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하나 할까? 2002년 월드컵 개최를 비롯한 여러가지 계기로 인해 축구에 대한 관심이 한
창 높아져 있었던 우리 사회에 꽤나 골치 아픈 이슈가 제기된 적이 있었다. 성남 일화 축구단의 구단
연고지인 성남시에 거주하는 개신교인들이 시 당국에 구단의 퇴거를 요구한 사건이 그것이다. 대한
민국 국민 전체에서 따져보았을 때, 어느 정도의 과장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흔히 전체 인구의 1/4을
차지한다고 이야기되는 기독교인의 비율을 고려해 보면 성남 시민의 인구 수에서도 상당한 비율을
구성하고 있을 개신교인들의 아우성을 성남 시장도 무시할 수 없었던지(아니면 그 스스로도 개신교
도였겠지) 성남 일화 퇴거운동에 한 몫 거들었다고 하는데, 어쨌건 이 일로 인해 성남 일화 팀의 팬
이나 축구 애호가들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까지, 그간의 여러 교회 내의 부정
과 비리 사건들, 다른 종교들에 대한 유별난 배타적이고도 독선적인 태도, 때와 장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분별한 전도행각 등으로 인해 가뜩이나 실추되었던 한국 개신교의 인상이 더더욱 더
러워졌다.
성남시의 개신교인들이 성남 일화 축구단의 연고지를 옮기라고 주장하는 단 한 가지 이유는 그 축구
단의 구단주가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세칭 통일교라는 종교집단 소유의 한 기업체인 ㈜일화이기
때문이다. 일화 축구단 소속 선수들이 전원 통일교 신자인 것도 아니고, 매 경기 시작과 끝에나 골이
들어갈 때마다 "참 부모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티를 공개적으로 내비친다거나 종교적인 구호를 외
치는 등의 간접적인 포교행위도 하는 일이 없지만 통일교 소유 회사의 축구단은 싫다는 것이다. 그
저 통일교는 박멸해야 할 "이단" 이기 때문이란다.
기독교가 그 역사의 초기부터 피 비린내로 얼룩져 온 종교임은 누구라도 인정하고 있는 바이다. 그
피흘림의 이유가 "진리의 수호" 에 있음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네들 나름대로의 주장에 따르면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핏자국 위에 자신의 피를 흘렸다고 하지만, 그렇
게 "지켜 내려온 진리"가 점차로 남의 피를 흘려가며 지켜졌고, 남의 피 흥건한 땅 위에 발 디뎌 이어
져 내려왔음도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금이야 유럽의 중세처럼 누군가의 믿음의 내용과
그 고백이 교회가 제정한 신앙고백의 내용과 다르다면 그 이의 목에 이단이라는 죄패를 걸고 신의
이름으로 화형주에 매달아 불태워 죽일 수 있는 시대는 아니라고 하지만, 앞에서 언급된 현대 우리
사회 일각에서 드러난 한 단편적 사건 역시 위와 같은 기독교 전통에 "충실하게 잇대어 있는(?)" 한국
개신교의 실상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좋은 예라고 한다면 지나치게 부정적인 의견일까?
고 탁명환 전 한국종교문제연구소 소장에 의하면 "정통진리의 기준" 이 세워진 상태에서, 정통의 기
준에 위배될 때 이단이라고 이야기한단다(기독교이단연구, pp.16-17.). 그러나 사실상 그러한 기준
을 가지고 타 종교 혹은 종파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것은 무의미할 뿐 아니라 불가능하다. 그 "정통진
리의 기준" 이라는 것이 결국 그 나름의 기준일 뿐이기 때문이다. 누구든 지 스스로가 정통이라고 주
장하는 자는 그 나름대로는 정통(?)일 수 밖에 없는 법이다. 어쨌든, 기성 개신교 교단 소속의 기독교
인들이 통일교를 "이단" 으로 규정해버린 이상, 개신교인들은 자신들의 믿음에 의해 정당화된 방법
론과 그 방법론을 통해 도출된 기준을 가지고 자기네들 나름의 믿음과는 다른 믿음의 '내용 자체' 에
옳으네 그르네 비판을 가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것은 마치, 대한민국 국도에나 적용되는 속도제
한규정을 가지고 아우토반을 달리는 차량들을 대상으로 과속 단속을 하겠다는 발상에 진배없다.
만약 어떤 종교단체가 종교적인 활동이나 제의 등을 빌미로 반사회적인 일탈행동이나 타인에게 피
해를 끼칠 수 있는 행위 등을 정당화하고 실제 그렇게 행동한다던가, 교리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신
도들의 금품이나 정조를 갈취한다던가 하는 사례가 있을 경우, 우리는 사회적 통념이나 건전한 상
식, 도덕관념, 혹은 법규범을 기준으로 그러한 행태를 비판할 수는 있다. 한 종교의 교리는 그 (비 가
시적인) 교리로 인해 야기되는 가시적 행태에 의해 얼마든지 비판될 수 있고 어떤 경우에는 시정을
요구받을 수 있다. 그리고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그 믿음이 건강해진다.
그러나 교리의 내용 자체, 즉 믿음의 내용 자체는 그것이 참으로 옳은지 그른지 객관적으로 판단할
만한 기준도 없고 증명할 방법도 없다. "지금 눈이 오고 있다" 라는 말은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당
장에 판가름 날 수 있다. 바로 밖으로 나가보거나 창문을 열어 보기만 해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망치로 저 유리창을 두들겨 패면 유리가 깨진다는 진술 역시 마찬가지다. 두들겨봐서 깨지면 맞는
이야기고, 그렇지 않으면 틀린 이야기다. 그러나 "내일은 꼭 눈이 올거야. 난 그렇게 믿어." 라는 말의
진위여부를 지금 당장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내일까지 기다려 눈이 오는지 안 오
는지 확인해 보는 일도 무의미한 일이다. 내일 눈이 올지 안 올지 그거 맞춰보자고 한 말이 아니기 때
문이다. 내일 눈이 온다는 것이 자신에게 어떠한 의미에서건 가치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기대하
기로 결정한다는 뜻에 다름아니다. 정말로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도, 그리고 알 필요도 없는
상태에서 어떠한 경우로든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의미부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본다면, 종교
적인 믿음의 내용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신앙고백의 내용 자체를 놓고 엄밀히 따져본다면 정말로 모든 것이 완벽하게, 누구든지 진리라고 인
정할 수 밖에 없는 객관적인 무엇인가를 구현하고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솔직한 얘기로 너무나
도 황당하고 비논리적이며 말도 안된다고 생각되기는 통일교의 원리강론이 주장하는 바나 소위 말
하는 정통 개신교의 교리나 별반 차이가 없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서 하늘로 올라갔는데 그 사람이
바로 세상을 구원할 목적으로 하느님이 내려보낸 하느님이었다는 이야기나, 그 하느님이 똑똑하게
일처리를 제대로 못해서 세상의 구원을 완성할 임무를 받은 사자를 다시 한국 땅에 내려 보냈는데
그게 바로 문선명이라는 이야기가 진짜냐 가짜냐가 객관적으로 명확하게 분별될 수 있는 종류의 것
이라거나 상식적으로, 또는 논리적으로 충분히 납득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아니,
사실 일부? 있기는 있는데, 건전한 상식에 기반을 두고 사고하는 보통사람들은 아무래도 그런 부류
들의 사고방식에 동조하기 힘들다). 따라서 교의의 옳고 그름이나 정교함, 또는 설득력으로 따져 어
느 한쪽이 우위를 주장할 수는 결코 없다.
그렇다면 교의가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측면에서는 어떠한가? 사회적 물의를 많이 일으키기로는 정
통 개신교의 교리를 따르는 이들이 통일교 신도들보다 더 하지 않은가? 하다 못해 최근 종교를 빙자
해 일어난 비리 / 범죄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횟수가 어느 쪽이 많은가를 단순비교만 해 보더라도 명
확해지는 일 아닌가? 물론 수많은 변수와 방법상의 맹점을 감안하고 생각해 본다고 하더라도, 그만
큼 교리가 곡해되어 악용될 만한 소지가 많다는 이야기는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가.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오히려 통일교 신자들이 정통?개신교도들을 이단이라고 몰아붙이고 비난하더라도 반박할 여
지가 없다. 누가 누구를 탓하고 욕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논하자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교리 교의건
그것 자체만으로 절대로 옳고 완벽한 진리 그 자체일 수는 결코 없다는 말이다.
성서라는 기준이 있다고 주장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성서를 해석하는 방법론상의 문제
라고 시비를 걸어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방법과 절차를 거친다고 해서 반드시 열이면 열 사람 똑같
은 해석을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25,000여 파로 갈라져 있는(무슨 조폭집단도
아니고..) 개신교의 상황 자체가 이를 말해주고 있음을 부정할 수 있겠는가? 믿음의 내용 자체, 종교
의 핵심으로 나아가는 길이 이제까지 교회공동체의 전유물이었다면 그것은 곧 개인 각자 각자에게
로 돌려져야 한다. 그것이 공동체의 신앙이 어떠한 것인가를 규정짓는 역할을 하기 보다는 철저하게
신앙인들 개개인의 내면의 가이드라인으로서 기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어렵
냐? 그래, 믿고 싶으면 혼자서나 믿으라는 얘기다. 진리에 이르는 길이 다양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사
람이 너무도 다종 다양이라서 똑같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 그토록 다양한 사람들에게 단
하나의 길만이 강요될 수는 없다는 아주 단순하고 평범한 사실에 기인한다.
그대를 포함한 온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의지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교
리를 믿음으로 하여, 그대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어떤 죄책감이나 부정적 감정, 뭐 이런 것들
을 나름대로 극복하게 되어 그것에 매여있을 적에는 제대로 영위할 수 없었던 스스로의 삶의 모습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것, 나는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것을 경험하게 된 그대 자신에게 있어서 위와 같은 교리는 얼마나 놀라운 은총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며 얼마나 기쁜 소식이 될 것인가. 그러나 그대에게 복음이 되었던 그 교리를 가지고 기준을 삼
아 다른 사람의 믿음을 재려고 하고, 그래서 만약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거나 다
른 의미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그 척도에 걸려들었다고 해서 저 사람은 이단입네, 구원받지 못하는
자입네, 지옥에 떨어질테니 불쌍해 죽겠네(시건방에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라고 정죄하기 시작한다
면, 그것은 이미 살리는 기쁜 소식이 아니라 살인의 도구, 분열의 빌미로 구실할 뿐이다. 사람마다의
차이를 인정, 혹은 인식조차 못하는 스스로의 지적능력의 한계와, 무식함에서 비롯된 오만함을 드러
내는, 그런 개인적인 차원에서 어물쩍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서, 그 교리 자체와 그러한 교리를 기반한
종교단체에 대한 성토를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 크든 작든
사/회/적/으/로/ 기/능/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렇다.
결국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의 기독교는 예수의 가르침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도구로
삼아 온 피비린내 진동하는 역사를 줄기차게 달려왔다. 십자군 전쟁과 이단재판, 마녀사냥의 역사,
자신의 성서해석에 이의를 달았다는 이유로 절친했던 친구이자 자신의 종교개혁의 동지였던 이까지
하느님의 이름으로 불살라 죽인 종교개혁자의 작태, 신대륙 개척이라는 명목 하에 청교도들에 의해
저질러진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과 인권유린, 선교라는 허울좋은 명분을 앞세운 제국주의 기독교 국
가들의 무분별한 침탈행위 - 그것은 제국주의 시대를 넘어선 지금까지도 똑같은 허울을 뒤집어쓴 채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 -, 그리고 그 이후로도 수많은 분열과 반목과 대립의 역사. 그리고 너무나 당
연한 결과지만, 현 시대에 와서 개신교는 더불어 살아가는 여러 사람들의 인식 속에 대표적인 사회악
의 기능을 하는 현상들 가운데 하나로 당당히 자리 잡아가고 있다.
기독교 교의/교리의 시작이 이단을 판별해 내고 진리(?)를 가려내는 데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고 그럴 필요가 있었던(만약 있었다면) 시대의 이야기로 접어야 한다. 가끔씩
"진리사수" 라는 말을 간판문구로 내거는 교회나 학생모집 광고문안으로 사용하는 신학교를 본다.
사람의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사람의 손으로 가질 수 없는 "진리" 를 "사수死守" 하기 위해 그대들은 너
무도 많은 대가를 치루어야 했고, 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죽여야 했다. 문선명이 뭘 어떻게 가르치
든지, 그의 추종자들이 뭘 어떻게 믿고 있든지 그것은 "정통개신교"를 신봉한다는 그대들이 판단하
고 단정지을 무엇이 아니다. 몰몬교의 창시자 조셉 스미스가 동네 뒷산에서 황금판을 팠다네, 석유
를 팠다네가 진짜냐 아니냐를 판가름내는 것은 더 이상 그대들 개신교 교의학이 이러쿵 저러쿵할 바
가 아니어야 한다. 분명한 것은, 2000년 전 이단적인 유대교 분파 운동의 시조인 예수와 나자렛 이단
의 괴수인 바울의 가르침 안에서 현대를 사는 그대가 발견한 구원의 진리 만큼이나 그 자신에게 가
치있는 진리를 문선명이나 조셉 스미스의 거짓말(?)속에서도 발견하고, 삶의 이유를 찾은 사람들이
있/을/수/있/다 는 것이다.
지금은 우리주 이슬 그라스님의 얼큰하신 은혜와
안주님의 든든하신 사랑과
국물님의 시원하시고 풀어주시는 역사가
여기 모인 모든 사람들의 간과 위장 위에
지금부터 내일 아침까지 함께하실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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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릴리 작성시간 06.02.05 어렸을때 중학교때.. 우리반 개신교 친구들이 그때 유행한 일화의 맥콜을 안사먹고 짝퉁 맥콜인 비비콜을 사먹으면서 문성명집단의 것 사먹지 말라고 포교했던 기억이 새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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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기독네티즌 작성시간 06.02.06 이단을 이단이라 말하지만 이단으로 정죄하기 전에 단순하게 말 많은 단체인지를 먼저 파악해야합니다. 이단이 이단이 아닌 경우도 보았습니다. 말 많은 단체를 이단으로 판단한다면 다시한번 생각해봐야합니다. 제대로 알아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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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땡땡이 작성시간 06.02.12 긴 글임에도 논리에 무리가 없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제가 크리스천이지만.. 다원주의를 이해하고 인정한다면 용서해 주실런지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