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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불가꼬프 칼럼

이거 소설 맞아?!: 위스망스의 <거꾸로>

작성자김 불가꼬프|작성시간18.10.09|조회수306 목록 댓글 0

고구마나 감자를 캘라치면 알뿌리가 줄줄이 딸려 나오는 경우가 있다. 덩이 하나 잡았다 생각한 순간 뿌리줄기가 연이어 지상으로 얼굴을 내미는 것이다. 그런 희열을 맛보는 계기 가운데 하나가 독서와 토론이다. 책을 읽다보면 시공간과 인과율이 겹치면서 전후맥락과 연관성이 분명해진다. 그것은 독서가 사색과 토론을 벗 삼을 때 강화된다.

 

나쓰메 소세키(1867-1916)<풀베개>(1906)를 읽으면서 이상한 소설도 다 있네, 하고 혼잣말한 적 있다. 사건과 갈등이 배제된 소설 같지 않은 소설, 동서양 문학과 미학, 사상과 그림이 빼곡하게 자리하고, 하이쿠가 여기저기 번뜩이는 소설 <풀베개>. 그런 소회를 근대문화동아리에서 나누는데 불문과 교수가 이의를 제기한다.

 

나쓰메 소세키 전에 그런 소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함께 읽고 토론해보자고 제안한다. 그것은 조리스 위스망스(1848-1907)<거꾸로> (1884). 위스망스는 플로베르(1821-1880)와 졸라(1840-1902)의 자연주의에 경도되어 소설을 쓰다가 <거꾸로>를 집필한다. <거꾸로>선입견이나 미래기획 없는 무의식의 소산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염세와 은둔

 

<거꾸로>의 주인공은 깡마르고 길쭉한 손을 가진 창백하고 선병질적인 30세 청년 장 데 제쎙트. 일러두기에서 위스망스의 지적에 따르면, 제쎙트는 세상이 무뢰한들과 멍청이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깨닫는다. 그 결과 제쎙트는 외부세계와 완전히 격절된 은둔지인 테바이드나 편안한 사막 혹은 요동하지 않는 푸근한 방주를 열망하기 시작한다.

 

제쎙트는 어중이떠중이들이 벌이는 바보짓의 홍수에서 멀리 피신할 수 있는 공간을 찾는다. 그가 찾은 곳은 파리 근교의 한적한 퐁트네 마을이었다. 근대의 풍경을 대표하는 철도가 마을 끄트머리에 놓여있고, 작은 전차가 이동수단의 전부인 외진 마을. 인간혐오가 깊어진 제쎙트는 하인들과 말하는 것마저 극도로 꺼리고 거리를 둔다.

 

지상에서 산다는 것은 정녕 비참한 일이다!”(16)라고 일갈한 쇼펜하우어의 명제를 간직하고 살아가는 제쎙트는 존재의 허무와 고독의 장점을 설파한다. 그는 동시대와 당대의 인간들과 거리를 두면서 고립을 지켜나가고자 한다. 오로지 혼자만의 공간과 관계 안에서 염세의 철학과 은둔의 처세로 19세기 후반기를 살아나가려는 제쎙트.

 

상스러운 비열함으로 가득한 가증스러운 시대를 벗어나려는 욕망이 첨예해짐과 동시에... 동시대인들의 삶에 관심을 버린 후 그는 더 이상 자신의 독방에 혐오감과 안타까움을 주는 몰골들을 끌어들이지 않기로 결심했다.” (92)

 

권태와 방종

 

제쎙트의 삶은 염세와 은둔에 멈추지 않는다. 유서 깊은 귀족집안 출신인 그는 파리외곽에 성채를 구축하되, 권태를 이겨낼 방도를 다각도로 추구한다. 그것은 성적 도착과 타락으로 귀결된다. 언젠가 제쎙트는 16세 정도의 소년 오귀스트 랑글루아를 매음굴로 인도한 경험이 있다. 이른 시기의 성경험으로 소년을 타락시키려 했던 악마주의?!

 

그것은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소년을 타락시킴으로써 심미적이고 심리적인 쾌락을 추구하려는 심산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게 행동함으로써 제쎙트는 당시 유행했던 세속적인 교훈담이나 보편적인 교육에 반대하는 우의(寓意)’를 실현한다. <거꾸로>의 주인공은 여기 멈추지 않고 권태를 극복하는 방편으로 몸소 쾌락과 방종의 길에 나선다.

 

찰스 디킨스의 정숙한 소설을 읽다가 제쎙트는 음행과 육욕의 쾌락을 찾는다. 첫 번째 대상은 서커스의 곡예사 미스 우라니아로 미국인이었다. 그녀의 육체에서 제쎙트는 성전환 여성을 본다. 여성이었던 미스 우라니아가 중성이 되었다가 마침내 완전한 남성으로 전환한다. 허약하고 성마른 제쎙트의 구미에 딱 들어맞는 미스 우라니아.

 

그의 상상과 달리 우라니아는 기대했던 쾌감을 주지 못한다. 제쎙트의 다음 상대는 작은 키의 갈색머리 복화술사. 플로베르의 <성 앙투안의 유혹>에 나오는 스핑크스와 키메라의 대화를 실연하는 복화술사에 매료되는 제쎙트. 그녀와 함께하는 그의 환희는 오래 가지 못한다. 그녀가 제쎙트보다 훨씬 남성적인 건장한 남자를 따라나서기 때문이다.

 

우리의 세습귀족 제쎙트는 굴하지 않고 전진한다. 앳된 청년과 관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경험을 위스망스는 이렇게 기록한다.

 

그는 이처럼 유혹적이고 강압적인 매춘은 겪어본 적이 없었다. 그와 같은 위험을 경험한 적도, 그처럼 고통스러운 만족감을 느꼈던 적도 없었다.” (160)

 

감각과 예술

 

제쎙트는 지극히 감각적인 인간이다. 그는 인간의 오감(五感)이 극대화된 인물이다. 색깔을 지각하는 시각은 기본이고, 청각과 후각, 미각과 촉각도 빼어나게 특화되어 있다. 퐁트네의 은둔지를 꾸밀 때 집의 가구와 배색을 결정하면서 제쎙트는 절정의 색감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자연과 자연적인 것에 한사코 저항한다는 점이다.

 

자연은 그 시효를 다했다. 자연은 구역질날 정도로 획일적인 풍경과 하늘로 인해 세련된 자들의 참을성을 완전히 지치게 만들었다. 자연은 단조로운 풀밭과 나무의 저장이고, 산과 바다는 얼마나 시시하게 배치돼 있는가!.. 자연에서만 향수성분을 빌려오는 예술가는 진실성도 특색도 없는 조잡한 작품만을 만들게 될 것이었다.” (57-164)

 

제쎙트는 생화를 모방한 조화(造花)를 찾다가 조화를 모방한 생화를 원한다. 파리지옥과 끈끈이주걱, 사라세나와 네펜데스 같은 식충식물이 그를 충족시킨다. 그것들의 기괴한 형상에 매혹되는 제쎙트. 그가 <마태복음>의 헤롯과 살로메, 요한의 주제를 가지고 <살로메 연작>을 그린 귀스타브 모로(1826-1898)에 열광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제쎙트는 고대의 꿈과 타락에 잠긴 모로의 그림을 갈망한다. <헤롯 앞에서 춤추는 살로메> (1874-1876)<환영: 살로메의 춤>(1875)이 그것이다. 자신을 경탄하게 한 육욕 넘치는 춤을 춘 살로메에게 헤롯은 세상의 모든 것을 약속한다. 어미 헤로디아와 상의한 살로메는 세례 요한의 목을 요구한다. 두 그림은 그 전후관계를 묘사한다.

 

전자에서 살로메는 현대의 발레리나처럼 발끝으로 서서 연꽃을 들고 다소곳이 고개 숙이고 있다. 헤롯은 대주교나 종교 재판장처럼 중앙 옥좌에 앉아 그녀를 응시한다. 헤롯의 왼쪽에는 얼굴을 가린 망나니가 칼을 들고 서있다. 살로메의 뒤편 상단에는 헤로디아가, 그 아래에는 악기를 연주하는 여성악사가 자리한다. 요한은 아직 살아있다.

 

후자에서 두드러지는 인물은 헤롯의 자리를 대신한 요한이다. 그의 잘려나간 머리가 공중에서 사방팔방으로 후광을 발하고 있다.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요한의 두 눈은 원망하듯 분노한 듯 살로메를 응시한다. 흠칫 놀란 얼굴의 살로메는 거부하는 자세로 뒷걸음질 치는 것처럼 보인다. 소명을 완수한 망나니는 흐트러진 매무새로 칼을 거꾸로 잡고 서있다. 피폐한 얼굴의 헤롯은 망연하게 허공을 응시하고, 헤로디아의 동공도 풀려있다.

 

위스망스는 모로를 누구에게도 영향을 받지 않은 화가, 조상도 후예도 없는 현대의 유일한 화가로 규정한다. <거꾸로>의 작가는 살로메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그녀는 파괴할 수 없는 음탕함을 상징하는 여신, 자신의 살집을 뻣뻣하게 하고 근육을 단단하게 하는 경직증으로 선택된 저주받은 미의 여신이 되었다. 그녀는 기괴하고도 냉담한 짐승, 책임감도 감정도 없이 그리스 신화의 헬레네처럼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 자신을 바라보는 모든 것, 자신이 만지는 모든 것을 타락시키는 짐승이 되었다.” (96)

 

자연주의와 사회비판

 

<거꾸로>에서 우리는 1880년대 프랑스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위스망스의 시선과 여러 번 만난다. 자연주의자로 창작을 시작한 그는 <거꾸로> 출간 20년 뒤인 1903년에 쓴 서문에서 자연주의와 자연주의자를 향한 날선 비판을 마다하지 않는다.

 

자연주의 유파는 평범한 삶의 묘사에 골몰했고, 생동감을 준다는 핑계로 평균치에 가까운 존재들만 창조하려 애쓰고 있었다. 졸라는 시장, 백화점, 철도, 탄광을 찬양했고, 이런 환경에서 방황하는 인간들은 소품이나 단역 구실을 맡을 따름이었다. 영혼을 관찰하겠다고 자청한 자연주의자들보다 영혼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다.” (10-27)

 

무의식의 발로에서 출발했든 아니든, 위스망스는 자연주의와 대척적인 위치에 있는 소설을 쓰고자 했던 셈이다. 그럼에도 <거꾸로>에는 “19세기의 지배적인 사상을 대변하는 각박한 실용주의와 결합한 어리석은 감상주의”(238)에 대한 비판이 도처에 자리한다. 소년노동에 내몰리며 살아야 했던 아이들에 관한 묘사를 보자.

 

유아기부터 습진과 복통, 열병과 홍역을 앓아야 하고, 걸핏하면 따귀를 얻어맞는 게 그들의 숙명이었다. 열세 살이면 구둣발에 차이고 단순노동에 종사해야 한다. 성년이 되면 여자에게 기만당하고 질병에 시달리며 아내의 바람기를 감수해야 한다. 인생의 황혼녘에는 거지수용소나 빈민요양원에서 불구가 되어 임종을 맞이해야 한다.” (230)

 

태어나는 아이를 축복하는 대신, 낙태가 그들을 구원하리라는 생각에 휩싸인 제쎙트는 암울한 사회의 도래를 귀족의 몰락과 부르주아의 부상(浮上)에서 찾는다.

 

노망난 후예들 때문에 귀족계급은 사라져가고 있었다. 항상 귀족계급에 의지했던 성직자계급도 몰락했으며, 수도원은 제약공장이나 술도가로 변모를 거듭했다. 혈통귀족이 물러나고 금전귀족이 자리를 잡았다. 확신을 얻은 부르주아가 군림한 결과는 모든 지능의 압살, 모든 정직의 부정, 모든 예술의 죽음이었다.” (285-290)

 

글을 마치면서

 

끝없이 몰락해가는 당대 프랑스 사회와 거리를 두고 관찰자로 살아가려던 세습귀족 제쎙트. 혐오해마지 않던 부르주아의 대두와 홍수 속에서 독야청청 홀로의 길을 걸어가려던 그의 시도는 실패로 귀결된다. 건강을 잃은 그가 의사의 충고를 따를 수밖에 없었던 때문이다. 자살로 시대에 저항하려는 의지는 그에게 결석했던 것이다.

 

제쎙트의 지적-미적 편력에 동행하면서 우리는 특별한 사건과 관계와 갈등과 결말이 없는 소설 같지 않은 소설과 다시 대면한다. 주인공이 추구하는 문학과 예술, 색깔과 음악, 가구와 여행을 그저 들여다보고 생각하는 것이다. 제쎙트는 상당정도 위스망스의 분신이다. 우리는 36살 난 소설가의 풍부한 지성과 교양을 공유한다.

 

나쓰메 소세키가 소환했던 동서양 미학과 문학, 사상만큼 다채로운 유럽의 문학과 그림, 술과 음악이 우리를 풍요롭게 한다. 무엇보다 라틴문학에 대한 위스망스의 깊이 있는 지식과 당대 프랑스 작가에 대한 평가는 유쾌하기 이를 데 없다. 그는 플로베르와 공쿠르, 졸라와 보들레르가 자신에게 허여한 정신세계 조성에 경의를 표한다.

 

말라르메가 구현한 문학의 데카당스는 보들레르와 에드가 알렌 포의 문학적 정수를 극단으로 몰고 간 것”(267)이라 규정하는 명료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1880년대 프랑스 문단의 신진기예로서 위스망스는 털어놓고 싶은 모든 사유와 인식을 <거꾸로>에서 가감 없이 쏟아 부었다. 그러하되 소설의 마지막 언사가 우리를 못내 전율토록 한다.

 

무너져라, 사회여! 제발 죽어라, 낡은 세계여!”

 

<거꾸로>, 조리스 위스망스 지음, 유진현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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