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달 / 최연실
한 계절이 다른 계절을 불러들이는 방식은 지방마다 다르다. 다른 지방에 단풍이 들 즈음, 제주는 짙은 녹색 물결이 돌담을 타고 번져간다. 원색의 계절은 주로 발간빛에 가깝고 소멸을 향해 가지만, 제주의 푸른빛은 탄생으로 이어진다.
바람에 스산함이 스미면 색은 또 다른 색을 잉태한다. 뭉텅이로 샛노랗게 거듭나는 풍요가 어둠 속에서 빛을 끌고 온다. 오름 기슭에서 돌담 너머까지, 밭마다 꽉 들어찬 감귤이 흐벅지게 익어간다. 한라산 자락을 넘어온 바람이 결마다 향기를 품고 마을로 달려간다. 바람마저 분주한 계절이다.
사람들의 온기가 스민 귤나무 사이에는 누군가 부려놓은 이야기가 주렁주렁 매달린다. 귤은 햇볕을 듬뿍 받으며 향기를 그러모아 완만한 동그라미를 완성한다. 감귤이 익어가는 계절이면 오래전 제주에서 보낸 날들 속으로 마음이 줄달음친다. 가닥가닥 풀어헤친 향기가 시드러운 날들을 한올지게 감싼다.
한때 제주에서 휴지(休止)의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다. 오롯한 나를 찾고자 현실의 어려움을 뒤로하고 나선 길이었다. 처음에는 외로움에 갇힌 듯했지만 섬 생활에 익숙해지자 낯선 곳이 정답게 다가왔다. 차츰 제주의 속살을 느끼고 싶었다. 노동의 가치와 사람들을 알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 귤밭이었다.
첫날, 새벽안개를 가르며 푸른 기운이 무성한 밭으로 들어갔다. 나무 아래에는 빨간 바구니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귤나무는 작지만 유독 이파리가 풍성했다. 밝고 진한 노랑과 두툼한 진초록 잎이 대비를 이뤘다. 이질적이면서도 색다른 조화가 서로를 더욱 두드러지게 했다. 나뭇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묵직한 가지 하나를 그러잡고 귤을 따기 시작했다. 먼저 앞치마 주머니에 담았다가 바구니에 옮겨 담는 방식이다. 저금통에 금화를 넣는 듯 푼푼했다. 땀으로 등줄기는 축축했지만, 귤이 담긴 바구니가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과일 그 이상의 의미로 내게 다가 온 귤이, 제주의 겨울을 지탱하는 생명줄이자, 수많은 사람의 꿈을 이끄는 달빛 같은 느꺼움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처음 섬에 들어 와 정착한 곳은 애월이었다. 물가 애涯, 달 월月에서 비롯된 지명이라고 했다. 이름 그대로 바닷가에 매달린 달, 단애 끝에 달린 달은 신비로웠다. 바닷바람이 휘몰아쳐도, 바다와 하늘이 맞닿는 경계에서 달은 흔들림이 없었다. 하늘과 바다의 중심축을 이루며 어둠에서 밝음으로의 바림이 자연스러웠다.
어릴 적 도시에서 보던 달은 내게 먼 풍경이었다. 나무우듬지에 걸터앉은 둥근 달은 시 한 편의 이미지에 불과했다. 그러나 바다 위에 뜬 달은 달랐다. 지상에 내려앉은 별 무리처럼 반짝였고, 귤밭 사이에 스며든 달은 금빛이었다. 마치 하늘에 있는 달이 지상으로 내려와 있었다. ‘금달(金月)’이었다.
밤마다 달빛은 세상 만물을 어루만지며 치런치런한데 뿌리 없는 허전함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바람은 결과 방향을 바꾸고 달빛은 모든 생명에 흥건했지만, 나는 묵직하게 굳어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절벽에 단단히 뿌리내린 달빛을 보며 무던히도 빈곤을 잊어보려 했다.
제주로 내려오기 전, 나는 지병으로 잦은 기침에 시달려 있었다. 병환으로 고생하던 어머님을 오래 모신 터라 쉴 수 있는 새로운 환경도 필요했다. 그것 뿐만은 아니었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뒤, 우리 부부의 시간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어두움이 내려앉았다. 형제들 사이에 남은 미묘한 균열도 그 원인 중 하나였다. 갓맑은 색이 만드는 공기라면 빛의 싹이 다시 돋아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새벽이면 건너편 축사에서 소들이 기지개를 켜듯 움직이는 소리가 둔탁하게 울렸다. 여물을 기다리는 소의 입김이 차가운 공기 속에서 하얗게 피어올랐다. 그 소리에 처마 밑에 웅크리고 있던 개가 짖어댔다. 어둠 속에서도 사람들은 조용히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소를 돌보는 손길에, 개를 달래는 목소리에, 연기 밴 새벽 공기에 나는 눈을 떴다. 달빛이 얇게 스민 눈꺼풀을 열어젖히며 귤밭을 향해 차를 몰았다.
농장주인 아주머니의 고향은 육지라고 했다. 오래전 고향을 떠나 제주에 정착해 아이 둘을 낳고 살았단다. 땅 한 평 없이 남의 집 일을 하며 버티다가 어렵사리 귤밭을 사게 되었단다. 그 밭을 조금씩 늘려 지금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 놓았지만, 눈가는 젖어 있었다. 햇볕과 바람을 오래 쥔 손의 손마디가 죄다 고부라진 삼촌들은 귤밭이 자식들을 키워주었다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삼촌들 사이에 비집고 앉아, 반쯤은 알아듣고 반쯤은 놓쳐버린 말들 속에서 함께 눈시울을 적시다가 웃기도 했다.
귤은 제주의 많은 것을 대변한다. 겉은 소박하면서도 때로는 까끌까끌하다. 섬사람만이 지닌 배타성도 그 표면에 배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속을 열면 향기로 꽉 찼다. 한 번 맺은 인연을 오래도록 품는 마음도 그와 닮았다. 제 속을 다 내어주는 귤처럼 그들 역시 쉽게 마음을 내보이지 않을 뿐 깊다. 돌투성이 밭에서 묵묵히 자라난 생명력은, 세찬 바람과 짠 바다를 견뎌낸 제주 사람들과 닮았다.
그들의 노동은 자기 몫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를 살리는 품앗이였다. 누군가의 오늘이 다른 이의 내일이 되는 일에 문득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다. 금빛 달을 따내듯, 땀 흘린 하루를 작은 꿈으로 바꾸어가고 있었다.
애월의 밤은 길지만 양손에 들린 봉지 덕에 자꾸 짧아진다. 봉지 안에는 흠집 난 귤들이 가득하다. 금달이 되지 못한 것들, 파과로 건네진 땅 위의 금달은 손끝에서 희망이 된다는 걸 그곳에서 배운다. 귤밭에서 나눈 이야기들이 밤공기 속에 여음처럼 퍼진다. 귤 향은‘드뷔시(Debussy)’의 달빛(Clair de lune) 선율처럼 조용하고 따뜻한 위로를 보탠다. 하늘에도, 땅에도 수많은 금달이 여물어 가는 사이, 방향을 잃은 채 질주해 온 나의 시간도 잠시 숨을 고른다. 귤은 밤낮으로 제주를 비추는 달빛처럼, 그들의 꿈이자 삶의 조각이다. 돌밭에 곧게 내린 뿌리처럼 귤밭에는 삶의 진실이 묵묵히 자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