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구학의 대가 허임은 누구인가
조선조 17세기는 침구의학의 황금기였다. 당시 왕실의 빈번했던 침구치료와 조선 전역에서 배출된 여러 의가들의 활약이 그 증거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와 관련된 기록이 많이 등장한다. 당대의 명재상 유성룡(1542~1607)이 의학입문이라는 명나라 의서의 경혈관련 부분을 정리하여 침구요결(鍼灸要訣)이라는 책을 저술한 것도 이 시기의 분위기를 대변해주는 한 예다. 침구 방면에 있어서 이렇게 사회적으로 고조된 관심이 학문적 결실로 연결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여러 의가들이 활약한 중에서도 당시 침구학의 발전을 주도하고 빛나는 저술을 남겼던 두 사람의 의가가 있었으니, 허준(許浚)과 허임(許任)이 바로 그들이다. 허준하면 동의보감으로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름이지만, 허임이란 이름은 낯설다. 모든 의학 영역에 두루 정통하였고 조선 전시대를 통해 가장 많은 의서를 저술했던 대학자 허준이지만, 적어도 침구분야만을 본다면 허임의 이름 또한 그에 뒤지지 않을 듯 싶다. 조선의 침구학을 말할 때 빠트릴 수 없는 의가가 바로 허임이다. 당시 세간에서 침구의가로서 허임의 명성은 매우 높은 것이었다. 그는 1644년에 조선 최초의 본격적인 침구전문서라 할 수 있는 침구경험방을 저술했다.
허임과 허준 두 사람은 조선침구학의 발전을 이끌어간 쌍두마차였고, 그들의 저술은 그 결정이었다. 이에 본 글은 17세기 조선에서 기록된 두 의서를 중심으로 당시 침구분야에서 논의된 제반 얘기를 살펴보기로 한다. 즉 허임의 침구경험방을 한 축으로 하면서, 거기에 허준의 동의보감침구편을 보충하고, 침뜸의학에 대한 일부 개론적인 내용을 첨가하는 형식을 취한다.
장장 400년 전이라는 먼 시간을 거슬러 갖다 댄 이러한 조명을 통해 드러나는 조선땅의 침뜸역사는 어떤 것일까? 또한 그것은 오늘 우리에게 무슨 의미를 되돌려 줄까? 이런 물음과 함께, 양 허씨가 이끄는 마차를 타고 조선침구의 진경시대로 여행을 떠나보자.
침․뜸을 모르면 명의 아니다
침뜸의학은 오랜 유래와 긴 발전과정을 거쳐왔다. 조선의 침뜸의학을 말하기 전에 간략하게나마 그 유래를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 일찍이 석기 시대에 돌조각, 즉 돌침(폄석)으로 우리 몸을 누르거나 찔러서 질병을 치료한 것을 침치료의 시초로 볼 수 있다. 또 뜸이라는 구(灸) 자는 곧 작(灼)을 의미하는 것으로 나뭇가지나 풀 등에 불을 붙이거나 뜨겁게 하여 병을 치료하기 시작한 것이 나중에 쑥을 이용하게 되면서 다양하게 발전하게 된 것이다.
사회의 발전과 함께 침구학술의 발전도 촉진되었는데, 1973년 중국 호남성 장사시 마왕퇴 3호 한묘에서 출토된 의학백서는 가장 오래된 경락학설의 초기면모를 보여준다.
전국시기 이후 한대에 걸쳐 형성된 동양의학 최고의 원전이라 할 수 있는 황제내경은 경락, 경혈, 침구방법 등에 대해 풍부한 내용을 싣고 있어 침구학술 발전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게 된다. 내경이라고 간략히 부르기도 하는 이 책은 소문과 영추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 영추는 침경이라고도 한다. 약물요법이 본격적으로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내경에서 가장 비중있게 다루는 치료방법은 약물이 아닌 침뜸요법이다.
이렇듯 오랜 역사 속에 침뜸의학의 발전은 결코 단선적일 수 없었다.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지역에서 여러 의가들의 다양한 이론과 경험이 얽히고 설키면서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게 발전해왔다. 이러한 시대, 지역, 의가를 그 특징에 따라 몇몇 유파로 구분해보면 다음과 같다.
1.침구경전 연구에 힘을 쏟았던 의가들 ~경학파(經學派)
2.경혈을 연구하여 정리하는데 힘썼던 의가들 ~경혈고증파(經穴考證派)
3.어떤 경혈을 선택해 치료할 것인가를 연구했던 이들 ~혈법파(穴法派)
4.침을 놓는 기법을 연구했던 의가들 ~수법파(手法派)
5.침을 찔러 피를 빼내주는 치료를 중시했던 이들 ~자락방혈파(刺絡放血派)
6.뜸치료를 중시했던 의가들 ~중구파(重灸派)
7.침치료에 치중했던 의가들 ~중침파(重鍼派)
8.특정한 과의 질병을 전문적으로 치료했던 의가들 ~임상각과제파(臨床各科諸派)
일침(一鍼), 이구(二灸), 삼약(三藥)이라고들 한다. 어느 것의 우선을 따지기 이전에, 세 가지 치료수단이 있음을 알려주는 말이다. 침과 뜸 그리고 약물, 이 셋은 전통의학의 대표적인 치료수단이다.
일찍이 손사막(581~682)은 천금방에서 이렇게 말한다.
침뜸을 놓고 약물을 써야 한다. 약물만 쓰고 침을 쓰지 않으면 훌륭한 의사라고 할 수 없다. …침을 놓고 약물을 알아야지 진짜 훌륭한 의사다. 이것은 침뜸과 약물이 서로 돕는 작용을 한다는 말이다.
양계주(1522~1620)라는 침구의 역시 침구대성 중의 제가득실책(諸家得失策)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병이 장위(腸胃)에 있으면 약물이 아니면 건질 수 없고, 병이 혈맥(血脈)에 있으면 침이 아니면 미칠 수가 없으며, 병이 주리(理)에 있으면 뜸이 아니면 도달할 수 없다. 의사에게는 침과 뜸과 약물 어느 하나도 빠뜨릴 수 없다. 많은 의사들이 병을 치료함에 단지 약물만 사용하고 침뜸은 버리고 있는데 그래서야 어떻게 환자의 원기를 보전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의가들의 주장은 침과 뜸과 약물은 각각의 적응증이 있으며, 의사는 마땅히 질병과 필요에 따라 모든 치료수단을 적절하게 활용할 줄 알아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침뜸에 대한 조선사회의 관심
…침뜸 처방은 돈을 들여가며 멀리서 구하는 수고를 안 해도 되며, …준비하기 쉽고 휴대하기도 편하며, 빈부귀천이나 병의 완급에 관계없이 적합지 않을 때가 없고, 하물며 효과에 있어서도 약으로는 기대할 수 없는 바가 있어 그 신묘함을 다 말할 수가 없다.…
이는 성종 때 중국침구서인 신응경을 간행하면서 한계희(1423~1482)가 쓴 서문에 나오는 내용으로 침뜸치료의 간편성과 경제성, 그리고 치료효과의 우수성 등 침뜸의 장점을 잘 지적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해 침뜸은 어느 시대를 불문하고 거의 환영을 받았다. 이는 일반 백성들에게는 물론이요 국가나 관료들에게도 꼭 필요한 치료수단이었던 것이다.
조선도 초기인 태종 때부터 명에 가는 사신에게 침구도를 가져오게 할 정도로 침구분야에 관심을 보였다. 의학교육 때도 침구관련 과목은 필독서로 지정되었고, 여러 침구서적들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세종 때 간행된 향약집성방은 수혈 정리에 노력했고, 조선 최대의 의방서인 의방유취에서도 상당한 침구관련 서적을 인용하여 싣고 있다. 허준과 허임으로 이어지는 조선중기 침구학은 이러한 토양 속에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물결은 조선후기로도 면면히 이어져 번침술로 유명한 이형익, 토착적이고 새로운 침법을 이끌었던 사암도인 등으로 발전해가게 된다.
아무튼 허임에 대해 침구경험방에 발문을 썼던 이경석(1595~1671)이 한 말을 보자.
신(神)의 기술을 가진 자로 평생 구하고 살린 것이 손으로 다 꼽을 수가 없다. 그간 죽은 사람도 살리는 등 효험을 많이 거두어 명성을 일세에 날렸으며 침가(鍼家)들이 추대하여 머리로 삼는다
이는 허임에 대한 당시 세간의 평가를 잘 요약하고 있다. 허임의 생졸년은 대략 1570~1647이라는 기록이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 실록에 따르면 그는 악공의 아들로 천민 출신이었다. 그런 그가 어떻게 태의에까지 이를 수 있었을까? 당시에는 지방에서 침술로 이름이 높은 이들을 서울로 불러올려 왕실의 진료에 참여시키는 경우가 많았는데, 허임 역시 이런 식으로 등용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