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반기련에서 안티로 활동을 하다가 기가본으로 옮겨서 지금 종비련에서 활동을 하는 문학비평님의 글을 옮겨 온 것입니다. 문학을 전공한 분답게 명문장들입니다. 기독교와 안티들 모두를 보는 시각이 잘나타나 있는 데 양비론적으로 보이지만 기독교를 불량품으로 보고 안티가 태동한 당위성을 강조하면서 다만 안티의 방법론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안티에 더 가까운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이러한 나의 판단이 절대적으로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기독인이나 안티들 모두 경청할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여 종비련에서 옮겨 왔습니다.
한국 종교 안티를 말한다[2]
글쓴이 : 文學批評 날짜 : 06-05-13 02:01 조회 : 10
개신교는 배타,독선,부조리,모순,편견,사대주의의 요소를 골고루 갖춘 인류사의 불량품이다.
그 불량품을 약간 개선한 종교가 이슬람교고, 그 불량품들을 출산한 카톨릭이 인류 비극의 원흉이다.
그 불량품들을 자의반 타의반 수입하여, 사용해 본 대중들이 불매 운동을 하는 방식이 바로 '안티'다.
안티는 기독교 행태에 분노하는 경험주의에서 나오는 불만 세력이고 기독교 입장에서 보면 가장 적대적인 집단이다. 안티는 총체적인 기독교를 부정하고 반대하며, 박멸할 대상으로 규정한다. 그 둘 사이엔 증오심, 적개심, 배타, 독선, 편견, 반민주적 방법론을 서로 공유하고 있다. 기독교는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며, 안티는 박멸을 실천하지 않는다. 두 집단은 가장 적대적인 관계이자 관념적인 상대다.
기독교는 개혁을 하면 기독교가 아니다. 반대로 안티는 포용을 하면 안티가 아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기독교는 안티가 비난하는 부분을 개혁하면 본질이 죽어버린다. 예를들어 성서를 차버리거나 예수를 신화(역사적 예수 부정)로 규정하면 더 이상 기독교가 아니다.
안티는 모든 것을 포용하면 기독교까지 포용해야 한다. 그러나 반기독 그리고 안티란 명칭이 포용을 거부한다. 모든 친기독교적 혹은 긍정적으로 기독교를 평가하는 제3자의 의견이나 조언 조차도 포용할 수 없다. 그리하면 안티의 명분이 사라진다. 안티는 기독교의 '기'자만 나와도 털끝 하나 토씨 하나까지 반대를 해야하고 부정을 해야한다. 이것은 서로가 피할 수 없는 숙명인지도 모른다.
기독교가 반기독교,안티기독교를 양산했다. 책임은 전적으로 기독교를 이끄는 사람들에게 있다. 서구유럽 기독교 종주국은 목회자가 잘 이끌어도 믿지를 않는다. 그런데 한국의 기독교는 넘쳐나는 자질 부족의 목회자가 있어도 웬일인지 신도들은 이끌려 간다. 아니 뭐가 되든 구원으로 이끌어주길 바라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안티는 그러한 기독교도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것이다. 다 똑같다라는 논리를 신도가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들이 그 둘 사이엔 평행선이 늘 지나 다니며, 온갖 험담과 욕설의 예리한 언어만 존재하고,
적대감(적개심)이 도를 넘어서는 것이다. 기독교는 기독교란 기표가 기독교의 본성을 못 버리고, 안티는 안티란 기표가 안티의 속성을 못 버리게 한다. 이것이 두 집단의 딜레마이며, 문자에 똑같이 얽매인 꼴이된 것이다. 기독교는 골수안티를 양산하고, 안티는 골수기독교를 양산한다. 시간이 지날 수록 더욱 투철한 양대 종교가 된다는 사실이다.
다시말해서 기독교의 독선이 안티를 생산하고, 안티의 독선이 기독교인을 생산한다. 극과 극은 통한다. 극과 극은 중립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다수의 중립적인 관찰자는(물론 관심도 없지만) 두 존재를 성가시고 귀찮게 치부한다. 그 둘 사이가 격렬해지면 두 존재를 '사회악'이라 판단할 것이다.
꼭 필요한 개혁과 포용은 기독교와 안티란 이름 때문에 요원하다. 그 두 단어(개혁과 포용성)는 서로가 나눠 가져야 할 중요한 해결의 실마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두 단어는 언제나 대립 구도의 양상을 띤다. 문제는 거대한 기독교는 안티에게 관심이 없다. 안티는 기독교에 관심(?)이 많다. 물론 박멸의 대상으로서 말이다. 지극히 감정적이고 비현실적인 구호만 있는 안티란게 기독교는 물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다. 박멸이란 말은 바퀴벌레나 모기한테나 쓰는 것이라 그런지 좀 그렇다.
자신이 싫어하는 집안 사람들이라 하지만, 그 집안도 사람사는 곳이며, 분명 사람들이다. 그 집안의 아비가 문제가 있다고, 그 집안 사람들을 박멸하겠다는 표현이 참으로 무자비하게 느껴진다. 인간애란 그 문제있는 집안의 문제있는 가장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려서 계몽하고 설득해야 진정한 포용이며 인간애의 발현일 것이다. 불가능하다고 기독교 신자라? 그런 인내도 없이 더불어 사는 사회는 힘들다.
오늘도 기독교 사이트에서 상처받는 안티나, 안티 사이트에서 상처받는 기독교인들이나 타민족 대하 듯, 범죄자 쳐다보듯, 아이 다루듯 하다보면 둘 모두는 한심한 군상들로 전락해 갈 것이다.
한국 종교 안티를 말한다[2]
글쓴이 : 文學批評 날짜 : 06-05-13 02:01 조회 : 10
개신교는 배타,독선,부조리,모순,편견,사대주의의 요소를 골고루 갖춘 인류사의 불량품이다.
그 불량품을 약간 개선한 종교가 이슬람교고, 그 불량품들을 출산한 카톨릭이 인류 비극의 원흉이다.
그 불량품들을 자의반 타의반 수입하여, 사용해 본 대중들이 불매 운동을 하는 방식이 바로 '안티'다.
안티는 기독교 행태에 분노하는 경험주의에서 나오는 불만 세력이고 기독교 입장에서 보면 가장 적대적인 집단이다. 안티는 총체적인 기독교를 부정하고 반대하며, 박멸할 대상으로 규정한다. 그 둘 사이엔 증오심, 적개심, 배타, 독선, 편견, 반민주적 방법론을 서로 공유하고 있다. 기독교는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며, 안티는 박멸을 실천하지 않는다. 두 집단은 가장 적대적인 관계이자 관념적인 상대다.
기독교는 개혁을 하면 기독교가 아니다. 반대로 안티는 포용을 하면 안티가 아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기독교는 안티가 비난하는 부분을 개혁하면 본질이 죽어버린다. 예를들어 성서를 차버리거나 예수를 신화(역사적 예수 부정)로 규정하면 더 이상 기독교가 아니다.
안티는 모든 것을 포용하면 기독교까지 포용해야 한다. 그러나 반기독 그리고 안티란 명칭이 포용을 거부한다. 모든 친기독교적 혹은 긍정적으로 기독교를 평가하는 제3자의 의견이나 조언 조차도 포용할 수 없다. 그리하면 안티의 명분이 사라진다. 안티는 기독교의 '기'자만 나와도 털끝 하나 토씨 하나까지 반대를 해야하고 부정을 해야한다. 이것은 서로가 피할 수 없는 숙명인지도 모른다.
기독교가 반기독교,안티기독교를 양산했다. 책임은 전적으로 기독교를 이끄는 사람들에게 있다. 서구유럽 기독교 종주국은 목회자가 잘 이끌어도 믿지를 않는다. 그런데 한국의 기독교는 넘쳐나는 자질 부족의 목회자가 있어도 웬일인지 신도들은 이끌려 간다. 아니 뭐가 되든 구원으로 이끌어주길 바라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안티는 그러한 기독교도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것이다. 다 똑같다라는 논리를 신도가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들이 그 둘 사이엔 평행선이 늘 지나 다니며, 온갖 험담과 욕설의 예리한 언어만 존재하고,
적대감(적개심)이 도를 넘어서는 것이다. 기독교는 기독교란 기표가 기독교의 본성을 못 버리고, 안티는 안티란 기표가 안티의 속성을 못 버리게 한다. 이것이 두 집단의 딜레마이며, 문자에 똑같이 얽매인 꼴이된 것이다. 기독교는 골수안티를 양산하고, 안티는 골수기독교를 양산한다. 시간이 지날 수록 더욱 투철한 양대 종교가 된다는 사실이다.
다시말해서 기독교의 독선이 안티를 생산하고, 안티의 독선이 기독교인을 생산한다. 극과 극은 통한다. 극과 극은 중립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다수의 중립적인 관찰자는(물론 관심도 없지만) 두 존재를 성가시고 귀찮게 치부한다. 그 둘 사이가 격렬해지면 두 존재를 '사회악'이라 판단할 것이다.
꼭 필요한 개혁과 포용은 기독교와 안티란 이름 때문에 요원하다. 그 두 단어(개혁과 포용성)는 서로가 나눠 가져야 할 중요한 해결의 실마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두 단어는 언제나 대립 구도의 양상을 띤다. 문제는 거대한 기독교는 안티에게 관심이 없다. 안티는 기독교에 관심(?)이 많다. 물론 박멸의 대상으로서 말이다. 지극히 감정적이고 비현실적인 구호만 있는 안티란게 기독교는 물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다. 박멸이란 말은 바퀴벌레나 모기한테나 쓰는 것이라 그런지 좀 그렇다.
자신이 싫어하는 집안 사람들이라 하지만, 그 집안도 사람사는 곳이며, 분명 사람들이다. 그 집안의 아비가 문제가 있다고, 그 집안 사람들을 박멸하겠다는 표현이 참으로 무자비하게 느껴진다. 인간애란 그 문제있는 집안의 문제있는 가장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려서 계몽하고 설득해야 진정한 포용이며 인간애의 발현일 것이다. 불가능하다고 기독교 신자라? 그런 인내도 없이 더불어 사는 사회는 힘들다.
오늘도 기독교 사이트에서 상처받는 안티나, 안티 사이트에서 상처받는 기독교인들이나 타민족 대하 듯, 범죄자 쳐다보듯, 아이 다루듯 하다보면 둘 모두는 한심한 군상들로 전락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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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방가방가 작성시간 06.05.13 자유인 선생...기독교인과 손을 잡다니? 뭐 지금 남북전쟁 하시나? 답답하시네들.. 뭔 종교를 갖든 뭔 지랄을 하던 니편 내편 하는것이....답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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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自由人 작성시간 06.05.13 님이 뭔 종교를 갖던 상관은 하지 않겠소. 그리고 전 초보이긴 하지만 명색이 안티라서 기독교인들에 대해 좋지 않은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걸 부정하진 않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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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自由人 작성시간 06.05.13 그리고 전 종비련에 대해 비난은 될 수 있는대로 자제를 하는 편이지만, 종비련이 안티에 대해 비난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리 좋은 눈으로 보여지지 않는구료. 저도 사람인지라 완벽한 객관성을 유지하진 못하는 한계는 분명히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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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방가방가 작성시간 06.05.13 종비련이 안티를 비난하는 글이 아니죠...무조건 옹호도 설 자리를 잃게 합니당...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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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시선 작성시간 06.05.13 설자리를 본다....음..그렇군요...안티의 분포를 잘아시는분이 아니시기도 한가보군요...각자 안티하는 부분이 다르기에 옹호자체가 무의미 하다는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