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우리가 미술이라고 흔히 알고 있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베르사유 궁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는 미술이 아니라고 말문을 열면서 바로 옆 페이지에 놓여 있는 마르셀 뒤샹의 콧수염 난 모나리자 (L.H.O.O.Q.)를 비로소 미술이라고 말한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신디 셔먼의 사진 등을 미술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우리가 아는 미술은 최근 200년에 걸쳐 진행된 것으로서, 미술관에 전시 보존되며 애호가들이 구매하고 대중매체를 통해 다양하게 전달, 복제되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미술가가 만든 창작품 그 자체로서 가치가 없고 화랑이나 미술비평 등 여러 제도 장치를 거치면서 비로소 작품으로서의 의미와 중요성을 획득하고 그 가치가 증폭된다고 한다. 이렇듯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미술은 18세기에 만들어진, 정확히 근대적 개념이다.
우리가 흔히 미술품이라 말하는 라스코의 동굴벽화, 미켈란젤로의 조각 등은 그 당시 일상에서 의의와 용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존재하던 당대의 맥락에서 떼어와 박물관에 재배치, 분류하면서부터 미술로 존재하게 되었다. 그 후 미술은 인간이 일상의 맥락에서 만들어낸 그 어떤 것으로서가 아니라 독립적인 한 영역으로 신성시하고 절대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은 과학과 이성, 그리고 진보에 대한 믿음의 절대화가 확립된 시기, 즉 서구 근대 역사와 맥락을 같이한다. 이 책은 위와 같이 소위 ‘제도로서의 미술’이 만들어지기까지 미술이라는 용어, 예술이론과 미술사, 미술을 교육하는 아카데미, 그리고 박물관의 형성과 존재과정을 다른 시각으로 재구성하여 보여준다.
그리고 무엇이 미술이고 무엇이 미술이 아니지를 결정하는 이러한 오늘날의 제도화된 규법과 개념, 그리고 모더니즘적인 틀로서의 문화 제도에 관해 흥미진진한 접근으로 통렬하고도 전복적인 시각을 제시한다. 궁극적으로 저자는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이런 문화적 제도들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오늘날의 시각문화를 강력하게 구성하고 있는 이미지들을 잘 활용하여 폭넓은 시각예술에 대한 대안들을 제공한다.
18세기에 형성되기 시작한 ‘예술ART’이라는 용어는 천재적인 개인의 독창적인 산물로서 미적 아름다움을 지닌 물체이며 이런 개념은 영어의 정의를 따르면 ‘아름다움을 시각의 형태로서 기술적으로 생산하는(한) 것’이다. 이런 미술창작에 있어서 천재성 또한 특권의 해택으로 만들어지는 재능임을 지적하며 피카소와 베토벤, 세익스피어 같은 여성천재가 없는 것 또한 남성 중심의 이데올로기와 제도의 장치 속에서 ‘여성의 재능과 천재성이 남성과 같은 기반에서 성공을 거두기란 제도적으로 절대 불가능’했음을 보여준다. 전통적으로 여성들은 미술사에서 여신이자 모델로서 남성창작자들과 관객들에게 시선과 욕망의 대상이 되어왔다.
최근에 와서야 프리다 칼로와 메렛 오펜하임, 루이즈 부르조아 같은 여성미술가들이 남성미술가와 비슷한 대우를 받기 시작하며 바바라 크루거, 신디 셔먼 같은 작가들은 전통적 사고방식과 미술에서 주제가 되는 여성에 대한 관습, 지배 이데올로기에 다양하게 문제제기하고 있다.
박물관과 미술관, 그리고 미술이란 용어와 마찬가지로 미술사 역시 근대의 산물이다. 미술사의 연대기적 서술방식이나 사관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문명이 진보하며, 그 중심이 인간이라는 근대의 역사주의적, 진화론적 세계관과 떼어놓을 수 없다. 이런 발전과정을 답습하는 (정통)미술사의 방법론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저자는 아방가르드의 신화, 고급미술의 위치 등 모더니즘의 견고한 실체를 새로운 이론적 기반을 다지면서 분석하고 해체한다. 근대의 모더니티 문화로 인하여 상대적으로 특권과 지위를 누려오던 고급문화는 대중문화와 이분화되는데 이에 대해서도 중요한 의문들을 제기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아는 것만큼 본다’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본다는 것은 그것을 우리가 얼마나 알고 있나, 혹은 믿고 있나에 많이 영향받는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또한 아는 것이, 믿는 것이 보는 것이라는 말은 인간이 본다는 것이 선택적이며 이 선택에 따라 보는 것의 범위와 인식이 달려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자연적 관계가 아닌 우리 사회가 오랜기간 만들어 놓은 사회질서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는 원제 《믿는 것이 보는 것 Believing is Seeing》를 박모씨가 번역하면서 시각예술에 대해 전혀 사전지식이 없는 사람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곳곳에 역자의 글을 추가했으며 전문용어에 대한 설명도 곁들였다. 이 내용 또한 미술과 시각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시각으로 쉽고 꼼꼼하게 정리되어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다른 번역서와는 달리 미술과 디자인, 문화연구를 하는 이들은 물론 예술에 관심이 있는 대중들도 읽어 불 수 있다. 어렸을 때 배웠던 미술사나 TV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많은 도판들이 등장하고 내용들 또한 흥미진진하고 분명하다.
이 책은 독자가 미술과 근대적 주체 개념은 물론 문화에 대한 고루한 편견과 신화를 해체하고 열려진 관점으로 폭 넓게 접근하도록 도와 준다. 우리는 여가시간을 활용하는 방안으로, 혹은 세계여행에서 미술관과 박물관을 순례하면서 또는 일상적으로 TV를 비롯한 대중매체를 통해서 미술과 만나게 된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미술사나 예술이론만으로는 이해되지않고 거리감을 갖게 만들었던 문제들이 무엇이었는지, 또한 미술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 책은 다른 방식으로 분명 도움을 줄 것이다. 곰브리치의 《미술의 역사》와 로즈메리 람버트의 《20세기 미술사》, 존 에이 워커의 《대중매체시대의 예술》 등을 읽고 난 후 이 책을 접하면 현대 시각예술에 대한 전반적인, 동시에 전문적인 이해를 돕는데 좋은 역할을 할 것이다.
윤희수 SADI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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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2001.1
우리가 흔히 미술품이라 말하는 라스코의 동굴벽화, 미켈란젤로의 조각 등은 그 당시 일상에서 의의와 용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존재하던 당대의 맥락에서 떼어와 박물관에 재배치, 분류하면서부터 미술로 존재하게 되었다. 그 후 미술은 인간이 일상의 맥락에서 만들어낸 그 어떤 것으로서가 아니라 독립적인 한 영역으로 신성시하고 절대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은 과학과 이성, 그리고 진보에 대한 믿음의 절대화가 확립된 시기, 즉 서구 근대 역사와 맥락을 같이한다. 이 책은 위와 같이 소위 ‘제도로서의 미술’이 만들어지기까지 미술이라는 용어, 예술이론과 미술사, 미술을 교육하는 아카데미, 그리고 박물관의 형성과 존재과정을 다른 시각으로 재구성하여 보여준다.
그리고 무엇이 미술이고 무엇이 미술이 아니지를 결정하는 이러한 오늘날의 제도화된 규법과 개념, 그리고 모더니즘적인 틀로서의 문화 제도에 관해 흥미진진한 접근으로 통렬하고도 전복적인 시각을 제시한다. 궁극적으로 저자는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이런 문화적 제도들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오늘날의 시각문화를 강력하게 구성하고 있는 이미지들을 잘 활용하여 폭넓은 시각예술에 대한 대안들을 제공한다.
18세기에 형성되기 시작한 ‘예술ART’이라는 용어는 천재적인 개인의 독창적인 산물로서 미적 아름다움을 지닌 물체이며 이런 개념은 영어의 정의를 따르면 ‘아름다움을 시각의 형태로서 기술적으로 생산하는(한) 것’이다. 이런 미술창작에 있어서 천재성 또한 특권의 해택으로 만들어지는 재능임을 지적하며 피카소와 베토벤, 세익스피어 같은 여성천재가 없는 것 또한 남성 중심의 이데올로기와 제도의 장치 속에서 ‘여성의 재능과 천재성이 남성과 같은 기반에서 성공을 거두기란 제도적으로 절대 불가능’했음을 보여준다. 전통적으로 여성들은 미술사에서 여신이자 모델로서 남성창작자들과 관객들에게 시선과 욕망의 대상이 되어왔다.
최근에 와서야 프리다 칼로와 메렛 오펜하임, 루이즈 부르조아 같은 여성미술가들이 남성미술가와 비슷한 대우를 받기 시작하며 바바라 크루거, 신디 셔먼 같은 작가들은 전통적 사고방식과 미술에서 주제가 되는 여성에 대한 관습, 지배 이데올로기에 다양하게 문제제기하고 있다.
박물관과 미술관, 그리고 미술이란 용어와 마찬가지로 미술사 역시 근대의 산물이다. 미술사의 연대기적 서술방식이나 사관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문명이 진보하며, 그 중심이 인간이라는 근대의 역사주의적, 진화론적 세계관과 떼어놓을 수 없다. 이런 발전과정을 답습하는 (정통)미술사의 방법론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저자는 아방가르드의 신화, 고급미술의 위치 등 모더니즘의 견고한 실체를 새로운 이론적 기반을 다지면서 분석하고 해체한다. 근대의 모더니티 문화로 인하여 상대적으로 특권과 지위를 누려오던 고급문화는 대중문화와 이분화되는데 이에 대해서도 중요한 의문들을 제기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아는 것만큼 본다’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본다는 것은 그것을 우리가 얼마나 알고 있나, 혹은 믿고 있나에 많이 영향받는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또한 아는 것이, 믿는 것이 보는 것이라는 말은 인간이 본다는 것이 선택적이며 이 선택에 따라 보는 것의 범위와 인식이 달려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자연적 관계가 아닌 우리 사회가 오랜기간 만들어 놓은 사회질서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는 원제 《믿는 것이 보는 것 Believing is Seeing》를 박모씨가 번역하면서 시각예술에 대해 전혀 사전지식이 없는 사람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곳곳에 역자의 글을 추가했으며 전문용어에 대한 설명도 곁들였다. 이 내용 또한 미술과 시각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시각으로 쉽고 꼼꼼하게 정리되어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다른 번역서와는 달리 미술과 디자인, 문화연구를 하는 이들은 물론 예술에 관심이 있는 대중들도 읽어 불 수 있다. 어렸을 때 배웠던 미술사나 TV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많은 도판들이 등장하고 내용들 또한 흥미진진하고 분명하다.
이 책은 독자가 미술과 근대적 주체 개념은 물론 문화에 대한 고루한 편견과 신화를 해체하고 열려진 관점으로 폭 넓게 접근하도록 도와 준다. 우리는 여가시간을 활용하는 방안으로, 혹은 세계여행에서 미술관과 박물관을 순례하면서 또는 일상적으로 TV를 비롯한 대중매체를 통해서 미술과 만나게 된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미술사나 예술이론만으로는 이해되지않고 거리감을 갖게 만들었던 문제들이 무엇이었는지, 또한 미술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 책은 다른 방식으로 분명 도움을 줄 것이다. 곰브리치의 《미술의 역사》와 로즈메리 람버트의 《20세기 미술사》, 존 에이 워커의 《대중매체시대의 예술》 등을 읽고 난 후 이 책을 접하면 현대 시각예술에 대한 전반적인, 동시에 전문적인 이해를 돕는데 좋은 역할을 할 것이다.
윤희수 SADI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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