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의 말이 아름답습니다 |
| 세종은 대한민국 모두가 알면서도 잘 모르는 왕인 듯하다. "당신의 말이 아름답습니다." 어느 날 세종이 신하와 이야기를 나누다 말했다. 신하가 한 번도 들어본적 없는 말이었다. 왕이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하다니. 그 신하의 마음이 어땠을지, 나는 오래 상상해 봤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말이 귓가를 맴돌았을 것이다. 왕이 건넨 한마디가 한 사람의 하루를 아름답게 물들이는 장면이다. 이 한마디는 《세종실록》을 읽다가 오래도록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멈춰서게 한 문장이다. 세종은 옳은 말을 '훌륭하다'도 '옳다'도 아닌, '아름답다' 라고 표현했다. 그 뒤로는 더욱 흥미로운 내용이 이어진다. 세종은 자신과 신하의 의견이 다를 때 이렇게 말했다. "두 의논 모두 아름답다. 그러나…" 먼저 신하를 존중한 다음 자기 의견 꺼내는 대화 방식이었다. 그 한마디에 회의 분위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왕이 결정을 내리는 대화가 아니라 함께 결론에 이르는 대화였으리라. 회의가 한창이던 어느 날, 세종이 한 젊은 신하에게 물었다. "사람이 용을 볼 수 있는가?" 왕의 질문치곤 엉뚱했지만 신하는 당황하지 않고 답했다. "경상도 양산의 용당에 용이 나타났을 때, 사람들이 용의 허리만 보고 머리와 꼬리는 보지 못했다 합니다." 세종은 자기 생각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내 생각에는, 우연히 구름과 안개의 기운이 뭉쳐 형태를 이룬 듯하다." 한참 대화가 오간 뒤 세종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용도 죽는가?" 신하가 답했다. "모든 생명은 한 번 태어나면 한 번은 죽기 마련이니, 용도 어찌 죽지 않겠습니까." 세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 또한 그렇게 여기고 있다." 이는 부모와 자식, 친한 친구 사이에나 오갈 법한 선문답에 가깝다. 왕과 신하가 회의 중에 이처럼 결론도 명령도 없는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그만큼 가깝게 지낸다는 뜻이었다. 이렇듯 세종과 신하는 일을 하다 막히면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으며 함께 풀어 갔다. 평소에도 자주 이야기하며 공감을 쌓아 왔다고 봐도 될 것이다. 세종의 이런 마음은 회의실에만 머물지 않았다. 《세종실록》에는 들판에서 굶주린 채 일하는 농부에게 따뜻한 밥을 지어 먹인 기록도 있다. 지방으로 떠나는 수령에게는 "가거든 백성을 사랑하라."라고 거듭 당부했다. 신하에게 건넨 말과 농부에게 밥을 지어 먹인 행동은 같은 마음에서 나온 것일 테다. 사람을 귀히 여기는 마음. 그 마음이 말이 되면 '아름답다'였고, 행동이 되면 '밥'이었다. 모두가 알고 있듯 세종은 많은 일을 해냈다. 그러나 그 업적은 세종 혼자 이룬 것이 아니었다. 주변 사람의 말이 아름답게 피어날 자리를 먼저 만들어 둔 덕분이었다. 훈민정음, 측우기, 새로운 법과 제도도 결국은 누군가가 두려움 없이 꺼내 놓은 말 한 조각에서 시작됐다. 디자이너로 일해 온 내게도 이런 장면이 낯설지 않다. 어설픈 스케치를 들고 상사 앞에 섰을 때 "그거 재미있네."라는 한마디를 들으면 신이 났다. 그리고 몇 달 뒤 실제로 쓸 수 있는 물건이 탄생했다. "그게 뭐냐."라는 핀잔을 들은 스케치나 아이디어는 쓰레기통으로 들어갔고, 더 이상 이에 대해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당신의 말이 아름답습니다."라는 말을 건네 본 때가 언제인지, 한참 더듬어야 했다. 아름답다는 말은 가볍지 않다. 들은 사람은 몇 년이 흘러도 그 한마디를 추억할 것이다. 600년이 지난 지금도 세종이 건넨 한마디가 《세종실록》을 펼친 사람의 마음을 두드린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오늘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누군가의 말이 아름답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는지, 그렇다면 마음을 그 자리에 말로 건넸는지, 건네지 못했다면 오늘 밤 짧은 문자 한 줄로라도 전할 수 있을지. 당신의 한마디가, 누군가의 다음 말을 세상 밖으로 아름답게 걸어 나오게 할지도 모른다. 김경묵 | 인문학공장 공장 김경묵 님은 삼성전자에서 20년 동안 디자이너로 일했고, 이건희 회장의 디자인 경영을 세상에 알렸다. 스스로 회사를 떠나 기업과 개인의 창의성을 뾰족하게 깎아내는 '디크리에이션' 훈련 과정을 개발했다. 《세종도 이도 다이어리 》를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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