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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통감부(統監府)-조선 총독부(總督府)

작성자최고봉|작성시간26.06.23|조회수11 목록 댓글 0

남산의 통감부(統監府)-조선 총독부(總督府)




통감부(舊 조선총독부)  북측 모습

을사조약 이후 1906년 발족된 조선통감부는 한일합방 후 조선총독부가 출범하기 전까지 조선의 국가실권을 장악하였다. 초대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는 통감부 청사를 남산 중턱에 건립하여 1907년 2월 28일 구 외부(舊外部)로부터 이전하고 집무하였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으로 일제의 조선식민지화의 기틀을 마련한 조선통감부는 일본 공사관이 폐쇄된 바로 다음 날인 1906년 2월 1일 통감부 청사로 문을 열었다.

서울 시내를 굽어보는 남산 중구 예장동 서울애니메이션 센타 자리에 있었던 통감부의 북측 모습으로 일제의 조선병탐 후에는 조선총독부로 경복궁을 가로막고 세워진 조선총독부(후에 중앙청,중앙박물관)로 신축 이전까지 사용되었던 건물이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부터 왜군이 진주하여 왜성대라고 불리는 곳으로 후의 본정통(명동)과 인접한 일본인 집단 거주지에 인접하고 조선신사, 경성신사와 동원본사 ,총독관저와 인접하여 일제 침략의 본거지였다.
















남산 왜성대에 위치한 조선 총독부 북측면 모습






조선총독부(원래 통감부)의 서측면






총독부와 일본인 거주지역


멀리 시계 11시 방향에 명동성당 2시 방향에 일본인의 사찰인 동원본사와 그 옆에 총독부 그앞에 숲이 갑오기념비가 있던 남산공원(지금의 게이불카 승강장 자리 ?)로 보인다.

남산 예장동 일대는 한일병합 이전부터 일본인들의 집단 거주지로 신흥 주택가임을 보여준다. 총독부 아래로 마치 사하촌(寺下村)처럼 일본식의 가옥이 들어선 일본인 집단 거주지를 거느리고 있는 모습이다.




남산 통감부 건너편에 있었던 동원본원사


일본세력의 팽창과 함께 일본불교의 포교활동을 위해 독립한 사찰들을 설치하기 시작하였는데 서울은 남산을 중심으로 많은 일제의 사찰 세웠는데  남산의 동본원사는 가장 규모가 컸던 것으로 처음 1906년에 건축할 때에도 남산의 큰 목재와 돌을 작벌 사용하였으며 1907년에는 용문산 상원사에 있던 신라시대의 대범종을 가져다 달기도 하였다.




총독부와 동원본사


우측 상단의 총독부 건물과  좌측의 동원본사 그리고 그 밑으로 일본인들의 집단 거주지역의 일본식 기와 지붕의 가옥들이 있다.  우측 전면의 나무 있는 곳이 남산공원으로 갑오 기념비가 서있었던 곳으로 보인다 .




총독부와 남산 순환도로의 옛 모습


시계 9시 방향에 명동성당과 사제관 그리고 동원본사(현재 영상진흥원 자리?) 중앙에 조선총독부7시 방향에 나무숲이 갑오기념비가 있던 남산공원으로 보인다. 3시 방향 소나무 숲 뒷 쪽는 경성신사가 있었던 곳(현재 숭의여자대학)으로 보인다






통감부 터 표지석



남산 갑오 기념비





통감부 및 갑오기념비








남산공원 갑오기념비 위의 사진을 칼라로 보정한 사진









대한제국 황제 위에 군림한 통감부 설치 
-허동현 경희대 학부대학장·한국근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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