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천항로
(미안하지만, 또 만화다.)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또는 소개된 삼국지연의의 번역본은 많다. 정확하게 세 보지 않았지만 황석영/이문열/장정일/김홍신 등이 해석한 번역본부터, 초딩때 읽은 저자를 기억할 수 없는 1권~3권짜리 삼국지들, 아련하게 기억나는 animation들, 故 고우영 화백의 삼국지 등 수 많은 번역/평역 들이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한말의 제웅할거를 연상하게 할 정도로 난무한다.
그 중, 창천항로는 “만화”라는 껍데기를 쓰고 있지만, 나름 진중하게 story를 풀어나가는 수작이다. 만화라는 장르가 독자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한계가 있기도 하지만, 역으로 독자의 상상력을 쉽게 이끌어내는 순기능이 있는 만큼, 삼국지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있으며, 삼국지를 많이 읽어본 사람에게는 삼국지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관점을 접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는, 흡입력이 강한 작품이다. 보통의 삼국지는 삼국 정립 전의 전반부의 주인공으로 조조를, 정립 이후의 후반부의 주인공으로 제갈량을 casting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반면에, 이 작품에서는 오로지 “조조”만을 주인공을 삼아 창천이 가는 길을 풀어 나가고 있다.
“창천”이란 말은 말 그대로 “푸른 하늘”이며, 기존 사회의 질서인 제국을 가리키는, 후한 말에 일어났던 황건적이 내세웠던 “황천”에 대응하는 개념이다. 황건적은 “황천”을 “민심”과 동일한 개념으로, 황족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닌 인민들이 지배하는 새로운 세계와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하였고, 후한말의 황제/제국/공권력을 의미하는 기존의 푸른 하늘(창천)은 이미 죽었으며, 새로운 황천의 시대가 일어난다는 모토를 내세웠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경험이 없었던 장각 브라더스 역시 민란의 중반 이후엔 스스로를 황제와 같은 위치-비록 “교주”라는 이름을 쓰긴 했지만-에 두었기 때문에 황건적이 한나라를 장악했더라도, 실제 인민이 주인인 세상으로 바뀌었을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웠지 않을까 생각된다.)30여권으로 이루어진 만화는 조조가 제후/제왕(창천)의 길(항로)을 가면서 스스로 성장하고, 무너져 가는 제국을 일으켜 가능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낸다.
1960년대 이후에 평역/번역되는 삼국지 번역본들의 특징이, 전통적인 인물 해석(조조는 간웅이며, 유비는 성군 등..)에서 벗어나 인물에 대한 나름 현실적인 적인 재평가를 내리기 시작하는데, 우리 나라의 번역본 중 이와 같은 특징이 가장 먼저 나타나는 작품이 고우영의 만화 삼국지이다. (이문열 등이 번역한 것은 최소한 10년 이상 나중의 일이다.) 창천항로가 고우영 삼국지와 대비되는 점은, 고우영은 조조는 영민한 인물로, 유비를 많이 모자란 인물로 그리는 반면에, 본 만화는 조조를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남자”로 그려내는 동시에 유비는 유비 나름대로의 큰 인물로 그려지고, 삼국이 분할된 이후엔 조조의 대척점에 설만한 “그릇(이 그릇이란 말이 이 만화에서 참 많이도 나온다.)”으로 표현된다는 점이다. (안타까운 점은 유비를 조조만큼 매력적인 인물로 묘사하는 것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다.)
개인적으로 이 만화에서 가장 재미있게 그려지는 캐릭터는 제갈량이지 않을까 싶다. 세상의 모든 이치를 꿰뚫어 보고, 동오의 수많은 신하들을 담판으로 굴복시키며, 동남풍의 이치를 깨우쳐 적벽의 전쟁에서 바람를 이용하는 제갈량은 이 만화에 없다. 단지, 색정광이며, 이국적인 동료들은 가지고 기존의 학문과는 다른 학문을 익힌 준수하고 신비로운 청년이 조조를 만나면서 법가의 풍모를 가지게 되는 것을 지켜볼 수 있을 뿐이다. 전장의 모든 이로움과 해로움을 파악하여 연전에 연승을 거듭하다가 과로로 요절하는 이로는 촉의 신하였다가, 유비를 만난 후로 자신의 뜻을 모두 펼치는 법정이 대신하고 있다는 것이 재밌다.
10년 정도의 연재 끝에 이 만화는 완결되었다. 연휴가 적인 솔로부대 여러분들이나, 그냥 평소에 삼국지를 재밌게 읽으셨던 분이라면, 가벼이 일독을 권해 드리고 싶다. 내가 느꼈던 “아~ 다음 단행본은 언제…?”를 외치며 책장을 덮을 일은 없을 것을 생각하면 부럽기도 하다. 쩝.
마지막으로, 만화는 만화일 뿐, 오해하지 마시길… (일례로, 손권이 애완동물로 데리고 다니는 호랑이는 “동오의 호랑이”라고 불리던 것을 만화적 상상력이 동원되어 풀어낸 결과일 뿐…)
P.S : image를 검색하려고 google한 결과, 창천 항로에 대한 재밌는 comment가 있어서 소개한다.
“여성부 지지자들이 가장 저주하고 증오하는 개마초 미친자들의 세계…”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