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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사회

[스크랩] 목계장터 - 신경림 -

작성자mansa|작성시간07.12.30|조회수53 목록 댓글 0

         목계장터

 

                           - 신경림 -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꽂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 새우 끓어 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 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농무 / 1973>

 

 

 

 

<내가 처음 목계 구경을 한 것은 소학교 3학년 때였다. 그 속으로 소풍을 간 것이다.

열 살밖에 안된 아이들한테 20리 길은 짧은 길이 아니어서 목계에 이를 즈음

우리는 거의 기진맥진이되어 있었지만 목계를 보는 순간 피로는 씻은 듯 사라지는 것 같았다.
새파란 강물, 강가의 하얀 모래 밭, 모래밭 뒤의 수백 그루로 보이는 곧고 큰 소나무들,

강위에 떠있는 수 없이 많은 나룻배와 고깃배들.
정작 트럭도 함께 타는 배를 타고 강을 건너 목계에 이르렀을 때

내 감동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길을 향해 양옆으로 나란히 서 있는 가겟방들, 언덕에 멀찍이 물러앉은 도가집들,

밭머리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조각배,
집집이 벽이나 담에 걸 린 그물이며 촉고 따위 고기잡이 연장들,

여기저기서 들리는 귀에 선 노래들‥‥‥
그 뒤로 나는 여러번 목계를 가게 되었는데,

그 때마다 나는 새로운 감동에 휩싸이곤 했다.>

 

 

목계나루터엔 이제 다리가 놓여 있다

신경림의 '목계장터' 시비

-목계나루터ㅡ
신라와 고구려를 지난 남한강 물줄기는 장미산성을 크게 휘돌아 흐르며 목계나루로 이어진다. 목계나루는 강물이 말라붙은 갈수기에도 언제나 배가 드나들 수 있는 남한강 수운의 가항종점(可航終点)이었다. 조선 시대에 재정 확보를 위해 거둔 쌀과 베 따위를 보관하는 창고인 가흥창(可興倉)도 이 곳에 있었다.

일제 시대까지만 해도 목계나루엔 인천항에서 소금, 건어물, 젖갈류, 생활 필수품 등을 싣고 온 황포돛배가 수십 척씩 붐볐다. 이런 물건들은 내륙 지방인 충청도와 강원도, 그리고 백두대간 너머 경상도의 문경과 상주 각지로 팔려 나갔다. 당시 뱃일하는 인부만도 500여 명이나 되었다 하니, 나루와 이어진 목계장터는 언제나 시끌벅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모두 옛 일에 불과하다. 위용을 자랑하던 조창은 모두 허물어졌고, 주변엔 주춧돌 몇 개와 깨진 기왓장만이 뒹굴고 있을 뿐이다. 강나루의 흔적마저도 모래를 퍼내고 강 언덕에 축대를 쌓으면서 형편없이 변했다. 또 늘상 인파로 북적거렸을 목계장터는 지금은 골동품 가게와 수석 가게들만이 을씨년스러운 풍경화를 연출할 뿐이다.
 

목계나루에서 20리쯤 떨어진 노은면 연하리에 태를 묻은 신경림 시인에게 목계나루는 소중한 추억의 장소다. 시인은 광복 이듬해인 초등학교 4학년 때 목계나루 솔밭으로 소풍을 갔다가 목계장터를 보곤 강렬한 인상을 받게 된다. 당시까지만 해도 목계나루는 제법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는 시인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이어지다가 마침내 ‘목계장터’라는 명시로 열매를 맺는다.
 


신경림 申庚林 (1936. 4. 6 - )
 
[농무(農舞)]를 창작한 현대시인.
1936년 4월 6일 충청북도 중원에서 태어났다.
1960년 동국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1955∼1956년 《문학예술》에 이한직의 추천을 받아 시 《낮달》 《갈대》 《석상》 등을 발표하여 문단에 나왔다.
건강이 나빠 고향으로 내려가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했고, 다시 서울로 올라와 현 대문학사, 희문출판사, 동화출판사 등에서 편집일을 맡았다.
한때 절필하기도 하였으나 1965년부터 다시 시를 창작하였다.
《원격지》(동국시집, 1970), 《산읍기행》(월간다리, 1972), 《시제(詩祭)》(월간중앙, 1972) 등을 발표하였다.
이때부터 초기 시에서 두드러진 관념적인 세계를 벗어나 막연하고 정체된 농촌이 아니라 핍박받는 농민들의 애환을 노래하였다.
그의 작품세계는 주로 농촌 현실을 바탕으로 농민의 한과 울분을 노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론가 백낙청은 1973년 발표한 시집 《농무》의 발문에서 ‘민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받아 마땅한 문학’이라는 점에서 이 시집의 의의가 있다고 하였다.
이후부터 그는 우리 민족의 정서가 짙게 깔려 있는 농촌 현실을 바탕으로 민중들과 공감대를 이루려는 시도를 꾸준히 하고 있다.
1973년 제1회 만해문학상, 1981년 제8회 한국문학작가상을 수상하였다.
시집에 《새재》(1979), 《달넘세》(1985), 《남한강》(1987), 《우리들의 북》(1988), 《길》(1990) 등이 있고, 평론에 《농촌현실과 농민문학》(1972), 《삶의 진실과 시적 진실》(1982), 《역사와 현실에 진지하게 대응하는 시》(1984), 《민요기행》(1985), 《우리 시의 이해》(1986) 등이 있다.

 

 


목계(牧溪)는 충주에서 원주로 통하는 길목의 작은 마을이다.
거리는 충주 중심가에서 불과 십 리 남짓 정도의 가까운 거리.
행정구역으로는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
면에서는 가장 번성한 곳이지만
면사무소를 이웃마을로
빼앗기고 보니 면소재지로 부르기도 그렇다.

충주댐 하류의 남한강이 고즈넉이 흐르는 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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