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성경: 마태복음 13장 13~17절, 마태복음 11장 25~27절, 마태복음 5장 1~10절, 베드로후서 1장 3~10절)
오늘 우리는 잠언 29장 18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의 세 가지 덕목’이라는 제목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다 함께 믿음으로 선포하며 따라 해 보겠습니다. “신앙생활의 세 가지 덕목!”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 세 가지 덕목이 없으면 결코 바른 신앙의 길을 걸어갈 수 없습니다. 어느 것 하나만 빠져도 우리의 영적 삶은 순식간에 균형을 잃고 무너져 내립니다. 성령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세 가지 주안점, 즉 첫째 겸손, 둘째 성장에 대한 갈망, 셋째 나의 삶의 도전(비전)을 가슴 깊이 새기는 시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첫 번째 덕목: 겸손 — 나를 꺾고 주님의 진리를 앞세우는 태도
우리가 바른 신앙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가장 먼저, 그리고 평생토록 지켜내야 할 영적 덕목은 바로 ‘겸손’입니다. 겸손이 사라진 자리는 교만이 채우게 되며, 교만은 하나님 나라의 법에서 가장 엄중하게 다뤄지는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사역의 종말을 가져옵니다
교만이 한 사람의 영혼과 사역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도 우리는 똑똑히 보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만 하는 이야기이지만, 과거 어느 교회에서 한창 큰 은혜를 끼치며 잘나가던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청년들을 열정적으로 가르치고, 해외 치유 집회 강사로도 나가며 영상 설교가 매주마다 도배되다시피 하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분의 이름과 설교 영상이 완전히 쑥 빠져버렸고, 흔적조차 지워졌습니다.
제가 이유를 몰라 궁금해할 때 제가 아는 목사님이 슬쩍 묻더군요. 사정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때 자기도 모르게 말이 함부로 나가고 마음이 교만해졌던 것입니다. 그러자 담임 목사님은 하나님 나라의 엄중한 법을 따라 그 사역자를 즉시 카트(Cut) 시키고 근신하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아무리 은혜가 대단했어도 교만하면 하나님이 쓰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완악한 자와 어린아이와 같은 자
우리가 겸손을 잃어버릴 때 어떤 영적 비극이 일어나는지 마태복음 13장 13~15절을 통해 주님은 분명히 경고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마음이 교만해지면 육신의 눈은 뜨고 있고 귀는 열려 있으나, 눈앞에서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고 진리의 말씀이 선포되어도 그 영적인 의미를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영적 폐쇄 상태’가 됩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마태복음 11장 25절에서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께 감사의 기도를 올려드립니다.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여기서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이란 인간의 얕은 지식과 교만함에 도취되어 성령의 음성을 거부하는 바리새인과 같은 자들입니다. 반면 ‘어린아이들’은 세상적 스펙이 뛰어난 자들이 아니라 마음이 때 묻지 않고 순수하여, 하나님 말씀 앞에 전적으로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자들을 뜻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이 가진 기존의 지식과 경험의 잣대를 가지고 예수님의 말씀이 맞네 틀리네 판단하다가, 결국 안식일 규정에 맞지 않는다고 생명의 구주이신 예수님을 돌로 쳐 죽이려고 모의하는 영적 소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내 목회를 바꾼 진리의 가르침
참된 겸손이란 내 삶의 방식, 내가 수십 년간 쌓아온 목회의 노하우와 노련함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언제나 최우선 순위에 두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지를 창조하신 만왕의 왕 여호와의 말씀이라면, 내 경험과 충돌할지라도 내 생각을 완전히 꺾고 순종하겠다!" 결단하는 심령이 겸손입니다.
제가 수양관에서 두 분 목사님과 대화하며 제 사역의 심각한 갈등과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내가 이 자리에서 수십 년 동안 눈물로 강단을 지키며 설교를 선포해왔는데, 왜 가장 가까이 있는 내 집사람 사모는 변하지 않고 내 아들은 바뀌지 않는지 너무나 괴롭고 고민입니다. 춘천에 있을 때는 성도들이 변화되는 게 눈에 보였는데, 왜 정작 내 가족은 안 바뀌는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하고 사정을 고백했습니다.
그때 친구 목사님이 제게 따끔하면서도 본질적인 해답을 주었습니다. "최 목사님, 목사님이 억지로 사람을 변화시키려고 하지 마십시오. 목사님이 전하고 싶은 설교, 가르치고 싶은 말씀만 전하니까 목회가 막히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최 목사님의 개인 생각을 전하지 말고, 변 목사님이 정립해 둔 깊은 진리의 말씀과 책들을 철저히 연구해서 그것을 성도들에게 그대로 선포하십시오. 목사님은 힘이 없을지 몰라도, 그 진리의 말씀 속에 살아계신 주님께서 직접 사모님의 심령과 성도들의 영혼에 들어가 강권적으로 겸손하게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듣고 뒤통수를 맞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원하고 가르치고 싶었던 말씀만 골라서 전했던 제 영적 교만을 철저히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얼마 안 가 제 개인 사상이나 인간적인 설교를 완전히 내려놓을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전하라고 하시는 순전한 진리만을 대언하기로 결단했습니다. 진리가 임할 때, 우리 교회 성도들은 말로만 하는 겸손이 아니라 실제 삶 속에서 완전히 낮아지는 참된 겸손의 체질로 변화될 줄 믿습니다. 저와 사모, 그리고 우리 아들과 이 문을 밟는 모든 자들이 철저히 겸손한 교회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 덕목: 성장에 대한 갈망 — 영적 맹인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기 위한 두 번째 필수 덕목은 바로 ‘신앙 성장에 대한 뜨거운 욕구와 갈망’입니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안일함에 빠져 있습니다. "나 예수 믿고 구원 받았으니 천국행 티켓은 확보했네" 하면서, 구원의 초보 단계에 머무른 채 사방을 둘러보며 대충 해이하게 신앙생활을 때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장하려는 의욕이 없는 신앙은 살아있는 신앙이 아닙니다.
팔복과 성장의 여덟 계단
우리가 펴놓은 마태복음 5장의 ‘팔복’ 말씀은 단순히 복을 받는 비결이 아니라, 우리 영혼이 도달해야 할 영적 성장의 단계를 보여줍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내 영적 상태의 비참함을 깨닫고 심령의 가난함을 느끼는 것부터 시작하여, 은혜에 주리고 목마른 갈급함을 가지고 끊임없이 주님을 향해 자라나야 배부름의 영적 성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1장 5~7절 말씀은 이 성장의 과정을 더욱 구체적인 계단으로 묘사합니다.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의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우리의 신앙은 최초의 ‘믿음’이라는 주춧돌 위에 끊임없이 덕과 지식과 절제와 인내와 경건을 쌓아 올려, 마침내 하나님의 성품인 ‘사랑’의 완숙한 단계까지 역동적으로 자라나야 합니다.
자라나지 않는 자는 맹인입니다
만약 이러한 영적 성장의 욕구가 없고 자라나기를 멈춘 자들에게 성경은 어떤 진단을 내립니까? 베드로후서 1장 9절 말씀을 우리는 무거운 마음으로 읽어야 합니다.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성장하려는 열망 없이 매주 교회 마당만 밟고 지나가는 사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갈급함이 없이 미지근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가차 없이 ‘영적 맹인’이라고 선포하십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과 같아서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잘못된 길을 걸어가게 된다는 뜻입니다.
내 청소년 시절의 성령 세례와 은혜의 갈증
저는 제 고등학교 시절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성령 세례를 받기 전까지 저는 시골 교회에서 그저 노는 게 좋았던 학생이었습니다. 친구들과 탁구 치고, 토요일 학생회 모임에 가서 게임하고 과자 나눠 먹고, 여학생들과 어울려 노는 재미로 교회를 다녔지, 고등학교 때까지 성경책을 단 한 번도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게 읽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가던 그 무렵, 제 심령에 강력한 성령 세례가 임했습니다. 성령님이 제 안에 들어오시자마자 제 안에서 기이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나도 알고 싶어 미칠 것 같은 ‘성장에 대한 열망’이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고3이라는 중요한 학업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공부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오직 성경 말씀만 읽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이 너무 달고 좋아서 부지런히 읽었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싶은 마음, 목이 터져라 찬양하고 싶은 마음이 제 안에서 화산처럼 분출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살아있는 영혼에 임하는 은혜의 갈급함입니다.
우리가 수십 년 동안 신앙생활을 하고 예수님에 대해 교리적으로 많이 배워왔다고 해서 다 안다고 자만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몇백 년, 몇천 년을 공부한다 한들 그리스도의 광대하신 비밀을 다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여전히 주님을 너무나 모릅니다. 그런데도 더 이상 주님을 알려고 하지 않고 영적 갈증을 느끼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이미 눈이 가려진 채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매일 새벽마다, 예배 때마다 "주님, 내가 주님을 더 알기를 원합니다. 내 영혼의 지경이 자라나게 하옵소서!" 부르짖는 은혜의 갈망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덕목: 나의 삶의 도전 — 전능자를 의지하여 꿈과 비전을 펼치는 삶
신앙생활의 마지막 세 번째 덕목은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함으로 내 삶의 한계를 깨뜨리고 꿈과 비전을 향해 나아가는 위대한 도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시자마자 "너희는 땅을 정복하고 다스려라" 하고 통치와 도전의 DNA를 심어주셨습니다. 광야를 걷던 백성들에게도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고 선포하셨습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합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읽은 잠언 29장 18절에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라는 말씀을 영어 성경으로 보면 기가 막히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Where there is no vision, the people perish.” (비전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 방자히 행하다가 결국 파멸한다)
우리가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 처지와 환경 속에 나를 가두어두고 무기력하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반드시 찬란한 꿈과 비전을 소유해야 합니다. 이 비전은 내 개인의 야망을 이루기 위한 인간적인 발버둥이 아닙니다.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그분의 팔을 힘입어 내 삶의 지경을 넓혀나가는 거룩한 믿음의 도전입니다.
예수 믿는 자의 평생의 호흡: 주님을 의지함
여러분은 일상 속에서 과연 하나님을 얼마큼 의지하고 계십니까?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을 때만 주님의 이름을 잠깐 부르고, 그 이후의 삶은 내 지혜와 내 주머니 사정만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은 가짜 신앙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눈을 뜨고 밥을 먹는 순간부터, 직장에서 일을 하고 사업을 계획하며, 마침내 천국 문을 열고 들어가는 그날까지 매 순간 하나님만을 철저히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선포하십니다.
"나는 너희를 애굽의 종 되었던 집에서 구출해내어, 온전히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구원한 여호와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피 값으로 사신 이유는 우리의 보호자가 되시고, 우리의 공급자가 되시어 그 거대한 능력의 손으로 우리를 사시사철 도우시기 위함입니다. 젊을 때는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제 건강과 능력을 믿고 살 수 있을지 몰라도, 세월이 가고 몸이 약해질수록 우리는 뼛속 깊이 깨닫게 됩니다. "아, 주님을 의지하는 것밖에는 내 인생에 소망이 없구나!" 나를 의지하는 자는 결국 패가망신하여 무너지지만,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사막에 심은 나무처럼 날마다 청청할 줄 믿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우리 교회가 영적으로, 환경적으로 반드시 대부흥을 이루고 잘될 것을 확신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여러분의 막힌 물질이 열리고, 무너진 가정이 회복되며, 인생의 비전이 멋지게 펼쳐질 것을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광야의 무덤이 될 것인가, 가나안의 주인공이 될 것인가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 바네아(바란 광야)까지 와서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도 왜 출애굽 세대가 단 한 명도 그 땅에 들어가지 못했는지 영적인 원인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눈앞에 펼쳐진 철 병거와 거대한 아낙 자손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힘과 여건, 척박한 환경만을 계산해본 뒤 "우리는 저들 앞에 메뚜기 가도 같다"며 통곡하고 원망했습니다.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지 않았고, 주님이 행하실 비전을 완전히 지워버렸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상만 따라가다가 결국 그들이 불신앙으로 내뱉은 말 그대로, 가나안은 구경도 못한 채 광야가 그들의 거대한 무덤이 되고 말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내가 원하는 선한 일들이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서 ‘이미 이루어진 상태’를 영안의 눈으로 미리 뚜렷하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아직 내 통장 잔고는 비어있고 육신의 질병은 그대로 떠나지 않았을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이 이미 나를 치료하셨고 나를 풍족하게 하셨음을 비전으로 바라보며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선포하는 삶,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진짜 도전적인 신앙생활입니다. 광야를 무덤으로 만들지 말고,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비전을 통해 약속의 가나안 땅을 점령하는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이 주신 세 가지 기둥을 굳게 붙잡으십시오
오늘 우리가 기도의 자리에서 엎드릴 때, 성령께서 불현듯 제 심령에 부어주신 이 ‘신앙생활의 세 가지 덕목’을 저는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메모를 해가며 가슴에 몇 번이고 되뇌고 되뇌었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의 생각이 아닌, 오늘 밤 우리 교회를 살리기 위해 주님이 직접 내리신 영적 처방전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우리 모두가 성령의 세밀한 인도하심을 따라,
첫째, 내 경험과 고집을 십자가에 완전히 못 박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내 삶의 기준으로 삼는 철저한 겸손의 신앙생활을 다짐합시다.
둘째, "이만하면 됐다"는 안일한 영적 소경의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날마다 주님의 임재와 진리에 목말라하는 성장의 갈망을 소유합시다.
셋째, 환경에 굴복하여 낙심하는 패배주의를 걷어차 버리고, 나를 도우시는 전능자의 팔을 의지하여 이미 이루어진 승리를 선포하는 거룩한 꿈과 비전의 도전을 시작합시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가 이 마지막 때에 살아있는 역동적인 교회가 되고, 여러분의 삶의 지경이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신령한 복으로 가득 채워지기를 만왕의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의 결단 기도]
참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갈 바를 알지 못하던 우리에게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로 귀한 생명의 양식을 먹여주시고 우리의 가려진 눈과 귀와 마음을 활짝 열어주시니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우리 안에 은근히 도사리고 있던 모든 영적 교만과 완악한 마음을 사정없이 꺾어 주시옵소서. 나를 드러내거나 내 경험을 주장하지 않게 하시고, 늘 자신을 낮추며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 권위 앞에만 엎드리는 진정한 겸손의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영적 맹인이 되어 미지근하게 머물러 있던 안일함을 회개하오니, 날마다 주님의 은혜에 목말라하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나려는 뜨거운 성장의 갈망을 우리 심령에 들불처럼 부어 주시옵소서.
더 이상 현실의 척박한 환경과 장벽 앞에 낙심하여 광야의 무덤으로 들어가지 않게 하시고, 나를 구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무한하신 큰 손을 의지하여 내 삶의 비전을 넓히게 하옵소서.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을지라도 주님의 도우심으로 이미 성취된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날마다 찬송과 믿음으로 담대히 전진하고 도전하는 승리자들이 되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우리 교회를 겸손과 성장과 비전의 반석 위에 굳건히 세워주실 것을 확신하며,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