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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사회

Re:원시사회에서 여자는 공동 재산이었다?.

작성자전차|작성시간06.08.28|조회수79 목록 댓글 3
고조선은 모계중심사회였다?.
-학교 역사시간에 이런 말을 듣고는 왜? 고조선이 모계중심사회였는지
선생님께 물어봐도 당시 선생님이 제대로 모르고 대충 얼버무리는 듯한 답변을 들었습니다.

그뒤 중국 역사책을 읽다가
중국 청동기 시대 (우리나라는 고조선 시대) 이전을 모계중심으로 보는 이유는?
- 어머니 姓을 따랐다는 것이고
그 당시 무슨 姓이 있었느냐면,
빨간머리네 姓 둘째 아들 名.
곱슬머리네 姓 셋째 딸 名.
이런 식으로 이름을 지었다.

그 당시는 동굴 같은데서 집단 거주하다 보니
群婚을 하여 얘 아버지가 누군지? 몰라 어머니 姓을 따랐고 모계중심사회가 되었다.
집단의 우두머리는 남자가 했을 것이다.

그 뒤 철기시대와 농경사회로 접어 들면서
일부일처제 또는 일부일처 다첩제 와 가부장제도가 정립되었다.
정립되는 시기에 첫아이는 다른남자의 씨앗일지 모르니 죽여버렸다.


여기서 群婚을 두고 모계중심사회라고 볼 수도 있고 여자는 공동재산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기독경에도 야훼가 첫 아이는 바쳐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런 시기가 청동기에서 철기시대로 넘어가는 시점이 아니었나? 봅니다.(막연한 추측)
서양에서도 동양과 마찬가지로 群婚에서 일부일처제인 철기시대로 넘어가면서
다른남자의 씨앗일지 모를 첫아이를 죽였는데
스스로의 잘못을 합리화 시킬 목적과 위안으로
"야훼의 명령이다" 라고 쓰지 않았나? 싶습니다.

간통죄 존폐 문제는?
폐지론자의 주장을 들어보면
간통죄를 악용하여 법적 부부가 서로 짜고 다른 남자나 여자와 간통한 다음
교도소 넣겠다고 위협한 다음 돈 갈취하는 사례가 있다고 합니다.

현재 여성호주제를 인정하는 법률도 나왔으니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아마 1천년 이내 잦은 이혼으로 어머니 姓을 따르는 사회로 복귀할 겁니다..
이렇게 되면 간통죄 폐지는 결국 시간상의 문제일뿐.
언젠가는 폐지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간통죄 폐지론자는 아닙니다.
폐지하던지 말던지.. 이런 일에 나서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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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自由人 | 작성시간 06.08.28 간통죄...ㅎㅎㅎ... 능력없는 저같은 넘에게는 참으로 좋은 제도인데... 능력 좋은 사람들에게는 그게 안 좋은 제도인가 봅디다...ㅎㅎㅎ...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애초에 과학자가 되는 게 아니라, 그 능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길로 갔어야 했는데...ㅎㅎㅎ... 이젠 너무 늦어서리...ㅋㅋㅋ
  • 답댓글 작성자릴리 | 작성시간 06.08.28 ㅋㅋㅋ 지금도 안늦었습니다.
  • 작성자릴리 | 작성시간 06.08.28 모계사회였다는 것은 하나의 추정(설)일 뿐인데요. 저는 원시사회가 모계사회였을 것이라는 상상이 도저히 안되어서요. 물론.. 여성이 좀 더 능동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은 조금씩 듭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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