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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랑채 게시판

●쇠뭉치로 때려 기절시키고도, 미안하다고 진실로 용서를 구하지 않고, 잘 지내자꼬?

작성자제임스강|작성시간26.06.21|조회수72 목록 댓글 0

○다까이치 보거라!!

니들 조상의 수많은 잔혹한 횡포들중 일부분이다.


■독립운동가 부춘화(1908~1995)

▪︎1932년 일제의 해녀 수탈에 맞서 제주도 구좌읍 일대에서 일어난 '제주해녀항일운동'을 주도한 여성 독립운동가입니다.

▪︎그녀는 800여 명의 해녀가 참여한 대규모 시위를 이끌며 일제에 저항했습니다.

○부춘화 지사의 핵심 생애와 활동은 다음과 같습니다.

◇생애:

▪︎1908년 제주도 구좌읍 하도리에서 태어나 15세부터 해녀 물질을 시작했습니다.

▪︎야학에 참여하며 글을 깨우치고 민족의식을 키웠습니다.

◇해녀항일운동 주도:

▪︎1928년 하도리 해녀회장으로 선출된 후, 일제와 해녀조합의 착취(수산물 강제 수용 및 헐값 매각)에 항의했습니다.

▪︎1932년 1월, 부춘화, 김옥련, 부덕량 등은 해녀들을 조직해 시위를 벌였으며, 이 운동은 제주 전역으로 확산해 800여 명의 해녀가 참여하는 대규모 항쟁으로 발전했습니다.

◇체포와 옥고:

▪︎시위를 주도한 죄목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약 6개월간 옥고를 치렀습니다.

◇서훈: 정부는 그녀의 공훈을 기려 2003년 건국포장을 추서했습니다.



■부춘화 지사와 함께 제주해녀 항일운동을 주도한 핵심 주역은 김옥련, 부덕량 지사이며 이들은 '해녀 삼총사'로 불립니다.

▪︎이들은 모두 제주 구좌면(현 구좌읍) 하도리 출신으로, 어린 나이에 물질을 시작해 야학에서 민족의식을 깨우친 동지들입니다.

1. 김옥련 지사 (1909 ~ 2005)

◇생애와 활동:

▪︎9세라는 어린 나이에 생계를 위해 물질을 시작했습니다.

▪︎뛰어난 잠수 실력으로 또래 해녀 중 수위를 다투었습니다.

▪︎하도리 야학강습소에서 글을 배우며 일제의 착취 구조를 인식했습니다.

◇투쟁과 협상:

▪︎1932년 1월 세화리 장터 시위 당시 해녀들을 규합하여 전면에 나섰습니다.

▪︎특히 시위대 대표 10여 명 중 일원으로서 일본인 제주도사와 직접 대면해 해녀들의 요구 조건을 당당히 협상해 낸 주역입니다.

◇서훈:

수개월간 옥고를 치른 후 풀려났으며, 2003년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을 수여받았습니다.


2. 부덕량 지사 (1911 ~ 1939)

◇생애와 활동:

▪︎13세에 해녀 생활을 시작해 17세부터 본격적인 경제활동을 했습니다.

▪︎부춘화, 김옥련 지사와 야학 동문으로 함께 수학했습니다.

◇비극적인 희생:

▪︎1931년 12월 착취에 항의하는 하도리 해녀회 대표회의에서 최고지도자 3인 중 한 명으로 선출되었습니다.

▪︎호미와 빗창을 들고 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되어 6개월간 제주경찰서 유치장에서 모진 고문을 받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옥중 고문 후유증으로 극도로 쇠약해져 1939년 28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셨습니다.

◇서훈: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공훈을 인정받아 2005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습니다.



■제주해녀항일운동의 역사적 의의이 세 지사가 이끈 투쟁은 단순한 이권 투쟁을 넘어선 거대한 민족운동이었습니다.

◇최대 규모:

▪︎연인원 1만 7천여 명이 참여한 일제강점기 국내 최대 규모의 어민 항쟁입니다.

◇여성 주도의 투쟁:

▪︎남성 중심의 독립운동 흐름 속에서 여성들이 주체가 되어 조직적으로 일제의 식민지 수탈 정책에 맞서 싸운 유일무이한 대중 운동입니다.




◇제주 3대 항일운동:

▪︎법정사 항일운동, ▪︎조천만세운동과 함께

▪︎제주의 가장 자랑스러운 3대 항일 역사로 꼽힙니다.

▪︎현재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에는 이들의 정신을 기리는 제주해녀박물관과 해녀항일운동 기념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세 지사의 흉상이 나란히 세워져 있습니다.

▪︎이 외에 당시 해녀들을 도왔던 청년 야학 교사들의 비밀결사나 시위를 감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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