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행랑채 게시판

○언제쯤이면 기독교에, 실종된 위의 예수가르침이, 실종신고와 함께 예수가르침을 진정으로 찾게되어 회복될 날이 올까요 ...

작성자제임스강|작성시간26.06.17|조회수170 목록 댓글 0

▪︎옥합을 깨, 아주비싼 향유로 예수님 발을 씻긴것 처럼, 완공이 거의 다 된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봉헌하는 것을 기뻐하고, 당연시 여깁니다. 이것이 2천년전부터 내려온, 예수를 따르는 21세기 크리스챤의 사고방식 맞습니까?

▪︎산상수훈후에 말씀하신, ¹등경(마5:17, good Work), ²좁은문 좁은길(마7:13,14), 그리고 ³영생의 길 (누10:25,37 착한사마리아인 이야기 ....거기에는 하나님도, 성령도, 성서도, 십자가도 ... 정작 예수 자신도 안나옵니다)

▪︎언제쯤이면 기독교에, 실종된 위의 예수가르침이, 실종신고와 함께 예수가르침을 진정으로 찾게되어 회복될 날이 올까요 ....

(서울을, 야훼하나님께 봉헌합니다 ??)






■위의 글 속에서 오늘날의 기독교계를 바라보며 느끼시는 깊은 고민과 안타까움, 그리고 예수님의 참된 가르침이 본질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문제의식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위의 두 가지 맥락에 대해 복음서의 배경과 예수님의 핵심 가르침을 바탕으로 함께 짚어보고자 합니다.

​1. 옥합을 깨뜨린 사건과 대성당(사그라다 파밀리아) 봉헌의 복잡한 시선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부은 것처럼, 수천억짜리 성당을 지어 바치는 것이 21세기 크리스천의 당연한 사고방식인가?"

▪︎​복음서에 나오는 '향유 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사건(마태 26장, 마가 14장, 요한 12장 등)은 2천 년 기독교 역사에서, 소위 기독교 엘리트의 신학적 주장에 의해 대규모 성전 건축이나 화려한 예배당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자주 인용되어 왔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것도 좋지만, 예수님께 최고의 것을 드리는 것이 우선"이라는 논리였지요.

▪︎그러나 그런 주장에 따른 해석에는 몇 가지 깊이 따져봐야 할 지점들이 있습니다.


◇​시한부적 사건 (단 한 번의 장례 준비):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행동을 칭찬하시며 "그가 내 몸에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마 26:12)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곧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실 예수님의 메시아적 죽음을 예비한, 단 한 번의 예언적-상징적 행위였습니다.


◇​성전 중심주의의 폐지:

▪︎정작 예수님은 당대 최고로 화려했던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지리라"고 예언하셨고, 건물이 아닌 (사람)자신의 몸이 참된 성전임을 선포하셨습니다.

◇​본질의 왜곡:

▪︎가우디의 걸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같은 건축물은 예술적·역사적 가치가 뛰어날지언정, 그것을 헌신이라는 미명 하에 정당화하며 정작 이웃의 고통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의도라기보다는, 인간의 종교적 과시욕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것을 복음의 절대적인 규칙이자 '당연한 사고방식'으로 여기는 것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은 매우 타당합니다.


​2. 산상수훈과 착한 사마리아인:

◇실종된 예수의 가르침

▪︎​위에 제시한 내용과 같이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세상의 소금과 빛, 착한 행실), 좁은 문, 그리고 누가복음의 '착한 사마리아인' 비유는 기독교가 가장 아프게 찔려야 할 대목입니다.

◇​종교적 도그마 vs 삶의 실천:

▪︎말씀하신 대로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는 거창한 신학적 교리(십자가, 성령, 구원론 등)가 전면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대의 종교 엘리트였던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 만난 자를 외면했고, 종교적으로 이단시되던 사마리아인이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예수님의 결론은 단순했습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눅 10:37)


◇​행함이 없는 믿음의 위기:

▪︎오늘날 많은 기독교 교단이 '오직 믿음(Sola Fide)'이라는 교리를 오해하여, 삶의 실천과 윤리, 즉 *
'착한 행실(Good Works)'을 하찮게 여기거나 구원의 부속품 정도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결과 세상의 등경이 되어야 할 교회가 도리어 세상의 걱정거리가 되는 모순이 발생했습니다.


​3. 기독교는 언제쯤 이 가르침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역사적으로 기독교가 거대해지고 권력화될 때마다, 예수님의 '낮아짐과 이웃 사랑'의 가르침은 늘 실종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희망적인 것은 역사 속에서 교회가 타락했을 때마다, 늘 변두리에서 "예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고 외쳤던 소수의 무리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언제쯤 회복될 날이 올까요?"

▪︎​그 날은 거대한 제도권 교회나 교단이 통째로 바뀌는 거창한 날이 아닐지 모릅니다.

▪︎대신 님처럼 오늘날 기독교의 모순을 아파하고, 화려한 성전 건축보다 내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며,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는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려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깨어남 속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교리가 비대해진 자리에 예수님의 '삶'이 다시 들어앉을 때, 기독교는 비로소 잃어버린 실종신고를 철회하고 참된 복음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가슴 아픈 통찰이 담긴 질문을 통해 종교의 본질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듭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