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물어죽인 불뱀
민수기 21:6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
불뱀 사건은 이스라엘을 세상이라는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광야를 지나는 동안 일어난 사건입니다. 성경은 그 광야를 광야교회라고도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지금의 세상이 바로 광야교회입니다.
사도행전 7:38
“시내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및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생명의 도를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위의 구절에서 천사는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은 모세를 말하고 있는데 그 모세 왈 훗날 너희 형제 가운데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인데 너희는 그 선지자의 말을 들으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의 율법을 받은 모세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 여호수아로 율법과 복음을 미리 그림자로 보여주셨는데 모세가 말한 나와 같은 선지자는 여호수아를 말한 것이 맞지만 실제적인 영적인 가나안에 들어간 나와 같은 선지자는 예수님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약의 여호수아(히브리어)는 신약의 예수(헬라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구약의 여호수아로 보여준 가나안은 신약의 영적인 가나안을 그림자로 미리 보여주신 것뿐 아직 영적인 가나안은 여호수아의 시대에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림자로서의 가나안에 들어간 것뿐이었습니다. 신약에서도 그 약속의 땅 가나안은 이미 실현된 것처럼 보이면서도 아직도 남아 있는 가나안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4: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가나안(영적인 안식처)은 성도들의 죽음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성도라면 육신이 살아있는 현실세계에서 실현되어져야 할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10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안식은 사람의 육신의 죽음(별세) 이후의 개념이 아니라 육신이 숨쉬고 사는 현실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가 언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광야에서의 불뱀 사건에서 보여주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는 그 불뱀으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구제받을 수 있는 기회가 신약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천년 전의 유대나라에 오신 예수님은 자신을 불뱀으로 비유하시면서 자신이 친히 불뱀이 되어 매달리실 것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 사건은 이미 모세가 장대에 놋뱀을 매다는 것으로 그것을 본 백성들은 살아났던 것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
예수님은 친히 자신을 그 뱀에 빗대어 묘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그 예수님을 의인이라고 하고 있는데 왜 뱀으로 칭하였느냐는 의구심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유대나라에 오신 예수님을 많은 사람들이 추종하였습니다. 기적을 베푸는 그 예수님을 추종하는 부류를 살펴보게 되면 배고픈 인간에게 배를 채워주고, 주의 나라가 임할 때에 좌승상, 우승상 되게 해주는 임금님, 로마의 속국이 된 유대나라를 해방시켜줄 민족적 메시야로 믿고 예수님을 추종한 것들이 그 부류였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한마디로 인간의 욕심을 채워주는 예수님으로 즉, 썩는 양식을 위한 일한 자들의 모습이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가 이러한 욕심을 본능적으로 갖고 살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교회(광야교회)에서도 동일하게 예수님을 믿는 이유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신다고 한 유일한 것은 성령이라고 하는데 구하면 주신다는 문자적인 성경 구절에 얽매여 엉뚱한 것을 구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약속한 그 성령은 인간이 받게 되면 인간의 욕심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에 인간은 인간의 뜻이 거절당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의인인 예수님은 성령으로 행하는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예수님이 성령으로 행한다고 하는 그 이면에는 육신의 생각도 여전히 존재하였던 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예수님은 육신의 생각으로 살지 못하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살았기에 의인(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2:42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성도라면 그 하나님의 뜻을 이길 수 있는 자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인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고 있는 자라면 아직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요원한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을 이용하여 내 소원 이루기를 원하는 그 마음이 바로 불뱀에게 물린 증상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은 이 불뱀에게 물린 상처를 갖고 사는 자들입니다.
이 불뱀의 상처는 방치하게 되면 영원한 멸망을 당할 지경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불뱀에게 물린 자들은 그 치유의 과정이 남아 있는데 그것은 그 불뱀을 만나게 되는 것으로 판가름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민수기 21:8“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이천년 전의 유대나라에 그 예수님께서 불뱀에게 물린 자들 앞에 그 불뱀의 모형이 되어 장대(십자가)에 매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육신의 욕심을 이루어주는 임금으로 알고 추종하던 모든 자들이 불뱀에 물린 자들이었고 그 불뱀에 물린 자들 면전에서 예수님께서 그 장대에 불뱀의 모양이 되어 매달리게 된 것입니다. 예수를 추종하는 군중과 예수님이 뱀으로 연합되는 모양인 것입니다.
세상욕심(뱀)을 추종하며 예수를 좇았던 군중들은 그 욕심(뱀)과 예수를 합일체로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즉 “뱀=예수“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나의 욕심을 채워주는 예수님이었지만 실상은 동상이몽이었다는 것입니다.
욕심을 따라가는 군중과 그 군중을 가로막고 있는 예수님은 인간의 욕심을 채워주는 분이 아니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가 추구하는 관점이 달랐던 것입니다.
하지만 욕심을 따라 추종하는 군중들은 그 욕심을 포기하지 못하는 존재들이 되어 예수를 놓지 못하고 붙들어 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추종하는 군중들의 뜻이 자신을(예수님) 보내신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기에 그 군중들을 피하셨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6:15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인간들이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을 믿는(예수를 믿는) 신앙은 불뱀에게 물려서 나타난 증상임을 예수님께서 친히 그 불뱀이 되어 장대(십자가)에 매달리는 것으로 보여주신 것이었습니다. 성도에게는 나타나는 증상은 그 불뱀이 죽어야(사라져야) 살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
휘장을 가운데로 열어 놓았다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다는 의미이면서 하나님께로 가는 자들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심은 성도들에게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인간의 욕심을 충족시켜주는 자아가 사라졌다는 말인 것입니다. 다른 표현으로 예수님이 놋뱀이 되어 장대에 매달려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회고시켜 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6: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오늘날 세상을 사는 모든 자들은 불뱀에게 물려 죽은 자들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죽은 자들 가운데 살아날 수 있는 성도는 인간의 눈을 가로막고 있는 자아(욕심)가 찢어져야 하지만 이런 자아를 찢는 유일한 길은 불뱀이 되어 세상에 보내지는 그 어떤 사람과의 연합으로야 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휘장(인간의 자아=가려진 영적인 눈)은 인간이 찢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이사야 6:6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위글의 스랍이 바로 불뱀인데 스랍이 핀 숯을 가지고 온 이유는 이사야의 입술을 지져서 악(죄)을 사함이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도 역시 불을 던지러 오셨다고 합니다.
누가복음 12:49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불뱀에게 물렸으나 물린 줄을 모르는 존재들에게는 불뱀이 되어 불뱀들을 향하여 인간은 이렇게 불뱀이었다를 알려주는 징조가 나타남이 십자가였던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8:5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불은 예수로도 천사로도 세상에 쏟기 위함으로 보내집니다. 천사나 예수나 모두가 그 하나님의 사역자로 쓰임받는 직분으로서 사명입니다.
독사에 물리면 독사의 독으로 치료하는 원리는 바로 불뱀에게 물린 존재들에게는 불뱀이 매달려 죽는 시연으로만 치료가 되기 때문입니다.
불뱀에게 물린 줄을 모르는 자들은 그 불뱀이 십자가에 매달리는 상황을 보면서 자신이 불뱀에게 물린 존재였음을 아는 것이 구원인 것입니다. 바로 연합이라는 것입니다(그 예수를 나로 알아서 인간은 이렇게 하나님에 의해 죽어야 하는 존재임을 아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