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한미르작성시간05.01.25
내 신앙은 아마 글 쓴 이의 신앙과 차이가 있을 겁니다. 차이가 있어야 당연하고요. 저는 자신의 신앙관만 절대화하지 않으면 그 어떤 신앙인도 상관이 없습니다. 저의 신앙 역시 절대적일 수는 없고, 절대적인 신앙을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한 가지 대안으로서만 의미가 있을 뿐입니다.
작성자自由人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05.01.25
저는 나쁘게 말하라는 게 아니라... 님의 신앙관의 관점에서 볼 때에 윗글을 적은 사람이 가지는 신앙관의 문제점이 뭔가를 이야기 해 달라는 겁니다. 제가 읽고 느낀 부분 중의 하나는 윗글을 적은 사람이 바라보는 바이블과 님이 바라보는 것에 약간의 차이가 보이거든요. 뭐 이런 부분에 대하여...
작성자한미르작성시간05.01.25
솔직히 바이블은 유일신 하느님을 믿는 신앙을 전하고자 하는 관점 이외에 저는 별로 주목하는 것이 없습니다. 바이블이 전하는 신앙관을 갖고서 내 신앙의 토대를 삼을 것은 삼고, 버릴 것은 버리고, 그런 식입니다. 신약 성서에 들어오면 예수의 부활을 전하려는 관점에 주목하여 처음 사람들은 어떻게
작성자한미르작성시간05.01.25
예수의 부활을 믿게 되었나 생각하면서 읽습니다. 그러다 보면, 명백히 거짓이라고 판명이 되는 부분도 있고, 신화화의 정도가 심하다고 생각이 되는 부분도 있고.. 그리고 저의 경우는 바이블이나 빠스칼의 빵세나, 기타 다른 신학서적이나 그 권위는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바이블에 특별한 권위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작성자한미르작성시간05.01.25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부활의 증인임을 자처한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또한 바울의 회심 고백에 많은 공감을 하는 사람입니다. 기독교의 부활신앙은 단순한 신앙 체험이 아니라, 전 인격을 변화시킬 만한 아주 강력한 종교적인 체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로서는 도저히 거역할 수 없었다.
작성자한미르작성시간05.01.25
그들은 예수의 부활을 전하는 증인으로 자임하면서 확신에 넘쳐서 예수의 부활을 전하였다. 예수의 부활을 하느님께서 주신 깨달음으로 받아들였다. 그 깨달음을 전한 하느님의 영, 성령, 그것을 부활하신 예수의 영과 동일시하였다. 하느님의 영 가운데 그리스도의 영이 함께 한다고 믿었다.
작성자自由人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05.01.26
윗글을 쓴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ㅋㅋㅋ... 기독교 관점에서 본다면 상당히 위험한 신앙관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요? 불교 냄새도 약간 나고요... 기독교가 깨달음의 종교도 아닌데, 바이블을 그 깨달음의 길잡이로 삼고 있는 듯이 풍기는 뉘앙스하며... 어쩌면 한미르님보다 더 진보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일 수도
작성자自由人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05.01.26
있고... 일부 생각엔 동의 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제가 싫어하는 사고를 가진 듯이 보이거든요. 제일 맘에 안드는 부분이 바이블 안에 진리가 있기에 바이블이 아름답다고 한 말... 정말 글 쓴 사람은 바이블을 제대로 일고 하는 소리인지도 궁급하고...ㅋㅋㅋ
작성자自由人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05.01.26
한미르님... 님의 말 중에서 제일 헷갈리는 부분 중의 하나가 예수의 육체적 부활입니다. 얼핏 관념적인 듯이 보이기도 하다가 어떤 때는 정말로 육체적 부활을 주장하기도 하고... 제가 보기에는 님이 이것에 대한 명확한 정리가 안된 듯이 보입니다. 언제쯤이면 정리가 될 것 같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