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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죽어야 여자가 자유합니다

작성자이드로|작성시간20.01.16|조회수92 목록 댓글 0

남편이 죽어야 여자가 자유합니다


로마서 7:2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

성경에서 남편을 그리스도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자를 교회라고도 하고 있지요. 그렇다면 성경이 남편과 여자의 관계를 통해서 말씀하고자 하는 의도는 남편과 여자의 결혼관계를 통해서 이 땅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구원을 얻게 되는 과정을 말하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연합함(동침함, 결혼)을 통하여서 여자가 해산을 하게 되고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남편은 누구를 지칭하는 단어일까요? 바로 이천년 전의 예수님이 바로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에서 남편인 그리스도의 역할로 유대나라에 보내졌던 것이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따랐던 제자들이 여자로서의 역할로 그 남편인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감당했던 것입니다.


 구원은 이렇게 남자와 여자의 연합으로야 만이 성취될 수 있는 사건입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해산한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얼마 전에 예수님이 떠나면(십자가를 지면) 안된다고 하는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


본문은 본문 앞절에서 예수님 자신이 떠나야 할 것을 말씀하신 후에 이어지는 예수님의 답글이었습니다. 왜 제자들은 예수님을 떠나 보내면 안되고 예수님 스스로는 자신이 떠나야 한다고 하는 이해상충의 문제가 발생하였을까요? 바로 제자들이 굳게 굳게 붙들려고 하였던 그 예수님이(남편)이 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며, 바로 제자들의 마음에서 그 예수님이 자신들의 욕심을 충족시켜 주는 그런 임금으로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조금 있으면 이 세상임금이 쫓겨나야 한다고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믿고 있는 세상임금이 바로 예수님을 그 세상임금으로 믿고 있었다는 반증이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그 예수님은 자신들의 욕심을 채워주는 그런 만사형통의 주인이 돼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믿고 있다고 하는 그 예수님이 바로 제자들이 믿고 있는 그 예수와 하등 다를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복을 받고 만사형통한다는 그런 생각이 바로 남편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남편은 죽어야 합니다. 여전히 여러분들의 마음에 그 예수님이 나를 구원시켜주고 나의 행복을 충족시켜주는 그런 예수님이었다면 그 남편 예수님은 여전히 죽지 않고 여러분의 마음에서 살아 있어서 여러분은 남편을 떠나보내지 못해서 율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종노릇하고 있는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성도에게 자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자유는 남편이라는 그 법(율법)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말하고 있는데 여전히 그 남편을 나의 주, 나의 임금, 나의 구원주로 이해하고 있다면 자유하지 못한, 즉 종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에덴에 있는 동산의 선악과(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먹지 못한다는 하나님의 금령(율법)이었습니다. 그 금령은 먹지 못한다로 알고 먹지 않아야 하는데 그것을 내가 먹어서 간직하고 있는 자체가 그 남편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 예수님을 십자가에 떠나 보내게 됨에 따라 그 남편이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바로 오순절에 성령을 받게 됨으로 그 율법이라는 예수로부터 자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유하게 되는 여자들의 모습(구원받은 성도)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여자(교회)의 자유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현 상황에서 그 남편이 그리스도가 떠났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유대나라에 온 그 예수님을 좇아 다니던 많은 무리들이 무슨 목적으로 예수를 좇았던가요? 바로 떡으로 굶주린 배를 채워주는 그 예수님이 너무 너무 좋았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식량 사정이 오늘날처럼 좋지 않았음에는 분명하였습니다. 포도원 비유에서 일당을 벌어서 먹고 살았던 그 일꾼들이 일거리가 없어서 포도원 주변을 서성거렸던 사실을 통해서도 알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굶주린 배를 채워준다는 것은 그 당시로서는 엄청난 혜택이었는데 그 굶주림을 예수님만 따라 다니면 일하지 않고서도 해결이 되니 그야말로 더할나위 없는 행운이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을 좇아 다니던 그런 무리들에 대해서 뭐하고 하였던가요?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보고서가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고선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인즉슨 너희들은 영생이 아니라 썩는 양식을 추구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인들의 행태와 동일하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서 만사형통 하겠다는 그 욕심이 바로 썩는 양식이라는 것입니다. 그 예수를 우리의 배를 채워주고 욕심을 채워주는 그런 임금님으로 교인들의 마음에 굳게 세워놓고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를 천국에 데려다 줄 임금님으로 그 예수가 여러분의 마음 속에 굳게 자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임금님, 남편, 그리스도, 예수가 여러분의 마음에서 사라져야 하는데 아직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여러분은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하였다는 증거라는 것이지요. 성경은 분명하게 여자가 자유할 수 있는 것이 그 남편(그리스도, 예수, 율법)이 죽어야 한다고 하는데 말입니다. 


로마서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찌니라“

율법에서 자유한 바울이 로마에 있는 교인들에게 하는 말씀, 즉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자유는 어떻게 획득하게 되는 것일까요? 바로 일차적으로 그 남편(율법, 그리스도로)을 영접해야 합니다. 마치 제자들처럼 그 예수님(남편)을 영접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연합(결혼, 동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엇에게서 벗어날려고 하면 일차적으로 그 존재와 묶이는 관계가 선행돼야 하는 것입니다. 묶여야 벗어나는 관계가 성립이 되는 것이지 묶이지도 않고 벗어났다고 하면 그건 말도 안되는 말인 것입니다. 제자들처럼 예수를 만나서 예수를 벗어나는 것처럼 만나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오늘을 사는 여러분들도 마찬가지로 만나서 벗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결자해지라는 단어가 있지요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맺고 푼다는 말인 것입니다. 묶여야 풀 수 있는 환경이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맺지 않고서 풀려났다는 글이 성립이 될 수 있느냐고요? 남녀가 만나야 아이를 낳을 수 있지요. 서로가 만나지 않고서는 절대 아이를 낳을 수가 없습니다. 구원도 이러합니다. 이천년 전 그 예수와 제자들이 연합함으로 열매를 맺었듯이 오늘날도 이런 그림자(모형)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와의 연합(영접)을 통해서야 만이 열매(아들, 해산의 열매)를 낳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다리는 이천년 전의 그 예수는 여러분을 데리러 오지도 않을뿐더러 영원히 만날 수 없는 분입니다. 지금 이 땅에 보내지는 천사가 바로 하나님에 의해 이 땅에 보내지는 남편으로 여러분들 앞에서 영접하는 신부(교회, 여자)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신부(여자)는 아버지께 배워서 신랑을 분별하는 지혜를 가지게 됩니다.


요6;44-46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출처; 네이버카페 생명의 만나 남용모 목사

      유튜브                    남용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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