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천의 구름위에서 비탄에 빠진체 인드라가 시방세계를 내려다 보고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윤회를 거듭하지만 덧없는 약속위에 업을 짖고있다.
고뇌와 불행 분노 슬픔등은 따지고 보면 각각의 말따위가 아니라 어떤 한가지 상태를 다른말로 표현한것일 따름이 아닌가?
그럼에도 고뇌하는자가 불행하지않다고 말하며 불행하다는자가 분노하고 슬퍼한다고 말하고있다.
그러나 사실은 고뇌하는자가 불행하며 그가 바로 슬픔이고 분노일따름이 아닌가?
아니 고뇌와 분노 불행 슬픔이 바로 그가 아닌가?
도대체 언제 윤회라는 말을 버릴것인가?)
예수: 고뇌하는 인드라여.
사람은 슬플따름입니다. 그것은 애초에 정해진일이며 타락에 의한것입니다
인드라: 사람이 슬프다는것은 인정할수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애초에 정해진일이라고 할수있겠습니까?
예수: 사람은 잠시도 고정된 마음을 가질수없으니 사람이 나는 일부터 정해진일이라고 할수있습니다.
인드라; 그렇군요. 그렇다면 인자께서는 고정된 마음을 가지지못하는 연유로 사람이 슬프다는 말씀이군요.
그러나 그것이 어찌 슬픔의 이유가 될수있겠습니까?
또한 마음이 변하는 일로 선과악을 넘나든다고 하여 그것이 어찌 슬픈일이 될수있습니까?
다만 사람이 슬프다는것은 자신의 마음이 어떠한 상태인지를 통찰하지못하는 상태를 말하는것이 아닙니까?
예수; 그러할것입니다. 슬프다는 상태는 어찌할바를 모르는 상태를 뜻하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어찌할바를 아는 마음의 상태를 사람들은 신앙하며 그신앙심이 그를 변화시켜줄것입니다.
인드라: 사람에게 신앙이란 중요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외에도 중요한 일은 많을것입니다. 저로서는 당장에 슬픔따위를 그만둘수있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예수: 오오...바로 그러합니다.
그것은 종말이고 종말은 스스로를 심판하게 될것입니다.
죽음이란 육적인 죽음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죽음과 함께하는것..
그것을 나의 사도 바울은 매일 죽는다는 아름다운 말로 봉헌하였습니다
인드라: 그러합니다.
죽음이란 육체적인 죽음만을 의미하는것은 아닐것입니다.
지혜로운자여. 죽음이란 자신의 모든것과 당장 그자리에서 결별하는것은 아닐까요?
썩어버린 나무토막을 날카로운 칼로 당장에 베어버리듯이 종말은 ..
예수: 하늘의 기운을 담당하시는 이여...
그러나 사람이 육체를 가진한 그어떠한 것도 당장에 끊을수는 없는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람은 신앙의 힘으로 육체가 사하는날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한 영원성을 사모하는한 그는 이미 구원을 받았다 할것입니다.
인드라; 그렇다면 육체는 악의 근본이 되겠군요.
바르게 사용하지않은 육체는 감각의 노예가 될뿐이어서 그는 평생을 가치있는 일에 어울리지않는 속에 갇혀버릴뿐이겠군요.
예수: 육으로난 자는 육적인 일에만 탐닉할뿐입니다.
혹 오해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태어난자가 이미 그의 길이 정해져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영적인것에 관심을 두는자는 이미 영적으로 성숙되었고 영적인 인도가 그를 바른길로 인도할것이 틀림없습니다.
인드라; 인자시여...
그러나 욱체는 계승되는것입니다. 그럼으로 육체는 멸하지않는다고 할수있겠습니다.
당장 끊어야 할것은 무지와 편견이며 자기연민입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영적이라는 언어가 오히려 즉각적인 앎을 방해하는것으로 보입니다.
끊어버린다는것은 그자체를 이해한다는것이며 이해는 객관적인 것을 말하는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스스로를 살펴보아 슬픔과 분노와 질시에서 벗어날수있습니다.
그것들은 각각의 하나가 아니라 하나의 자아일뿐입니다.
변해가는 자아를 살펴 그것과 끝장을 보겠다는 결의를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그것을 죽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감히 말하자면 윤회와 거듭남은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예수: 육체를 너머 당장 모든것을 끝장낸다....라
많은 사람들은 각각의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내용을 이해못할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도 길은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존재합니다.
인드라: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문제를 이해하리라고는 말하지않겠습니다.
그러나 달리 다른길도 있다고 말하고 싶지않습니다.
일을 미루어서는 아무일도 할수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용기를 내야만 합니다.
어쩌면 모든것을 미루는것...망설임 ..그것이 슬픔의 연유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리고 죽음은 모든것이 끝장나서 더이상 삶을 살아야할 이유가 없는 그런것은 아닙니다.
부정적인 것의 통찰이며 자기연민이 아니라 자기이해이며 전혀 새로운 어떤것의 발현을 뜻합니다.
예수: 저역시 그점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거듭남은 바로 그것을 의미합니다.
단지 그대의 말은 너무도 가혹합니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이 진실일지도 모릅니다.
인드라: 인자여....
저의 말이 너무도 가혹함을 잘알고있습니다.
그래서 33천의 구름과 시방세계가 슬퍼보이는것입니다.
이또한 미룸임을 잘알고있습니다.
다만 한가지 소망이있다면 이 미룸이 설레임이 되길 희망할 따름입니다.
33천의 하늘도 곧 석양의 아름다운 자태를 떨구고있었다.
둘은 고개숙여 희망과 평화를 기원하는것이었다.
모든 살아있는것들에게 평화가 깃들기를...
그리고 투쟁할 용기와 자기연민의 슬픔을 자기이해의 평안함으로 승화시킬 가혹함의 현실을...
감사하고 노래하는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윤회를 거듭하지만 덧없는 약속위에 업을 짖고있다.
고뇌와 불행 분노 슬픔등은 따지고 보면 각각의 말따위가 아니라 어떤 한가지 상태를 다른말로 표현한것일 따름이 아닌가?
그럼에도 고뇌하는자가 불행하지않다고 말하며 불행하다는자가 분노하고 슬퍼한다고 말하고있다.
그러나 사실은 고뇌하는자가 불행하며 그가 바로 슬픔이고 분노일따름이 아닌가?
아니 고뇌와 분노 불행 슬픔이 바로 그가 아닌가?
도대체 언제 윤회라는 말을 버릴것인가?)
예수: 고뇌하는 인드라여.
사람은 슬플따름입니다. 그것은 애초에 정해진일이며 타락에 의한것입니다
인드라: 사람이 슬프다는것은 인정할수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애초에 정해진일이라고 할수있겠습니까?
예수: 사람은 잠시도 고정된 마음을 가질수없으니 사람이 나는 일부터 정해진일이라고 할수있습니다.
인드라; 그렇군요. 그렇다면 인자께서는 고정된 마음을 가지지못하는 연유로 사람이 슬프다는 말씀이군요.
그러나 그것이 어찌 슬픔의 이유가 될수있겠습니까?
또한 마음이 변하는 일로 선과악을 넘나든다고 하여 그것이 어찌 슬픈일이 될수있습니까?
다만 사람이 슬프다는것은 자신의 마음이 어떠한 상태인지를 통찰하지못하는 상태를 말하는것이 아닙니까?
예수; 그러할것입니다. 슬프다는 상태는 어찌할바를 모르는 상태를 뜻하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어찌할바를 아는 마음의 상태를 사람들은 신앙하며 그신앙심이 그를 변화시켜줄것입니다.
인드라: 사람에게 신앙이란 중요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외에도 중요한 일은 많을것입니다. 저로서는 당장에 슬픔따위를 그만둘수있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예수: 오오...바로 그러합니다.
그것은 종말이고 종말은 스스로를 심판하게 될것입니다.
죽음이란 육적인 죽음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죽음과 함께하는것..
그것을 나의 사도 바울은 매일 죽는다는 아름다운 말로 봉헌하였습니다
인드라: 그러합니다.
죽음이란 육체적인 죽음만을 의미하는것은 아닐것입니다.
지혜로운자여. 죽음이란 자신의 모든것과 당장 그자리에서 결별하는것은 아닐까요?
썩어버린 나무토막을 날카로운 칼로 당장에 베어버리듯이 종말은 ..
예수: 하늘의 기운을 담당하시는 이여...
그러나 사람이 육체를 가진한 그어떠한 것도 당장에 끊을수는 없는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람은 신앙의 힘으로 육체가 사하는날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한 영원성을 사모하는한 그는 이미 구원을 받았다 할것입니다.
인드라; 그렇다면 육체는 악의 근본이 되겠군요.
바르게 사용하지않은 육체는 감각의 노예가 될뿐이어서 그는 평생을 가치있는 일에 어울리지않는 속에 갇혀버릴뿐이겠군요.
예수: 육으로난 자는 육적인 일에만 탐닉할뿐입니다.
혹 오해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태어난자가 이미 그의 길이 정해져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영적인것에 관심을 두는자는 이미 영적으로 성숙되었고 영적인 인도가 그를 바른길로 인도할것이 틀림없습니다.
인드라; 인자시여...
그러나 욱체는 계승되는것입니다. 그럼으로 육체는 멸하지않는다고 할수있겠습니다.
당장 끊어야 할것은 무지와 편견이며 자기연민입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영적이라는 언어가 오히려 즉각적인 앎을 방해하는것으로 보입니다.
끊어버린다는것은 그자체를 이해한다는것이며 이해는 객관적인 것을 말하는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스스로를 살펴보아 슬픔과 분노와 질시에서 벗어날수있습니다.
그것들은 각각의 하나가 아니라 하나의 자아일뿐입니다.
변해가는 자아를 살펴 그것과 끝장을 보겠다는 결의를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그것을 죽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감히 말하자면 윤회와 거듭남은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예수: 육체를 너머 당장 모든것을 끝장낸다....라
많은 사람들은 각각의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내용을 이해못할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도 길은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존재합니다.
인드라: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문제를 이해하리라고는 말하지않겠습니다.
그러나 달리 다른길도 있다고 말하고 싶지않습니다.
일을 미루어서는 아무일도 할수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용기를 내야만 합니다.
어쩌면 모든것을 미루는것...망설임 ..그것이 슬픔의 연유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리고 죽음은 모든것이 끝장나서 더이상 삶을 살아야할 이유가 없는 그런것은 아닙니다.
부정적인 것의 통찰이며 자기연민이 아니라 자기이해이며 전혀 새로운 어떤것의 발현을 뜻합니다.
예수: 저역시 그점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거듭남은 바로 그것을 의미합니다.
단지 그대의 말은 너무도 가혹합니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이 진실일지도 모릅니다.
인드라: 인자여....
저의 말이 너무도 가혹함을 잘알고있습니다.
그래서 33천의 구름과 시방세계가 슬퍼보이는것입니다.
이또한 미룸임을 잘알고있습니다.
다만 한가지 소망이있다면 이 미룸이 설레임이 되길 희망할 따름입니다.
33천의 하늘도 곧 석양의 아름다운 자태를 떨구고있었다.
둘은 고개숙여 희망과 평화를 기원하는것이었다.
모든 살아있는것들에게 평화가 깃들기를...
그리고 투쟁할 용기와 자기연민의 슬픔을 자기이해의 평안함으로 승화시킬 가혹함의 현실을...
감사하고 노래하는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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