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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랑채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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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제임스강|작성시간26.06.15|조회수18 목록 댓글 0

■"수,당을 위대한 침략자로 만들어 주는 이런 기가막힌 엉터리 지도가 없어져야 한국사가 바로 잡히게 됩니다.

▪︎역사를 소재로한 가공 판타지 소설도 지명을 이렇게 엉터리로 잡지 않습니다.

▪︎살수대첩은 청천강, 평양은 대동강, 나머지 성곽은 요하 주변에 몰아 놓았습니다.

▪︎고구려와 수,당의 전쟁터는 북경(베이징)에도 못미치는 하북성 보정시 역현과 서수구 일대를 흐르는 요수 주변의 성곽이 었습니다. 이곳이 고구려의 요동이었습니다." ..

○이 주장을 어찌 보십니까? 역사적 지리적 여건상, 맞는 말 같은데 .....



■역사 기술에서 지리적 고증이 얼마나 중요한지 깊이 고민하시며 올려주신 글 같습니다.

▪︎보내주신 주장은 기존 주류 역사학계의 통설(청천강 살수설, 요하 요동설)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며, 고구려의 강역과 전쟁터가 현재의 중국 하북성 일대까지 훨씬 더 서쪽으로 뻗어 있었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주장은 민족주의적 시각을 바탕으로 한 비주류 역사 이론(이른바 재야사학 또는 대륙고구려설)의 대표적인 논거입니다. 역사적·지리적 문헌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일견 그럴듯해 보일 수 있지만, 한국과 중국의 주류 역사학계 및 고고학계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주장입니다.

▪︎​이 주장이 왜 매력적으로 들리는지, 그리고 학계에서는 왜 이를 '틀린 주장'으로 보는지 그 핵심 원인을 명확하게 짚어드리겠습니다.

​1. 이 주장이 '맞는 말'처럼 느껴지는 이유 (지명 이동의 혼란)

▪︎​고대사 문헌(삼국사기, 수서, 당서 등)을 보면 실제로 요수(遼水), 요동(遼東), 평양(平陽/平壤)이라는 지명이 시대와 정치적 상황에 따라 위치가 계속 변했습니다.

◇​'요동'의 가변성:

▪︎고대 중국에서 '요(遼)'는 자신들의 지배 세력 가장 동쪽 끝(멀 요, 遼)을 의미하는 수식어에 가까웠습니다.

▪︎따라서 중국 왕조가 전진하면 요동도 동쪽으로 이동하고, 후퇴하면 서쪽으로 이동했습니다.

◇​문헌의 자구 해석:

▪︎일부 문헌의 "요수에서 북경이 가깝다"거나 "평양이 고구려의 평양 외에 다른 곳에도 있었다"는 기록들을 단편적으로 연결하면, 말씀하신 하북성 일대가 고구려의 요동이었던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2. 주류 학계가 이 주장을 거부하는 고고학적·실증적 이유

▪︎​역사학은 문헌 기록뿐만 아니라, 땅속에서 나오는 물적 증거(고고학)와 주변 정황이 일치해야 사실로 인정받습니다.

▪︎이 주장은 여기서 치명적인 한계를 가집니다.

​① 유물과 성곽의 공백 (가장 결정적인 이유)

▪︎​고구려와 수·당의 전쟁은 수십만, 수백만이 동원된 거대한 국제전이었습니다.

▪︎만약 하북성 보정시 일대가 치열한 전장이었고 고구려의 요동성, 백암성, 안시성이 그곳에 있었다면, 그 지역에서 고구려 양식의 석축 성곽, 고구려 기와, 철제 무기, 무덤(적석총, 고분벽화)이 쏟아져 나와야 합니다.

◇​현실:

▪︎하북성 일대에서는 고구려 유물이 거의 발견되지 않으며, 해당 지역의 고성들은 한나라, 조위, 북조, 수·당의 중국계 유물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반면 요하 일대: 현재의 요령성(요하 주변)과 길림성, 한반도 북부에서는 고구려 특유의 쐐기형 성돌로 쌓은 성곽과 유물이 빽빽하게 발견됩니다.

▪︎천리장성의 흔적도 이 요하 동쪽에 남아 있습니다.


​② 수·당의 보급로와 기후적 모순

▪︎​수나라 양제가 113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칠 때, 탁군(현재의 북경)에 모여 출발했습니다.

▪︎​만약 전쟁터가 북경 바로 옆인 하북성 보정시(탁군에서 불과 100~150km 거리)였다면, 수나라 군대가 보급 때문에 굶어 죽거나 살수에서 퇴각할 때 수십만 명이 몰살당하는 일은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자기 앞마당이니까요.

▪︎​문헌에 나오는 "요하를 건너기 위해 부교를 놓았다", "진흙탕을 통과하느라 고생했다"는 기록은 하북성의 건조한 지형보다는, 여름철 하구 분지가 거대한 늪지대로 변하는 현재의 요령성 요하(遼河) 평원의 지리적 특성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③ 강(江) 이름의 비정 (살수와 청천강)

▪︎​'살수(薩水)'를 청천강으로 비정하는 것은 단순히 감으로 맞춘 것이 아니라, 고대어 연구를 바탕으로 합니다.

▪︎고구려어에서 '살(薩)'은 '맑다, 희다, 시리다'라는 뜻을 가졌는데, 조선 시대까지 청천강을 '맑은내(淸川)'라고 부른 것과 언어학적으로 연결됩니다.

▪︎마찬가지로 대동강 역시 고구려의 '다물(대)' 혹은 '큰 강'이라는 의미와 연결되어 평양의 위치를 증명합니다.


■​요약하자면

▪︎​"역사적 지명은 움직이지만, 땅속의 유물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상기 주장은 문헌 구절의 단편적인 교차 편집을 통해 "우리 영토가 이만큼 넓었다"는 민족주의적 포부를 충족시켜 줄 수는 있지만, 실제 유물과 지형적 정황이라는 거대한 바위를 넘지 못하는 가설입니다.

▪︎​현재의 한국사가 살수를 청천강으로, 요동을 요하로 비정하는 것은 수·당을 위대한 침략자로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그곳에서 실제로 고구려인들의 피와 땀이 서린 성곽과 유물이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역사 지도는 엉터리가 아니라,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증거들의 합치라고 보시는 것이 타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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