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이 카페에서 잠수를 탓는지라...참종교님과의 논쟁의 발단과정을 지켜보지는 못했지만.....일단 최근 진행된 논쟁을 중심으로 한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프리메이슨에 대해 잘 모르지만 (관심도 없고)...
다만 '환상의 악플'님이 6월 13일에 올리신 "프리메이슨? ㅋㅋㅋ"라는 제목의 글이 가장 통쾌하고 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
'환상의 악플'님 말처럼, 프리메이슨은 음모론 카페에서 가서 하시라고 말하고 싶네요.
저는 프리메이슨에 대해 관심도 없고, 아는바도 거의 없지만,
바이블과 신학적인 분야에서는 참종교님을 훨씬 압도한다고 스스로 여기기에(ㅋㅋㅋ) 이 분야에 한정해서 님께 대답 드리죠.
(1) 기독교는 조로아스터교의 표절이다?
:사실입니다.
조로아스터교는 유대교, 이슬람, 기독교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종교입니다.
(대략적으로 세계종말과 신세계의 도래, 불의심판, 구세주의 탄생, 사후세계, 천사, 묵시문학, 야만적인 동물 희생제사 철폐, 육과 영의 이원론..... 등등의 막대한 영향을 끼쳤죠)
꽉막힌 목사가 아니라면 신학자들조차 인정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대백과 사전을 봐도 그렇다고 나올 정도니까.
J.B Noss의 '세계종교사'(윤이흠 역)의 책을 읽어보시도록 권장합니다.
(2) 예수에게 아내가 있었다?
: 영지주의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주장입니다.
성혈과 성배류의 책에서 주장했고, 다시 이 책의 주장을 받아들인 '이리유카바 최'의 책에서는 '나그하마디 문서'에 포함된 마리아 복음서등을 예로들며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부인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합니다.
그 외경에서는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가 키스를 하고, 두 사람 사이에는 알듯 모를듯한 친밀감이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죠.
이런 자료를 사용하면서 예수의 결혼을 주장하는 일부 안티도 있습니다. (사실 전부터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 했는데, 괜히 안티사이에 분란을 일으키기도 싫고, 귀차니즘의 압박으로 보고도 못본체 했습니다.)
그러나 어처구니 없게도 '성혈과 성배'에서는 '마가의 비밀복음'도 함께 언급하고 있습니다.
왜 어처구니 없냐고요?
'마가의 비밀복음'에서는 예수와 나자로가 동성연애적인 행각을 벌이거든요?
한밤중에 나체에 아마포만 걸치고 나타난 나자로가 예수의 침실로 와서는....밤새도록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ㅋㅋㅋ
그럼 예수는 여자와 결혼하고, 남자와 동성연애도 벌인.....희대의 양성연애자 겠군요.^0^
제4의 복음서(흔히 요한복음이라고 부릅니다)에서도 예수는 '사랑하는 제자'를 여러번 품에 안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는 4복음서의 저자로 추정되며, 초대교회의 전승에는 '사랑하는 제자'가 사도 요한으로 알려졌기에 4복음서가 '요한복음'으로 불려진 겁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제자'는 나자로일 가능성이 더 큽니다.
나자로가 병들었을때 다른제자가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라고 말하고, 나자로의 무덤에 도달한 예수는 눈물까지 흘립니다.
어잿든.....남자가 남자를 품에 안다니.....예수는 동성연애자 일까요?
영지주의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이렇게 받아들일수 밖에 없습니다.
'성혈과 성배'의 저자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나자로는 예수의 가족을 빼돌리고 그들을 보호할 중요한 책무를 맡았고,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아내였다고....
입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으로 외경을 이용해 먹는거죠.
'마리아 복음서'와 '마가의 비밀복음'을 동시에 자료로써 사용한다면...차라리....예수는 여자와 결혼하고, 남자와 동성연애도 벌인.....희대의 양성연애자로 묘사하는게 더 합당한게 아니겠습니까? ^0^
'마리아 복음서'와 '마가의 비밀복음'을 함께 자료로 사용하면서, 어째서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연인(아내)이었다고 주장하면서, 나자로도 예수의 연인(애인) 이었다고 주장하지 않는 겁니까?
당시 유대사회에서 동성연애는 용납하지 못할일이었지만...헬레니즘 문화권에서는 그리 이상할일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잘알고 있는 소크라테스나 플라톤도 그러했다고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생각되겠지만, 그리스에서는 스승과 어린제자(남자)간에 동성연애적인 썸씽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고 하죠.
복음서는 유대땅에서 기록된것이 아닙니다. 복음서는 헬라어로 기록 되었습니다.
복음서의 저자는 당신의 유대사회에 대해 무지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원하시면 나중에 따로 말씀드리죠.)
이는 복음서가 헬라문화권에서 헬라어로 기록 되었고, 담겨있는 사상조차도 헬라적인 사고관이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서의 구약 인용은 죄다 엉터리 입니다.)
(3) 예수의 십자가 처형 오류설
: 영지주의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주장입니다.
성혈과 성배류의 책에서 주장했고, 다시 이 책의 주장을 받아들인 '이리유카바 최'의 책에서는 예수대신 다른 사람이 희생되었다고 주장합니다.
마태,마가,누가복음에서 구레네의 시몬이 '강제로'(억지로) 예수의 십자가를 끌고 갔다고 나옵니다.
한술 더떠서 마태복음 27장 31절 이후에서는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이 누구인지 애매모호합니다.
구레네의 시몬이 십자가에 매달린것인지....아니면.....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것인지 모호하게 기록한거죠.
당연히 현대에 번역된 성경에서는 "그를 십자가에 매달았다"를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았다"로 변개해서 번역했습니다.
(주석성경이 있으신 분들은 찾아 보세요. 성경을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인간들이 지들 맘대로 성경을 변개해서 번역하고....잘들 논다~)
또한, 마태복음 27장 16~17절에서는 '예수 바라바'가 등장 합니다.
당연히 현대에 번역된 성경에서는 '예수 바라바'를 그냥 '바라바'로 번역했습니다.
(성경을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인간들이 지들 맘대로 성경을 변개해서 번역하고....잘들 논다~)
그러나 다른 성경들이 모두 고의적인 오역을 한가운데.....오로지 공동번역판만이 비교적 원문에 가깝게 번역했군요.
공동번역판의 구절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마침 그 때에 (예수) 바라빠라는 이름난 죄수가 있었다. 빌라도는 모여든 군중에게 '누구를 놓아주면 좋겠느냐? 바라빠라는 예수냐? 그리스도라는 예수냐?' 하고 물었다." [마태오의 복음서 27장 16~17절 / 공동번역판]
성혈과 성배의 저자는 주장합니다. 예수대신 구레네의 시몬이 십자가에 매달렸고, 바라바는 예수의 아들이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영지주의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주장입니다.
외경에 해당되는, '위대한 세트 신의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십자가를 짊어졌던 시몬과 가시 면류관을 쓴 또 다른 시몬을 언급하고 있으며, 예수는 높은 곳에서 그들을 바라보며 비웃습니다.
'베드로 계시록'에는 예수와 닮은 자가 나무에 매달려 기뻐하며 웃습니다.
'요한행전'에는 나무(십자가)에 매달렸으나 매달리지 않은 예수, 아무런 고통도 받지 않는 예수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요한이 예수의 몸을 만지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습니다. 요한은 한밤중에 예수와 똑같은 사람이 예수와 비밀스런 이야기를 나누는것을 목격합니다.
'피스티스 소피아'에서는 성모 마리아와 어린예수에게 예수와 닮은 사람이 나타나 끌어안고 하나가 됩니다.
이런것들은 영지주의의 가현설(Doketismus)을 담고 있는 내용들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육체를 부정하게 여겼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육체를 입고 온것이 아니라, 영적인 존재 였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영지주의는 그 종파가 수없이 많아서 확실하게 정의하기 힘들지만, 대략적으로.....
유령과 같은 그리스도가 공생애를 행했다거나,
또는 그리스도의 영이 어떤 사람의 몸에 임해서 공생애를 했거나,
또는 그리스도의 영이 이사람 저사람의 몸에 옮겨 붙어 다니며 사역을 행했다고 믿은 겁니다.
(4) 영지주의에 대해 무지한 성혈과 성배의 저자
:성혈과 성배는 카타리파를 언급합니다. 그들이 예수의 후손을 상징하는 그 무엇(성배)를 목숨걸고 지키다가 알비 십자군에게 대학살 당했다고....
마찬가지로 영지주의에 대한 무지를 드러냅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육체를 부정하게 여겼습니다.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으신 분이라면 '영지주의'에 대해 대백과 사전이라던지, 신학자들의 글을 검색해서 읽어보세요. 영지주의자들의 외경도 포함해서 말이죠.
덧붙여서 가현설(Doketismus)같은 영지주의의 교리같은 것도 찾아서 연구해 봐요.
육체를 부정하게 여겨서, 예수 마져도 영적인 존재였다고 여겼던 사람들이 영지주의자 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예수의 후손을 상징하는 성배를 목숨을 걸고 지켜요?
그노시스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면 이런 무식한 소리를 지껄이지 못합니다.
(5) 예수 재판은 완전 구라임
: 예수가 프랑스로 망명해서 오랫동안 살았다는 내용이 영국의 재판정에서 판결 되었다.....이거 완죤히 생구라 입니다.
'성혈과 성배'란 책에는 이 재판이야기가 없습니다. '성혈과 성배'의 아류작인 '다빈치 코드'에도 없구요.
이 재판을 소개하는 언론 기사도 없습니다.
그럼 이 재판의 출처는 어디냐? 출처는 조희성의 영생교 홈페이지 입니다.
언론기사가 있다고 반박 하실지 모르겠네요. 그거....동아일보의 '성혈과 성배'란 책을 소개하는 기사와 영생교측에서 만든 생구라가 뒤섞인 사악한 날조 자료 입니다. (원래 기사는 동아일보에서 '성혈과 성배'란 책을 소개하는 기사일 뿐이에요. 재판이야기는 원래 기사에 없슴)
(6) 날구라 조직 '시온 수도회'
이번 단락은 '안티바이블 버전5.5'(최신판)의 부록에 있는 내용을 발췌해 보겠습니다.
'안티바이블 버전5.5'에서 발췌함-------------------
사실상 소니에르 신부의 이야기는 상당부분 만들어진 측면이 적지 않다. 소니에르 신부는 불법적인 미사를 통해 수입을 올렸으며 그의 재산은 생각만큼 크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소니에르 신부가 양피지 암호문이나 보물을 발견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그러나 소니에르에 대한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눈덩이 처럼 불어나기 시작했으며, 그가 죽은 후 한 음식점 주인이 관광객을 끌어 모으기 위해 '보물과 성유물' 이야기를 퍼뜨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미스테리 작가 '제라르 드 세드'의 책을 기초로 삼고 있는 '성혈과 성배'에서는 교황청이 소니에르 신부를 보호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성혈과 성배'의 작가들은 두번에 걸쳐 교황청 문서를 뒤졌으나 소니에르에 대한 자료는 찾지 못했다. 저자들은 교황청 문서에서 소니에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것은 고의적인 누락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하며 주석을 달아 놓았다. [성혈과 성배/ 자음과모음 / 이정임 외,역 / P.59]
소니에르 신부에 대한 떠돌아 다니는 소문에 성배와 메로빙 왕조를 끼워넣은 인물의 장본인은 '플랑타르'라는 사람이다.
'플랑타르'(Pierre Plantard: 1920~2000)라는 프랑스인은 당시 아네마세에 있는 샤노빈 현장에서 도안공으로 일하고 있었으며, 1950년대에 배임죄로 유죄 판결을 받고 6개월 동안 교도소 생활을 한 바 있다.
프랑스 저널리스트인 '장 뤽 쇼멜'(Jean-Luc Chaumeil)은 플랑타르의 사기행각을 조사하고 1979년과 1994년의 두번에 걸쳐 책을 출판 했으며, 1996년에 BBC 방송에 출연하여 그의 사기행각을 폭로했다.
'장 뤽 쇼멜'이 폭로하는 플랑타르의 사기행각은 다음과 같다. [장 뤽 쇼멜이 1979년에 내놓은 Le Trésor du Triangle d'or과 1994년에 La Table d'Isis ou le secret de la lumière라는 책 참조]
플랑타르는 50년대 중반에 '레네 르 샤토'에 있는 소니에르 신부의 부동산 구입자인 '노엘 코르뷔'(Noel Corbu)를 알게 된다. '노엘 코르뷔'는 바로 소니에르의 가정부 마리에게서 그의 저택을 구입했던 그 사람이다. 두 사람이 주고받았던 서신들과 두 사람이 함께 '레네 르 샤토'의 막달라 탑에서 찍은 사진은 현재 보관되어 있다.
'노엘 코르뷔'를 만난후에, 플랑타르는 시중에 떠돌아 다니던 소니에르의 소문에 자신의 상상력(양피지 암호문, 성배, 메로빙 왕조, 시온 수도회 등등...)을 덧붙인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자신의 원고를 출판할 출판업자를 만날 수 없었다.
1956년 6월에 '플랑타르'는 동료들을 모아 '시온 수도회'를 창설했다.
창설자들에 의하면 '시온'이란 이름은 예루살렘의 시온이 아니라 스위스 제네바 근교에 있는 '몽트 시온'(Mont-Sion)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저소득층이 살고 있는 지역 주민들의 주택 복지를 위한 권리와 자유권을 변호하기 위해 설립했다고 주장한다. 이 단체는 이듬해인 1957년 해체되었으나 재설립과 해체를 반복했다.
그때부터 '플랑타르'는 자신의 동료인 '필립 드 슈리제'(Philippe de Cherisey)와 함께 신부가 발견했다고 하는 양피지들을 위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50년대 무렵에 그는 파리 국립 도서관에 죽은 사람의 이름으로 이 자료들을 등록 시켰다.
비밀문서에는 메로빙 왕가의 족보, 시온 수도회의 역사와 단장의 명단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문서들에는 시온 수도회가 소니에르 신부의 보물에 대한 열쇠를 쥐고 있으며, 피에르 플랑타르가 다고베르트 왕의 직계 후손임이 언급되어 있다. 그런데 이 문헌에 언급되어 있는 많은 출판사들과 카톨릭 학회지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60년대에 플랑타르는 '제라르 드 세드'라는 작가에게 자신의 자료를 제공했다.
1967년에 '제라르 드 세드'는 플랑타르가 제공한 자료를 기초로 해서 '레네의 황금'과 그 책의 문고판인 '저주받은 보물'을 출판하게 된다. 이것은 '성혈과 성배'의 저자들도 파악했던 것이다.
"우리들은 드 세드의 저서를 낸 파리의 출판사에 어떤 사진자료를 달라고 편지를 썼다. 우리들이 요구한 사진은 그에 따라 우리들에게 우송되어 왔다. 그 사진의 뒷쪽에는 빠짐없이 '플랑타르'(Plantard)라는 도장이 찍혀 있었다. 당시 그 이름은 우리에게 아무런 뜻이 없었다. 그런데 드 세드의 저서 가운데 한권의 부록에 피에르 플랑타르라는 사람과의 인터뷰 내용이 실려 있었다. 그리고 뒤이어 피에르 플랑타르가 드 세드의 어느 저서에 직접 개입했다는 증거를 찾아 냈다. 결국 피에르 플랑타르가 우리들의 조사과정에 지배적인 인물의 하나로 등장하게 되었다." [Michael B 외 / 聖血과 聖杯 / 강혜령 역/ 행림출판, 1982 / P.89]
뒤에서 언급 하겠지만 이후에 플랑타르는 '성혈과 성배'의 저자들에게도 자료를 제공했다.
천년동안이나 유지해온 비밀조직의 단장으로써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행동이 아닌가?
'제라르 드 세드'가 내놓은 책의 작가는 표면상으로는 작가 본인으로 표시 되어 있었으나, 출판 계약서에 따르면 이익금은 세사람이 나누어 갖기로 계약이 체결 되어 있었다. 세명의 사람은 '제라르 드 세드'와 '플랑타르' 그리고 '필립 드 슈리제'였다.
그러나 1971년 이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난다. 추가적인 인세를 받지 못한 '필립 드 슈리제'는 양피지 암호문은 자신과 플랑타르가 함께 위조한 것임을 밝혔다. 이 내용은 그의 여러 책들과 편지들에서 언급하고 있다.
한편, 세사람이 책의 인세 분배 문제로 싸우고 있는동안, 그 책에 관심을 가진 BBC 다큐멘타리팀이 인터뷰를 시도했다. 그리고 책에 담겨진 내용이 1972년부터 1979년까지 세차례에 걸쳐 BBC에서 방영되자 플랑타르는 어느덧 유명 인사가 되었다.
이 내용이 방송국에서 방영되며 세간을 떠들썩 하게 만들 무렵, '장 뤽 쇼멜'(Jean-Luc Chaumeil)이라는 프랑스의 저널리스트가 플랑타르의 사기행각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고 그 내용은 1979년에 출판되게 된다.
플랑타르의 사기행각을 조사하던 '장 뤽 쇼멜'은 플랑타르가 진본이라고 주장하는 양피지 문서를 건네 받아 검토를 의뢰했다. 그 결과 양피지 문서는 1960년대 초반 이전에 기록된 것이 아님이 판명 되었다.
'장 뤽 쇼멜'은 플랑타르에게 이 문제를 추궁하자, 그는 문제의 양피지가 '필립 드 슈리제'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진본(眞本)에 토대를 둔 사본이라고 변명을 늘어 놓았다.
그 무렵 BBC의 다큐멘타리를 제작했던 '헨리 링컨'은 동료들을 불러들여 본격적으로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자 플랑타르는 '성혈과 성배'작가들에게도 자료를 제공했다. 1996년에 재출간된 '성혈과 성배 증보판'에서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국내에는 2005년에 재출판)
"'성혈과 성배'가 출간을 얼마 앞두고 있을 때 까지도, 우리는 피에르 플랑타르 드 생클레르와 셰리제 후작에게서 무작위의 단편적인 정보들을 계속 받았다." [마이클 베이전트 외 / 성혈과 성배 / 이정임 외,역 / 자음과모음 / P.607]
시온수도회의 단장중에 죽은 사람이 끼워져 있었다는 곤란한 문제에 직면한 작가들에게 플랑타르가 정보를 제공해 준적도 있다고 한다.
"우리는 당시에는 여기에 대한 답을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셰리제 후작이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이 문제에 대해 그에게 문의해 볼 기회도 없었다. 그런데 플랑타르가 우리에게 알려준 첨부 사항이 이를 해명해주고 있었다. 이 첨부 사항에 따르면 시온 수도회 내부에서 일종의 분열이 있었다고 한다." [마이클 베이전트 외 / 성혈과 성배 / 이정임 외,역 / 자음과모음 / P.595]
천년동안이나 비밀을 엄수했던 비밀조직의 단장 치고는 플랑타르의 행동은 상식을 벗어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어째서 비밀조직의 정보를 일부러 흘리는 것일까? 이것을 과연 천년동안 이나 비밀리에 운영되던 비밀조직이라고 말할수 있는가?
'헨리 링컨'이 프랑스에 와서 소니에르 신부 사건을 취재할 무렵에, 이미 1979년에 플랑타르의 사기행각을 폭로한 책을 내놓았던 '장 뤽 쇼멜'은 헨리 링컨에게 그 모든 사건이 사기라고 설명했다. '장 뤽 쇼멜'은 플랑타르의 유죄 판결과 양피지 위조 사건을 알려 주었으나, 헨리 링컨은 기어코 1982년에 '성혈과 성배'를 출판하게 된다.
'성혈과 성배'가 발간되기 한 달 전부터 출판사 측에서는 런던의 모든 버스 문에다 "예수에 대한 진정한 역사"라는 제목의 광고 포스트를 붙이면서 적극적인 마케팅을 시작했다.
'성혈과 성배'가 발간되자, 더욱 유명해진 플랑타르는 주변인에게 자신이 679년 다고베르트 2세의 피살로 사라졌던 메로빙 왕조의 후손이라고 공공연하게 떠벌이고 다녔다고 한다.
1984년에 시온 수도회에서 사임했던 플랑타르는 1989년에 시온 수도회의 새로운 '그랜드 마스터'(단장)의 명단을 작성한다. 그런데 재정 스캔들에 휘말린 상태에서 심장병으로 사망한 '로제 파트리스 플라'(Roger-Patrice Pelat)라는 미테랑의 오랜 친구를 단장의 목록에 포함시켰다.
1993년, 플라의 사망 사건을 조사하던 예심 판사 '티에리 장 피에르'(Tierry Jean-Pierre)에 의해 플랑타르의 가택수색이 실시되었고, 그의 집에서 플랑타르가 프랑스의 진정한 왕이라고 기록한 문서를 발견했다. 심문 끝에 플랑타르는 그 문서가 사기임을 인정했으며 이로 인해 엄중한 경고를 받았다.
그는 3번에 걸쳐 수감 생활을 한 적이 있으며 판결과 관련된 서류는 오늘날 관련 기관에서 공람할 수 있다.
'성혈과 성배'가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질 즈음, 1996년 8월20일자 런던 타임스 1개 지면에 또 하나의 책 광고가 실렸다.
'신의 무덤'이라는 책에서 '리처드 앤드류'와 '폴 셀렌버거'라는 작가는 소니에르 신부의 양피지를 해독하여 '레네 르 샤토'에서 수Km 떨어진 '몽 까르두'라는 야산에 예수의 무덤이 있다고 주장했다! 같은 해에 부족한 내용을 보충한 '성혈과 성배 증보판'이 재발매 되었다.
그러자 1996년에 BBC 방송에서는 '어떤 미스테리의 역사'(The History of a Mystery)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게 된다. 방송에 출연한 '장 뤽 쇼멜'은 문제의 발단이 된 원본 양피지들을 공개했다. 그 양피지들은 고대로 부터 전해내려온 고문서가 아니라 현대에 제작된 것이었다. '장 뤽 쇼멜'은 '플랑타르'의 사기행각을 낱낱이 공개했으며, 방송에 출연한 '플랑타르'는 모든 이야기가 허구이며 거짓이라고 실토했다. 이로써 소니에르 사건을 다시 다룬 BBC는 70년대에 방영했던 이전 방영물들에 대한 속죄를 한 셈이다.
'플랑타르'는 2000년에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을 무렵인 2003년, 이번에는 그 내용을 소설형식으로 재구성한 '다빈치 코드'가 등장해서 또 다시 돌풍을 일으켰다.
플랑타르의 사기행각에 관련된 연구로는 '장 뤽 쇼멜'(Jean-Luc Chaumeil)의 조사도 훌륭하지만, 이후에 등장한 '에슈구앵'과 '르누아르'의 책에서도 잘 정리되어 있다. [Marie-France Etchegoin et Frédéric Lenoir, Code da Vinci: L'Enquête, Paris, Robert Laffont, 2004참조]
또한, '리차드 어베니스'(Richard Abanes)의 '다빈치 코드에 숨은 거짓과 진실'(The Truth behind the Da Vinci Code)이라는 책에서도 확인 할수 있다.
플랑타르와 시온 수도회의 목적이 무엇인지 애매모호하다.
프랑스에 다시 메로빙 왕조를 일으키는것이 그들의 야망 이었는지, 그렇지 않다면 예수의 후손이 전세계를 영적통치하는 것이 그들의 야망 이었는지 애매모호하다.
그들이 품었던 야망 자체가 황당하기 그지 없는 망상임이 분명하기는 하지만 필자는 한가지를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그 야망이 이루어 질때까지 절대 비밀을 엄수하고 계획을 실행에 옮길것이지, 어째서 이 엄청난 비밀을 일부러 노출시켰는가? '플랑타르'가 '제라르 드 세드'라는 작가에게 자료를 제공하고, 책의 인세 문제로 싸웠다는것을 상기하도록 하라. 책과 관련된 이익금을 분배받는 조건으로 그 엄청난 비밀(?)을 3류 미스테리 작가에게 제공 했다는것이 상식적으로 납득되는 일인가? 게다가 플랑타르는 '성혈과 성배' 작가들에게도 자료를 제공했다.
비밀조직의 단장이라면 책이 출판 되지 못하게 막아야 할것이 아닌가? 플랑타르는 유명해지고 싶어서 안달이 난 망상가가 아니겠는가? 이러고도 시온 수도회가 천년동안 비밀리에 운영되던 비밀조직이라고 말할수 있는가?
저는 프리메이슨에 대해 잘 모르지만 (관심도 없고)...
다만 '환상의 악플'님이 6월 13일에 올리신 "프리메이슨? ㅋㅋㅋ"라는 제목의 글이 가장 통쾌하고 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
'환상의 악플'님 말처럼, 프리메이슨은 음모론 카페에서 가서 하시라고 말하고 싶네요.
저는 프리메이슨에 대해 관심도 없고, 아는바도 거의 없지만,
바이블과 신학적인 분야에서는 참종교님을 훨씬 압도한다고 스스로 여기기에(ㅋㅋㅋ) 이 분야에 한정해서 님께 대답 드리죠.
(1) 기독교는 조로아스터교의 표절이다?
:사실입니다.
조로아스터교는 유대교, 이슬람, 기독교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종교입니다.
(대략적으로 세계종말과 신세계의 도래, 불의심판, 구세주의 탄생, 사후세계, 천사, 묵시문학, 야만적인 동물 희생제사 철폐, 육과 영의 이원론..... 등등의 막대한 영향을 끼쳤죠)
꽉막힌 목사가 아니라면 신학자들조차 인정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대백과 사전을 봐도 그렇다고 나올 정도니까.
J.B Noss의 '세계종교사'(윤이흠 역)의 책을 읽어보시도록 권장합니다.
(2) 예수에게 아내가 있었다?
: 영지주의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주장입니다.
성혈과 성배류의 책에서 주장했고, 다시 이 책의 주장을 받아들인 '이리유카바 최'의 책에서는 '나그하마디 문서'에 포함된 마리아 복음서등을 예로들며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부인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합니다.
그 외경에서는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가 키스를 하고, 두 사람 사이에는 알듯 모를듯한 친밀감이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죠.
이런 자료를 사용하면서 예수의 결혼을 주장하는 일부 안티도 있습니다. (사실 전부터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 했는데, 괜히 안티사이에 분란을 일으키기도 싫고, 귀차니즘의 압박으로 보고도 못본체 했습니다.)
그러나 어처구니 없게도 '성혈과 성배'에서는 '마가의 비밀복음'도 함께 언급하고 있습니다.
왜 어처구니 없냐고요?
'마가의 비밀복음'에서는 예수와 나자로가 동성연애적인 행각을 벌이거든요?
한밤중에 나체에 아마포만 걸치고 나타난 나자로가 예수의 침실로 와서는....밤새도록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ㅋㅋㅋ
그럼 예수는 여자와 결혼하고, 남자와 동성연애도 벌인.....희대의 양성연애자 겠군요.^0^
제4의 복음서(흔히 요한복음이라고 부릅니다)에서도 예수는 '사랑하는 제자'를 여러번 품에 안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는 4복음서의 저자로 추정되며, 초대교회의 전승에는 '사랑하는 제자'가 사도 요한으로 알려졌기에 4복음서가 '요한복음'으로 불려진 겁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제자'는 나자로일 가능성이 더 큽니다.
나자로가 병들었을때 다른제자가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라고 말하고, 나자로의 무덤에 도달한 예수는 눈물까지 흘립니다.
어잿든.....남자가 남자를 품에 안다니.....예수는 동성연애자 일까요?
영지주의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이렇게 받아들일수 밖에 없습니다.
'성혈과 성배'의 저자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나자로는 예수의 가족을 빼돌리고 그들을 보호할 중요한 책무를 맡았고,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아내였다고....
입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으로 외경을 이용해 먹는거죠.
'마리아 복음서'와 '마가의 비밀복음'을 동시에 자료로써 사용한다면...차라리....예수는 여자와 결혼하고, 남자와 동성연애도 벌인.....희대의 양성연애자로 묘사하는게 더 합당한게 아니겠습니까? ^0^
'마리아 복음서'와 '마가의 비밀복음'을 함께 자료로 사용하면서, 어째서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연인(아내)이었다고 주장하면서, 나자로도 예수의 연인(애인) 이었다고 주장하지 않는 겁니까?
당시 유대사회에서 동성연애는 용납하지 못할일이었지만...헬레니즘 문화권에서는 그리 이상할일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잘알고 있는 소크라테스나 플라톤도 그러했다고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생각되겠지만, 그리스에서는 스승과 어린제자(남자)간에 동성연애적인 썸씽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고 하죠.
복음서는 유대땅에서 기록된것이 아닙니다. 복음서는 헬라어로 기록 되었습니다.
복음서의 저자는 당신의 유대사회에 대해 무지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원하시면 나중에 따로 말씀드리죠.)
이는 복음서가 헬라문화권에서 헬라어로 기록 되었고, 담겨있는 사상조차도 헬라적인 사고관이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서의 구약 인용은 죄다 엉터리 입니다.)
(3) 예수의 십자가 처형 오류설
: 영지주의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주장입니다.
성혈과 성배류의 책에서 주장했고, 다시 이 책의 주장을 받아들인 '이리유카바 최'의 책에서는 예수대신 다른 사람이 희생되었다고 주장합니다.
마태,마가,누가복음에서 구레네의 시몬이 '강제로'(억지로) 예수의 십자가를 끌고 갔다고 나옵니다.
한술 더떠서 마태복음 27장 31절 이후에서는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이 누구인지 애매모호합니다.
구레네의 시몬이 십자가에 매달린것인지....아니면.....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것인지 모호하게 기록한거죠.
당연히 현대에 번역된 성경에서는 "그를 십자가에 매달았다"를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았다"로 변개해서 번역했습니다.
(주석성경이 있으신 분들은 찾아 보세요. 성경을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인간들이 지들 맘대로 성경을 변개해서 번역하고....잘들 논다~)
또한, 마태복음 27장 16~17절에서는 '예수 바라바'가 등장 합니다.
당연히 현대에 번역된 성경에서는 '예수 바라바'를 그냥 '바라바'로 번역했습니다.
(성경을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인간들이 지들 맘대로 성경을 변개해서 번역하고....잘들 논다~)
그러나 다른 성경들이 모두 고의적인 오역을 한가운데.....오로지 공동번역판만이 비교적 원문에 가깝게 번역했군요.
공동번역판의 구절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마침 그 때에 (예수) 바라빠라는 이름난 죄수가 있었다. 빌라도는 모여든 군중에게 '누구를 놓아주면 좋겠느냐? 바라빠라는 예수냐? 그리스도라는 예수냐?' 하고 물었다." [마태오의 복음서 27장 16~17절 / 공동번역판]
성혈과 성배의 저자는 주장합니다. 예수대신 구레네의 시몬이 십자가에 매달렸고, 바라바는 예수의 아들이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영지주의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주장입니다.
외경에 해당되는, '위대한 세트 신의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십자가를 짊어졌던 시몬과 가시 면류관을 쓴 또 다른 시몬을 언급하고 있으며, 예수는 높은 곳에서 그들을 바라보며 비웃습니다.
'베드로 계시록'에는 예수와 닮은 자가 나무에 매달려 기뻐하며 웃습니다.
'요한행전'에는 나무(십자가)에 매달렸으나 매달리지 않은 예수, 아무런 고통도 받지 않는 예수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요한이 예수의 몸을 만지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습니다. 요한은 한밤중에 예수와 똑같은 사람이 예수와 비밀스런 이야기를 나누는것을 목격합니다.
'피스티스 소피아'에서는 성모 마리아와 어린예수에게 예수와 닮은 사람이 나타나 끌어안고 하나가 됩니다.
이런것들은 영지주의의 가현설(Doketismus)을 담고 있는 내용들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육체를 부정하게 여겼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육체를 입고 온것이 아니라, 영적인 존재 였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영지주의는 그 종파가 수없이 많아서 확실하게 정의하기 힘들지만, 대략적으로.....
유령과 같은 그리스도가 공생애를 행했다거나,
또는 그리스도의 영이 어떤 사람의 몸에 임해서 공생애를 했거나,
또는 그리스도의 영이 이사람 저사람의 몸에 옮겨 붙어 다니며 사역을 행했다고 믿은 겁니다.
(4) 영지주의에 대해 무지한 성혈과 성배의 저자
:성혈과 성배는 카타리파를 언급합니다. 그들이 예수의 후손을 상징하는 그 무엇(성배)를 목숨걸고 지키다가 알비 십자군에게 대학살 당했다고....
마찬가지로 영지주의에 대한 무지를 드러냅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육체를 부정하게 여겼습니다.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으신 분이라면 '영지주의'에 대해 대백과 사전이라던지, 신학자들의 글을 검색해서 읽어보세요. 영지주의자들의 외경도 포함해서 말이죠.
덧붙여서 가현설(Doketismus)같은 영지주의의 교리같은 것도 찾아서 연구해 봐요.
육체를 부정하게 여겨서, 예수 마져도 영적인 존재였다고 여겼던 사람들이 영지주의자 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예수의 후손을 상징하는 성배를 목숨을 걸고 지켜요?
그노시스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면 이런 무식한 소리를 지껄이지 못합니다.
(5) 예수 재판은 완전 구라임
: 예수가 프랑스로 망명해서 오랫동안 살았다는 내용이 영국의 재판정에서 판결 되었다.....이거 완죤히 생구라 입니다.
'성혈과 성배'란 책에는 이 재판이야기가 없습니다. '성혈과 성배'의 아류작인 '다빈치 코드'에도 없구요.
이 재판을 소개하는 언론 기사도 없습니다.
그럼 이 재판의 출처는 어디냐? 출처는 조희성의 영생교 홈페이지 입니다.
언론기사가 있다고 반박 하실지 모르겠네요. 그거....동아일보의 '성혈과 성배'란 책을 소개하는 기사와 영생교측에서 만든 생구라가 뒤섞인 사악한 날조 자료 입니다. (원래 기사는 동아일보에서 '성혈과 성배'란 책을 소개하는 기사일 뿐이에요. 재판이야기는 원래 기사에 없슴)
(6) 날구라 조직 '시온 수도회'
이번 단락은 '안티바이블 버전5.5'(최신판)의 부록에 있는 내용을 발췌해 보겠습니다.
'안티바이블 버전5.5'에서 발췌함-------------------
사실상 소니에르 신부의 이야기는 상당부분 만들어진 측면이 적지 않다. 소니에르 신부는 불법적인 미사를 통해 수입을 올렸으며 그의 재산은 생각만큼 크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소니에르 신부가 양피지 암호문이나 보물을 발견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그러나 소니에르에 대한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눈덩이 처럼 불어나기 시작했으며, 그가 죽은 후 한 음식점 주인이 관광객을 끌어 모으기 위해 '보물과 성유물' 이야기를 퍼뜨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미스테리 작가 '제라르 드 세드'의 책을 기초로 삼고 있는 '성혈과 성배'에서는 교황청이 소니에르 신부를 보호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성혈과 성배'의 작가들은 두번에 걸쳐 교황청 문서를 뒤졌으나 소니에르에 대한 자료는 찾지 못했다. 저자들은 교황청 문서에서 소니에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것은 고의적인 누락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하며 주석을 달아 놓았다. [성혈과 성배/ 자음과모음 / 이정임 외,역 / P.59]
소니에르 신부에 대한 떠돌아 다니는 소문에 성배와 메로빙 왕조를 끼워넣은 인물의 장본인은 '플랑타르'라는 사람이다.
'플랑타르'(Pierre Plantard: 1920~2000)라는 프랑스인은 당시 아네마세에 있는 샤노빈 현장에서 도안공으로 일하고 있었으며, 1950년대에 배임죄로 유죄 판결을 받고 6개월 동안 교도소 생활을 한 바 있다.
프랑스 저널리스트인 '장 뤽 쇼멜'(Jean-Luc Chaumeil)은 플랑타르의 사기행각을 조사하고 1979년과 1994년의 두번에 걸쳐 책을 출판 했으며, 1996년에 BBC 방송에 출연하여 그의 사기행각을 폭로했다.
'장 뤽 쇼멜'이 폭로하는 플랑타르의 사기행각은 다음과 같다. [장 뤽 쇼멜이 1979년에 내놓은 Le Trésor du Triangle d'or과 1994년에 La Table d'Isis ou le secret de la lumière라는 책 참조]
플랑타르는 50년대 중반에 '레네 르 샤토'에 있는 소니에르 신부의 부동산 구입자인 '노엘 코르뷔'(Noel Corbu)를 알게 된다. '노엘 코르뷔'는 바로 소니에르의 가정부 마리에게서 그의 저택을 구입했던 그 사람이다. 두 사람이 주고받았던 서신들과 두 사람이 함께 '레네 르 샤토'의 막달라 탑에서 찍은 사진은 현재 보관되어 있다.
'노엘 코르뷔'를 만난후에, 플랑타르는 시중에 떠돌아 다니던 소니에르의 소문에 자신의 상상력(양피지 암호문, 성배, 메로빙 왕조, 시온 수도회 등등...)을 덧붙인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자신의 원고를 출판할 출판업자를 만날 수 없었다.
1956년 6월에 '플랑타르'는 동료들을 모아 '시온 수도회'를 창설했다.
창설자들에 의하면 '시온'이란 이름은 예루살렘의 시온이 아니라 스위스 제네바 근교에 있는 '몽트 시온'(Mont-Sion)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저소득층이 살고 있는 지역 주민들의 주택 복지를 위한 권리와 자유권을 변호하기 위해 설립했다고 주장한다. 이 단체는 이듬해인 1957년 해체되었으나 재설립과 해체를 반복했다.
그때부터 '플랑타르'는 자신의 동료인 '필립 드 슈리제'(Philippe de Cherisey)와 함께 신부가 발견했다고 하는 양피지들을 위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50년대 무렵에 그는 파리 국립 도서관에 죽은 사람의 이름으로 이 자료들을 등록 시켰다.
비밀문서에는 메로빙 왕가의 족보, 시온 수도회의 역사와 단장의 명단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문서들에는 시온 수도회가 소니에르 신부의 보물에 대한 열쇠를 쥐고 있으며, 피에르 플랑타르가 다고베르트 왕의 직계 후손임이 언급되어 있다. 그런데 이 문헌에 언급되어 있는 많은 출판사들과 카톨릭 학회지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60년대에 플랑타르는 '제라르 드 세드'라는 작가에게 자신의 자료를 제공했다.
1967년에 '제라르 드 세드'는 플랑타르가 제공한 자료를 기초로 해서 '레네의 황금'과 그 책의 문고판인 '저주받은 보물'을 출판하게 된다. 이것은 '성혈과 성배'의 저자들도 파악했던 것이다.
"우리들은 드 세드의 저서를 낸 파리의 출판사에 어떤 사진자료를 달라고 편지를 썼다. 우리들이 요구한 사진은 그에 따라 우리들에게 우송되어 왔다. 그 사진의 뒷쪽에는 빠짐없이 '플랑타르'(Plantard)라는 도장이 찍혀 있었다. 당시 그 이름은 우리에게 아무런 뜻이 없었다. 그런데 드 세드의 저서 가운데 한권의 부록에 피에르 플랑타르라는 사람과의 인터뷰 내용이 실려 있었다. 그리고 뒤이어 피에르 플랑타르가 드 세드의 어느 저서에 직접 개입했다는 증거를 찾아 냈다. 결국 피에르 플랑타르가 우리들의 조사과정에 지배적인 인물의 하나로 등장하게 되었다." [Michael B 외 / 聖血과 聖杯 / 강혜령 역/ 행림출판, 1982 / P.89]
뒤에서 언급 하겠지만 이후에 플랑타르는 '성혈과 성배'의 저자들에게도 자료를 제공했다.
천년동안이나 유지해온 비밀조직의 단장으로써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행동이 아닌가?
'제라르 드 세드'가 내놓은 책의 작가는 표면상으로는 작가 본인으로 표시 되어 있었으나, 출판 계약서에 따르면 이익금은 세사람이 나누어 갖기로 계약이 체결 되어 있었다. 세명의 사람은 '제라르 드 세드'와 '플랑타르' 그리고 '필립 드 슈리제'였다.
그러나 1971년 이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난다. 추가적인 인세를 받지 못한 '필립 드 슈리제'는 양피지 암호문은 자신과 플랑타르가 함께 위조한 것임을 밝혔다. 이 내용은 그의 여러 책들과 편지들에서 언급하고 있다.
한편, 세사람이 책의 인세 분배 문제로 싸우고 있는동안, 그 책에 관심을 가진 BBC 다큐멘타리팀이 인터뷰를 시도했다. 그리고 책에 담겨진 내용이 1972년부터 1979년까지 세차례에 걸쳐 BBC에서 방영되자 플랑타르는 어느덧 유명 인사가 되었다.
이 내용이 방송국에서 방영되며 세간을 떠들썩 하게 만들 무렵, '장 뤽 쇼멜'(Jean-Luc Chaumeil)이라는 프랑스의 저널리스트가 플랑타르의 사기행각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고 그 내용은 1979년에 출판되게 된다.
플랑타르의 사기행각을 조사하던 '장 뤽 쇼멜'은 플랑타르가 진본이라고 주장하는 양피지 문서를 건네 받아 검토를 의뢰했다. 그 결과 양피지 문서는 1960년대 초반 이전에 기록된 것이 아님이 판명 되었다.
'장 뤽 쇼멜'은 플랑타르에게 이 문제를 추궁하자, 그는 문제의 양피지가 '필립 드 슈리제'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진본(眞本)에 토대를 둔 사본이라고 변명을 늘어 놓았다.
그 무렵 BBC의 다큐멘타리를 제작했던 '헨리 링컨'은 동료들을 불러들여 본격적으로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자 플랑타르는 '성혈과 성배'작가들에게도 자료를 제공했다. 1996년에 재출간된 '성혈과 성배 증보판'에서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국내에는 2005년에 재출판)
"'성혈과 성배'가 출간을 얼마 앞두고 있을 때 까지도, 우리는 피에르 플랑타르 드 생클레르와 셰리제 후작에게서 무작위의 단편적인 정보들을 계속 받았다." [마이클 베이전트 외 / 성혈과 성배 / 이정임 외,역 / 자음과모음 / P.607]
시온수도회의 단장중에 죽은 사람이 끼워져 있었다는 곤란한 문제에 직면한 작가들에게 플랑타르가 정보를 제공해 준적도 있다고 한다.
"우리는 당시에는 여기에 대한 답을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셰리제 후작이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이 문제에 대해 그에게 문의해 볼 기회도 없었다. 그런데 플랑타르가 우리에게 알려준 첨부 사항이 이를 해명해주고 있었다. 이 첨부 사항에 따르면 시온 수도회 내부에서 일종의 분열이 있었다고 한다." [마이클 베이전트 외 / 성혈과 성배 / 이정임 외,역 / 자음과모음 / P.595]
천년동안이나 비밀을 엄수했던 비밀조직의 단장 치고는 플랑타르의 행동은 상식을 벗어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어째서 비밀조직의 정보를 일부러 흘리는 것일까? 이것을 과연 천년동안 이나 비밀리에 운영되던 비밀조직이라고 말할수 있는가?
'헨리 링컨'이 프랑스에 와서 소니에르 신부 사건을 취재할 무렵에, 이미 1979년에 플랑타르의 사기행각을 폭로한 책을 내놓았던 '장 뤽 쇼멜'은 헨리 링컨에게 그 모든 사건이 사기라고 설명했다. '장 뤽 쇼멜'은 플랑타르의 유죄 판결과 양피지 위조 사건을 알려 주었으나, 헨리 링컨은 기어코 1982년에 '성혈과 성배'를 출판하게 된다.
'성혈과 성배'가 발간되기 한 달 전부터 출판사 측에서는 런던의 모든 버스 문에다 "예수에 대한 진정한 역사"라는 제목의 광고 포스트를 붙이면서 적극적인 마케팅을 시작했다.
'성혈과 성배'가 발간되자, 더욱 유명해진 플랑타르는 주변인에게 자신이 679년 다고베르트 2세의 피살로 사라졌던 메로빙 왕조의 후손이라고 공공연하게 떠벌이고 다녔다고 한다.
1984년에 시온 수도회에서 사임했던 플랑타르는 1989년에 시온 수도회의 새로운 '그랜드 마스터'(단장)의 명단을 작성한다. 그런데 재정 스캔들에 휘말린 상태에서 심장병으로 사망한 '로제 파트리스 플라'(Roger-Patrice Pelat)라는 미테랑의 오랜 친구를 단장의 목록에 포함시켰다.
1993년, 플라의 사망 사건을 조사하던 예심 판사 '티에리 장 피에르'(Tierry Jean-Pierre)에 의해 플랑타르의 가택수색이 실시되었고, 그의 집에서 플랑타르가 프랑스의 진정한 왕이라고 기록한 문서를 발견했다. 심문 끝에 플랑타르는 그 문서가 사기임을 인정했으며 이로 인해 엄중한 경고를 받았다.
그는 3번에 걸쳐 수감 생활을 한 적이 있으며 판결과 관련된 서류는 오늘날 관련 기관에서 공람할 수 있다.
'성혈과 성배'가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질 즈음, 1996년 8월20일자 런던 타임스 1개 지면에 또 하나의 책 광고가 실렸다.
'신의 무덤'이라는 책에서 '리처드 앤드류'와 '폴 셀렌버거'라는 작가는 소니에르 신부의 양피지를 해독하여 '레네 르 샤토'에서 수Km 떨어진 '몽 까르두'라는 야산에 예수의 무덤이 있다고 주장했다! 같은 해에 부족한 내용을 보충한 '성혈과 성배 증보판'이 재발매 되었다.
그러자 1996년에 BBC 방송에서는 '어떤 미스테리의 역사'(The History of a Mystery)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게 된다. 방송에 출연한 '장 뤽 쇼멜'은 문제의 발단이 된 원본 양피지들을 공개했다. 그 양피지들은 고대로 부터 전해내려온 고문서가 아니라 현대에 제작된 것이었다. '장 뤽 쇼멜'은 '플랑타르'의 사기행각을 낱낱이 공개했으며, 방송에 출연한 '플랑타르'는 모든 이야기가 허구이며 거짓이라고 실토했다. 이로써 소니에르 사건을 다시 다룬 BBC는 70년대에 방영했던 이전 방영물들에 대한 속죄를 한 셈이다.
'플랑타르'는 2000년에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을 무렵인 2003년, 이번에는 그 내용을 소설형식으로 재구성한 '다빈치 코드'가 등장해서 또 다시 돌풍을 일으켰다.
플랑타르의 사기행각에 관련된 연구로는 '장 뤽 쇼멜'(Jean-Luc Chaumeil)의 조사도 훌륭하지만, 이후에 등장한 '에슈구앵'과 '르누아르'의 책에서도 잘 정리되어 있다. [Marie-France Etchegoin et Frédéric Lenoir, Code da Vinci: L'Enquête, Paris, Robert Laffont, 2004참조]
또한, '리차드 어베니스'(Richard Abanes)의 '다빈치 코드에 숨은 거짓과 진실'(The Truth behind the Da Vinci Code)이라는 책에서도 확인 할수 있다.
플랑타르와 시온 수도회의 목적이 무엇인지 애매모호하다.
프랑스에 다시 메로빙 왕조를 일으키는것이 그들의 야망 이었는지, 그렇지 않다면 예수의 후손이 전세계를 영적통치하는 것이 그들의 야망 이었는지 애매모호하다.
그들이 품었던 야망 자체가 황당하기 그지 없는 망상임이 분명하기는 하지만 필자는 한가지를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그 야망이 이루어 질때까지 절대 비밀을 엄수하고 계획을 실행에 옮길것이지, 어째서 이 엄청난 비밀을 일부러 노출시켰는가? '플랑타르'가 '제라르 드 세드'라는 작가에게 자료를 제공하고, 책의 인세 문제로 싸웠다는것을 상기하도록 하라. 책과 관련된 이익금을 분배받는 조건으로 그 엄청난 비밀(?)을 3류 미스테리 작가에게 제공 했다는것이 상식적으로 납득되는 일인가? 게다가 플랑타르는 '성혈과 성배' 작가들에게도 자료를 제공했다.
비밀조직의 단장이라면 책이 출판 되지 못하게 막아야 할것이 아닌가? 플랑타르는 유명해지고 싶어서 안달이 난 망상가가 아니겠는가? 이러고도 시온 수도회가 천년동안 비밀리에 운영되던 비밀조직이라고 말할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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