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이의 동행, 토우 / 피희순
죽음, 유언장과 같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주제에 관한 질문을 불현듯 받았다. 그 당혹스러움과 난감함이 바로 현실로 다가왔을 때 우리는 이 상황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인생은 반복되는 ‘죽음’과 ‘삶’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하루를 마치고 돌아서며 무의식적으로 내일을 기약한다. 헤어짐은 이승에서의 영원한 작별을 고하는 것일 수도 있고 내일을 기약하는 무력한 인간의 바람이기도 하다.
고대 신라와 가야인들이 장송 의례에 사용했던 토우를 본 적이 있다. 토우란 ‘흙으로 만든 인형’이란 뜻이다. 상형 토기와 토우 장식 토기는 홀로 길 떠나는 망자의 외로움을 달래며 그들과 동행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빚어 함께 넣었다. 이별을 준비하며 만든 토우는 새, 말, 인형 등 망자의 지위와 일상, 취미에 따라 다양한 모양으로 만들어져 고대 사람들의 생활관과 내세관을 짐작하게 하였다.
죽음은 그렇게 거창하게 오는 것은 아니었다. 어제 보았던 이가 오늘, 이 공간에서 사라졌을 때 우리는 존재의 상실감을 경험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가 긴 여행에서 돌아오지 않는 한 우리는 그의 존재를 죽음으로 단정한다. 죽음은 마음의 준비를 할 여유도 주지 않고 남은 이들의 사정도 봐 주지 않았다.
어머니의 죽음은 나에게 심한 상실감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재를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옛 어른들은 늘 아홉수에 대한 경고를 잊지 않았다. 나이의 숫자가 9로 끝나는 해에는 좋지 않은 일이 생길 수 있으니 조심하고 경계하라는 뜻이다. 내 나이 서른아홉.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죽음이 나의 아홉수에 대한 응보였을 거라는 생각은 한동안 나를 옥죄는 검은 먹구름이 되었다.
구정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밤, 화롯불에 올려놓은 군밤이 톡톡 터지듯 밤늦도록 어머니와 이야기꽃을 피웠다. 아침에 눈을 뜨니 그 수다는 어머니의 숨결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인은 심장마비. 몇 시간 전만 해도 까랑까랑 울리던 웃음소리가 이제는 이 공간에서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삶의 고통이 힘들어서일까. 늘 피안의 세계를 갈망하던 어머니는 찬란한 아침 햇살에 증발해 버린 새벽이슬처럼 마지막 한마디 말도 남기지 않고 홀연히 삼도천三途川을 건너 버렸다.
모든 것이 사라졌다. 시간은 멈추고, 바람이 지나간 세상은 낯설게 다가왔다. 그 기억은 한때, 어머니의 목소리도, 희미하게 남은 잔상마저도 모두 지워 버리고 싶을 정도로 원망과 아픔과 그리움으로 온통 뒤범벅이 되었다. 그럼에도 내 입에 밥이 들어가고, 여전히 세상은 소리 없이 돌아간다는 사실에 분노하면서 나의 아홉수는 그렇게 심한 홍역을 치렀다.
그 이후로 나는 어머니가 떠난 나이, ‘64’라는 숫자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다. 누가 나에게 64라는 시간조차 보장할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는 미래에 점점 하루하루가 불안했다. 어머니의 죽음이 가져온 64에 대한 두려움과 트라우마는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며 따라다녔다.
우리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아무런 준비도 없었다. 심지어 ‘혹시’라는 의구심도 전혀 갖지 못했으므로 죽음이라는 자체를 상상하지도, 거룩하게 맞을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다. 그렇게 죽음은 살아있는 우리를 혼돈의 세계로 몰아넣었다.
미국의 한 정신과 의사는 사람이 죽음을 선고받고 이를 인지하기까지의 과정을 부정, 분노, 우울, 협상, 수용의 5단계로 구분하여 정의하였다. 나는 오랫동안 죽음에 대한 부정과 분노, 우울감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고대 신라인들은 달랐다.
신라인들은 토우를 빚는 손끝에 그들의 수만 가지 감정을 담아내며 죽음을 받아들였다. 분노의 감정도, 슬픔의 감정도 에둘러 담았다. 그들에게 죽음은 두려움이 아니라 다음 생을 위한 아름다운 이별이었다. 가까운 이를 보내며 죽음 너머의 삶에 대한 행복과 안녕安寧을 바라는 마음도 함께 빚어 넣었다. 귀엽고 익살스럽게 다듬어진 토우와의 동행은 죽음이라는 어둡고 긴 여정도 결코 두렵거나 외롭지 않은 즐거운 여행이 되었을 것 같다.
토우전에서 마주한 토우는, 오랫동안 내 안에 응어리처럼 남아 있던 ‘64’라는 숫자와의 이별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것은 갑작스레 들이닥칠지도 모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그 순간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긴 겨울을 건너는 혹독한 겨울나기였다. 하루하루를 반복하며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나는 생生과 사死가 마치 일상처럼 다가오고 스쳐 가는 것임을, 끝없이 반복되는 삶의 일부임을 깨달았다. 죽음에 대한 나의 두려움은 그렇게 사라졌다.
아이들에게서 생일 선물로 받은 팔찌에 눈길이 갔다. 애장하는 팔찌에는 앙증맞은 하트 모양의 딸랑이에 아주 작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처음에는 나의 어머니, 영원한 나의 친구(First my mother, forever my friend)’ 엄마와 딸로서 만났지만, 친구로 영원히 함께하자는 글귀다. 보기만 해도 미소가 절로 나온다. 인생을 함께 나눌 나의 친구가 되어줄 아이들이 새삼 고맙다.
언제가 될지 모를 훗날 나의 토우가 되어 아름다운 여행에 기꺼이 동행해 줄 딸랑이 팔찌가 오늘따라 유난히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