을 깊이있게 읽은 사람이라면 베르세르크는 평생 잊혀지지 않을 충격일것입니다.
-
작성자Gpeace 작성시간 05.08.14 베르는 역시 가츠와 그리피스 사이에 오가는 감정을 느끼며 봐야지 진정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리피스가 가츠를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쉽사리 가츠를 죽이지 못하고.. 그것때문에 또 다시 고드핸드로서 파멸하지 않을지..
-
작성자Gpeace 작성시간 05.08.14 그리고 저도 데미안과 베르를 비교했던 글을 올렸던 적이 있었어요~ 데미안이라는 소년의 카리스마가 그리피스와 비슷하게 느껴졌었거든요..
-
작성자사미자 작성시간 05.08.30 음~ 글 잘 읽었어요~~ 저도 동감~
-
작성자쫑이남자친구 작성시간 05.09.22 전 일식에서 페무토가된 그리피스가 가츠와 캐스커를 업고 도망치는 해골기사를 공격하려다가 그냥 두잖아요. 그게 뭔가 걸리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