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
오늘 저는 마태복음 7장 7–8절 말씀을 중심으로 꿈과 믿음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지난주에 빌 존슨 목사의 책을 다시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치유와 기적이 자주 나타나는 교회를 이끄는 분인데, 그가 쓴 글 속에서 꿈에 관한 이야기를 보고 깊이 공감했습니다. 예전에도 그 책을 읽은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꿈에 대한 참된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었습니다. 이제 다시 읽어보니, 그가 말하는 내용이 정말 옳고, 우리가 신앙생활 속에서 자주 놓치고 있는 부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지적하는 점은 이렇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성령 충만을 받으면, 자신이 가졌던 꿈과 소망을 모두 내려놓으려고 합니다. 이제부터는 제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려주시면 그대로 순종하겠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며, 마치 세례 요한이 예수님은 흥하여야 하시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말한 것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 신실한 신앙인 줄로 오해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다는 개념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부분 중 하나가 꿈을 꿀 수 있는 능력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인 것이다. 하지만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는 시도 가운데, 그분께서 주신 바로 그 능력을 죽여 가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항변한다.
"하나님을 정말 기쁘시게 해드리려면 내 자아와 관련된 모든 것을 제거해야만 해요!"
(빌 존슨 『하나님과 꿈꾸기』고병현 옮김. 서울: 다윗의 장막, 2013. p. 55.)
그러나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그런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부족하셔서 우리의 도움이나 협력이 꼭 필요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이 바라시는 것은, 예수 안에서 자유함을 얻은 우리가 오히려 꿈을 갖고 그 꿈을 펼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문제는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이 세상적인 꿈은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하나님 안에서의 꿈과 비전은 없다는 점입니다. 그냥 이렇게 살면 되지, 뭐 더 바랄 게 있겠는가 하며 소망 없이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저 자신조차도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목회자나 성도들에게는 특별한 꿈과 비전을 주시면서, 왜 저에게는 그렇게 분명한 계시를 주시지 않으실까 하고 묻기도 합니다.
하지만 깊이 생각해보면, 케네스 해긴 목사님처럼 특별한 소명을 받은 분들은 하나님의 경륜 속에서 그 시대를 위해 택정되신 분들입니다. 일반적인 우리들에게는 그만큼 크고 분명한 지시가 주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평범한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핵심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꿈을 갖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에 대하여 빌 존슨 목사님은 "하나님과 꿈꾸기"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대부분의 교회가 하나님께서 다음 말씀을 주시기를 기다리고 있는 한편, 주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의 꿈을 듣고자 기다리고 계신다. 우리가 우리의 역할을 하기를 고대하시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필요로 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빌 존슨 『하나님과 꿈꾸기』고병현 옮김. 서울: 다윗의 장막, 2013. p. 38.)
이때 원수 마귀가 가장 먼저 공격하는 것이 바로 이 꿈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너의 형편으로는 그런 꿈을 이룰 수 없다, 너에게는 그럴 만한 자격과 능력이 없다, 그런 생각은 그저 허황된 상상일 뿐이라고 속삭입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만들고, 결국 꿈을 포기하게 합니다. 꿈을 잃은 사람은 삶의 의욕을 잃고, 그저 주어진 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게 됩니다.
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며, 다시 새로운 꿈과 비전을 갖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얼굴에 생기가 돌고 빛이 나지만, 꿈이 없는 사람은 어둡고 무기력해 보이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정말 이루고 싶은 꿈이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삶을 살고 싶으십니까?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의 진정한 의미
이제 오늘의 핵심 말씀인 마태복음 7장 7–8절을 다시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의미는 무엇일까요? 결코 그냥 주어진 대로, 되는 대로 살아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삶에서 원하는 것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구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찾고, 하나님의 은혜와 기회를 얻으려면 담대하게 문을 두드려라 하는 적극적인 명령이자 확실한 약속입니다.
우리가 흔히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알려주시면 그대로 따르겠습니다"라고 묻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기다리시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네 꿈은 무엇이냐? 그것을 솔직하게 내게 말해 보아라. 그러면 내가 그것을 들어주고 이루어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의 참된 의미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만약 지금 당장 마음속에 분명한 꿈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이번 주간을 보내며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은 무엇일까?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고 싶은가? 어떤 은혜와 축복을 누리고 싶은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분명한 꿈을 세워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저에게도 분명한 꿈이 있습니다.
첫째, 나이가 들수록 더욱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보통 나이가 들면 그저 시간을 때우기 위해 텔레비전을 보거나 무의미한 일로 하루를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늙어서도 기도하는 일을 즐기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열정적으로 기도하며,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삶을 살다가 마지막에는 편안하게 하나님의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둘째, 우리 교회가 영적으로 풍성하고 부흥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작은 개척 교회이지만, 앞으로 더 많은 성도들이 모여 진리의 말씀을 듣고, 각자의 삶이 영적으로 성장하며, 기도의 소리가 끊이지 않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지난주부터 교회에 타이머를 설치하여 새벽부터 밤까지 기도 음악이 저절로 흘러나오도록 했습니다. 우리가 항상 이곳에 있을 수는 없지만, 이 공간 자체가 하나님의 임재로 채워지고, 누구든지 와서 은혜를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은사가 다른 성도들에게도 흘러가는 것입니다.
저는 과거 한동안 세상적인 삶에 빠져 기도를 소홀히 했을 때, 영적인 은사가 잠잠해진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기도를 회복하고, 특히 몸이 아플 때 꾸준히 방언 기도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은사가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이 은사는 저 혼자 누리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겸손한 마음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도움을 주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성도들 모두가 이런 하나님의 임재를 직접 경험하고,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를 발견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귀한 성령의 은사
성경은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함이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필요한 은사를 주시며, 그것을 통해 그분의 뜻을 이루게 하십니다. 구약의 엘리사 선지자는 평생을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며 살았기 때문에, 심지어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의 뼈에 닿은 사람이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진정한 사람에게는 그분의 임재가 함께하기 마련입니다.
저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총회 모임에 가던 차 안에서, 한 목회자와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하나님의 임재가 임했습니다. 그분은 오랜 시간 눈이 아팠는데, 그 자리에서 병이 나았고 마음의 상처도 위로받았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그분의 임재가 나타나신 것뿐이었습니다. 이런 은혜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겸손하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그분의 임재를 사모하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특히 저는 방언의 은사에 대해 깊은 감사를 느낍니다. 처음 이 은사를 받았을 때는 왜 다른 큰 은사는 주시지 않고 이것만 주시나 하고 서운해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방언 기도는 우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는 영혼 깊은 곳의 소원을 성령님께서 대신 기도해 주시는 귀한 통로입니다. 요즘은 기도 시간의 대부분을 방언 기도로 채우며, 그 안에서 깊은 평안과 은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은사는 소중합니다. 그것을 깨닫고 감사하며 사용할 때, 우리의 꿈은 점점 더 하나님의 뜻 가운데로 자리 잡게 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꿈과 믿음의 약속
성경 전체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꿈과 비전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사도행전 2장 16–18절에 기록된 요엘 선지자의 예언이 그렇습니다.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이 말씀은 모든 시대, 모든 연령층의 성도에게 해당됩니다. 젊은 사람은 앞날에 대한 큰 비전을 가지고, 나이가 든 사람은 남은 삶을 위해 또는 영원한 나라를 위한 꿈을 꾸고, 자녀들은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만약 지금 자신에게 꿈이 없다고 느껴진다면, 그것은 성령님의 인도를 충분히 받아들이지 않은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스스로 결단해야 합니다. 나는 꿈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고자 하는 소망을 받아들이겠다고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또 시편 2장 8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처음 이 말씀을 읽었을 때 저는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열방을 섬길 수 있겠는가? 나에게는 그만한 그릇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한계를 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스스로 제한을 두지 않고 담대하게 구하기만 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놀라운 일을 이루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기도를 하더라도 정말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잠깐 구하고는 그뿐, 응답이 오는지 관심도 없고, 끈기 있게 기도를 이어가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꿈이 없고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루고 싶은 소망이 없으니 기도할 제목도 생기지 않고,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없으니 기도해도 소용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6장 24절에서 다시 한번 강조하십니다.
"이제까지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구하지 않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그 원인은 바로 원수 마귀가 우리의 믿음과 소망을 빼앗아 갔기 때문입니다. 그는 거짓과 두려움, 부정적인 생각을 심어 우리가 꿈을 포기하게 만들고, 결국 무기력하게 살도록 이끕니다.
믿음으로 싸우고 꿈을 이루는 삶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깨어서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더 큰 믿음을 구하고, 그분께 매달려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만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마귀도 활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의 이야기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해내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라는 큰 꿈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근처에서 정탐꾼들을 파송하고 그들의 보고를 듣자 그들은 자신들의 눈과 경험만으로 판단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그곳에 들어갈 수 없다, 그곳의 백성은 강하고 성은 견고하다"며 불평하고 믿음을 버렸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자신들이 내뱉은 말대로 광야에서 40년을 허비하다가 모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가능하다고 믿었고, 그들의 자녀 세대가 마침내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이와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런 꿈은 너무 크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불가능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귀가 주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가 불행하거나 힘들게 살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행복하고 건강하며, 기쁨과 만족이 넘치는 삶을 살기를 바라십니다.
비록 그 꿈이 인간의 눈에는 불가능해 보여도, 믿음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그 길을 열어주십니다. 꿈과 소망이 살아있는 사람은 마음속에 의욕과 열정이 솟아납니다. 마귀는 이것을 빼앗고 싶어 하지만,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으로서 우리에게 다시 꿈을 주시고 그것을 이루어주시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오늘 마태복음 7장 7–8절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그냥 주어진 대로 살지 말고, 어려움이 왔다고 주저앉지 말고, 원하는 꿈이 있다면 구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찾고, 하나님의 문을 담대하게 두드리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을 기쁘게 들어주시고, 꿈을 이루어주시기 위해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 모두 스스로에게 질문해 봅시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의 꿈은 무엇인가? 그 꿈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면, 그것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담대하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들으시고 응답하시며, 그 응답을 누리는 가운데 우리의 삶이 더욱 기쁨과 감사로 가득 차게 하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꿈과 믿음에 대해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숨어 있던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생각과 불신, 절망의 마음을 모두 씻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가 심어놓은 거짓된 생각들을 모두 쫓아내 주시고,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다는 말씀을 믿고 나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긍정적인 믿음의 사람이 되고,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꿈과 비전을 갖고 살게 하여 주옵소서. 성령님의 은사와 능력이 우리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고, 병든 자는 치유받고, 연약한 자는 강건해지며, 모든 가정과 교회에 하나님의 평안과 은혜가 넘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