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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수필

하여튼 파리는 파리 / 조문자

작성자이미성|작성시간26.06.22|조회수4 목록 댓글 1

하여튼 파리는 파리 / 조문자

 

 

꽤 늦은 밤 깐족깐족 사람 약 올린다어디서 파리 한 마리 방으로 홱 들어와 간지럼을 태운다천정에 붙었다가 이마에 붙었다가 볼때기에 붙는다파리채도 없고 살충약도 없는데

 

기다려라녀석과 동침은 절대 불가하다지가 죽든지 내가 살든지 해야 한다고수는 덤벙거리지 않는다산만하지 않으며 용의주도하다너무 멀어도 너무 가까워도 안 된다.

 

파리는 벽에 붙어 있으나 여차하면 도망칠 자세다어떻게 나를 골탕 먹일지 잔머리를 굴리는 게 분명하다궁여지책으로 공책을 쥔다까치발을 하고 놈을 향해 내리친다눈치가 구단이다동작이 재빨라 언제 머리 위로 날아갔는지 오르락내리락 프로펠러 소리로 윙윙거린다경공술이 리드미컬하다의자 모서리에 죽은 듯이 붙어 있다가 천정으로 뿅 솟구친다공중에서 세 바퀴를 돌아 어디에 앉을지 망설이더니 전등 갓에 붙는다눈씨름을 하려 해도 녀석이 곁눈이라 나를 보는지 옆을 보는지 당최 알 수 없다대가리몸뚱이다리 할 것 없이 보들레르 시()에 등장한 상복 입은 여인처럼 검다다시 공책을 넉넉히 쥐고 뙈기 치듯 멋지게 한방 후려친다. “!” 또 허탕이다.

 

벌써 재빠른 운신으로 내뺐다가루 내다 팔면 바람 불고 소금 팔러 가면 이슬비 온다고 먹다 만 찻잔이 키보드 위에 엎어졌다아이고생일 기념으로 산 컴퓨터인데 신경이 독하게 흥분된다날개 없는 나를 조롱하듯 쫓으면 갔다가 다시 와서 콧잔등에서 입술로 끈덕지게 달라붙는다다시 모니터 위에서 앞발을 싹싹 비비고 있다그래좋다납작코가 되도록 쪼글터 주든지 나도 날개를 달든지 할 테다남의 귀한 시간 빼앗고 비위를 건드리는 놈 관두지 않을 테다거무튀튀한 퉁방울눈에 어디 한 군데도 볼품없는 녀석 괘씸하다.

 

놈은 슬슬 나의 부아를 돋운다달라붙어 있는 자리도 전화기 번호판이나 컴퓨터 마우스전등 갓한마디로 때려잡기가 곤란해 분통이 터지지 않을 수 없다높이 더 높이 날려는 철학도 없는 주제에 시건방이 하늘을 찌른다적당히 해서 창문으로 날려 보내고 말아파리를 파리로 날려 버린다어림없는 소리 천부당만부당한 소리다하잘것 없는 것처럼 비칠지 몰라도 파리와 싸움도 싸움은 싸움이다.

 

파리는 다시금 배시시 나타났다방문이 열려 있건만 문제 해결 방도는 아예 생각지 않고 붙어 있는 자리에서만 머리통을 쥐어박는다()은 우리에게 두 개의 문을 준다동시에 두 문을 잠그지 않는다한쪽 문이 닫히며 다른 한쪽 문은 열어놓는다닫힌 문만 바라보며 끝없이 슬퍼하는 자는 열려 있는 다른 문을 알 턱이 없다파리도 열려 있는 문은 보지 않고 그 자리에서만 야단법석 떤다.

 

에구멍청이야옆 좀 봐방문이 열렸잖아

 

보다 못해 소리를 꽥 지르는 순간 파리와 내 경우가 어디가 다른지 돈오(頓悟)로 정신이 번쩍 든다사고 전환은 하지 않은 채 제자리에서만 박박 대는 파리는 내 모습 한 부분을 잘라 보여주었다.

 

나란 인간도 한 생각에만 사로잡힌 적 있다그것을 이루려고 사지 팔팔하게 움직였다아예 다른 생각이나 방법은 닫아 버리고 오로지 이 길이 아니면 안 돼내가 만든 규칙에 스스로 얽맸다생각을 달리해 보고 다른 방법도 찾아보았더라면 지금보다 더 나은 생활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마침내 그 일은 이루었으나 생()의 무게가 무겁기만 하다내가 만든 우리에 갇힌 격이다파리와 다르지 않다.

 

놈이 고개를 돌려 째려본다생긴 대로 살자 한다타고난 팔자대로 살자 한다당신이나 잘하고 살라 한다밥 먹고 하릴없이 파리나 간섭하냐는 듯 이젠 앉지도 않고 지그재그 비행한다파리를 보고 대포를 쏠 수 없는 일이 길로 달려가 에프킬라 사 오고 싶지만자정이 넘었다파리는 날아야 하고 삶은 유지돼야 한다.

 

이튿날 아침 눈 뜨자마자 방을 둘러본다파리는 여전히 마우스 위에서 날개를 오므렸다 폈다 하고 있다약이 다시 바짝 오른다건넛집 여자를 용병으로 고용하기로 했다어찌어찌하여 여차여차하니 우리 집에 와서 파리 좀 잡아 달라고 했다건넛집 여자가 파마머리를 봉두난발로 세우고 나타났다폴란드 자유 노조위원장 같은 인상을 한 그녀는 파리채를 들고 두 팔을 내 두른다딱딱한 것으로 파리 잡는 것은 망치로 참새 잡으려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짓이라며 헤실헤실 웃는다말캉말캉한 물체여야 파리 몸에 찰싹 달라붙는다고 자부심이 배인 목소리로 설명한다나는 무엇을 했길래 이 나이 먹도록 그것도 모른 채 살았던가말은 안 했지만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심정이었다.

 

건넛집 여자는 사위를 살피느라 눈에서 광채가 번뜩인다병아리를 겨냥하는 독수리 눈매다오페라 지휘자처럼 어깨까지 들썩이며 말캉말캉한 파리채를 휘둘러 놈을 한방에 박살 냈다파리 목숨이란 말이 실감 나도록 파리는 배가 터져 결단 났다.

 

아흐속이 시원하다하여튼 파리는 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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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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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지현 | 작성시간 26.06.22 new 파리 한마리 잡는다고 분투하는 작가님,
    그림 처럼 훤하게 다 보입니다~
    재밌게 읽었습니다~
    아무리 그래 봐야 파리는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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