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옷의 농민들의 하얀 손수건을 흔드는 배웅속에서,
▪︎곡식을 모두 수탈해 가버린, 그래서 일용할 양식 걱정이 하루의 삶이 되게 농민들을 비참하게 만든 (°예수가 살던 시대, 예수의 동포들인, 갈릴리 사람들이 생각난다) 멕시코 군(헤롯성전의 종교권력)과의 결전을 앞둔 (예수),
▪︎'풍운아 판쵸빌라'(영화제목)의 농민군이 민중속을 빠져 나가는 장면에서 함께 부르던,
.. "제비"
▪︎그 영화를 그 장면을 보면서 그때 괜한 눈물이 흘러 내렸다.
▪︎멕시코 민요인 ‘La Golondrina(라 골론드리나·제비)’는 스페인 출신 작곡가 ‘나르시소 세라테르’에 의해 편곡된 노래다.
=> https://youtu.be/ByazOk_dMkY?si=PBz4xDxOM-1eBn4v
.
■1878년 오늘 출생한 멕시코의 혁명가, 프란시스코 비야. 별명, 판초 비야 (Fransico Villa, 1878 ~ 1923)
▪︎본명은 도로테오 아랑고 (Doroteo Arango)이며 프란시스코라는 이름보다는 애칭인 판초 (Pancho)로 더 잘알려져 있다.
▪︎1878년 6월 5일, 멕시코 산후안델리오 아시엔다에서 가난한 농장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1894년에 누이를 강간한 농장주인을 살해하고 멕시코 북부의 산속으로 들어갔다.
▪︎이후 그는 산적이 되어 그의 본명이었던 도로테오 아랑고를 프란시스코 비야로 개명한다.
▪︎산적이 된 그는 훔친 재물을 판초 비야라는 이름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줌으로써 동료들 및 지역민들의 신망을 얻었다.
▪︎1910년, 세력이 커진 비야는 자신을 따르던 무장세력을 이끌고 프란시스코 I. 마데로 (Francisco Madero)가 주축이 된 멕시코 혁명에 뛰어들었다.
▪︎이후 전설적인 연승과 강력한 카리스마로 유명해진 그는 멕시코 북부지방인 치와와주에서 멕시코시티에 이르는 멕시코 북부 일대를 장악함으로써 일약 '멕시코 민중의 영웅'으로 부각되었다.
.
▪︎1차 혁명이 성공하자, 민간인으로 돌아갔던 비야는, 연이은 반혁명 정권의 등장으로 동료들과 함께 다시 내전에 뛰어들었다.
▪︎1915년 4월 셀라야 전투에서 최대 정적이었던 베누스티아노 카란사 (Venustiano Ignacio Carranza)와 알바로 오브레곤에게 패퇴하여 기반을 잃게 되었고,
▪︎판초 비야는 미국의 우드로 윌슨 행정부가 카란사를 밀어준 탓에 혁명이 실패했다고 판단하고 멕시코와 미국의 접경도시에 살고 있는 미국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판초 비야가 공격한 후의 뉴멕시코주 콜롬부스....뉴멕시코주 일대의 미국인 18명이 목숨을 잃는 등 인명피해가 발생하자 미국의 존 퍼싱 (John Joseph Pershing) 장군은 수천명의 병력과 함께 판초 비야의 토벌에 나섰으나 결국 실패했다.
▪︎카란사 정권이 붕괴되자 다시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갔으나 1923년 7월, 반대파의 손에 암살되었다.
▪︎암살의 배후에는, 카예스 (Calles)가 주목되고 있다.
ㅡ 플루타르코 엘리아스 카예스는 멕시코 원수이자 정치인이었다. 그는 1924년부터 1928년까지 멕시코의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