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행랑채 게시판

보수(報酬)의 신앙

작성자이드로|작성시간20.01.30|조회수59 목록 댓글 0

보수(報酬)의 신앙


롬4;4-5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찌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본문에서 삯이라는 단어를 보수(일한 것에 대한 댓가)로 표현을 하였습니다. 보수는 근로자가 일한 댓가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 모든 근로자는 일을 한 댓가로 월급이라는 보수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언급되는 삯(보수)은 은혜와 충돌하는 면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열심히 일을 하면 삯을 받는다는 신앙이 바로 보수의 신앙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편에서는 보수의 신앙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바로 보수와 은혜는 상충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기독인들은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인 은혜라는 것을 알면서도 은근슬쩍 거기에 인간의 행위를 개입하여 삯(복)을 누릴려고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의 풍성함도 누리고 천국에서의 영생도 편취할려고 하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두 마리의 토끼를 주신다고 말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롬4;4-5에서 분명하게 삯과 은혜를 대조하면서 선물되어지는 믿음은 삯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반부의 일하는 자가 의무를 다해서 받는 대가가 삯이었다면 그것은 선물로 주어지는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인간이 구원을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신앙생활과 그 반대로의 구원은 오로지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지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둘 중에 하나는 가짜이고 하나는 참인데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지는 구원이 참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표현으로 나타낸다면 구원은 인간이 노력해서 될 사항이 전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여러 성경에서 이렇게 하면 복을 주고 저렇게 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 행하는 오류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차적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교회를 출석하는 모든 자들에게 성경을 주심은 그 성경을 통해서 영생을 주실려 함이 아니라 그 성경을 통해서 자신은 하나님의 법(성경)을 지킬 수 없는 자들임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고 그 성경에서 오리라고 하는 그리스도를 찾게 하기 위함인 것이었던 것입니다. 


성경을 주심은 그 율법을 지켜서 즉, 열심히 일을 해서 율법을 지켜내라는 것이 아니라 못지킨다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는 것입니다. 못지키니 대신 다른 방안을 찾을 방도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이런 목적으로 성경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못 지켜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열심히 두드리면 문을 열어준다는 말은 아닌 것입니다.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의 삶을 대략적으로 표현하면 이 세상에서 잘되고 번영하는 복과 내세의 복받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 두 마리의 복을 한꺼번에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린다면 롬4;4-5에 어긋나는 말씀이지요. 지킬 수 없는 율법을 주셔서 못지킨다는 것을 알게 하심이 목적이었는데 그것을 부단히 지켜볼려고 애쓰는 것이 바로 일을 열심히 하여 삯을 받아보겠다는 보수의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아브라함 자신의 일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선물한 그 믿음으로 아브라함이 구원을 받는 모습이 참신앙임을 성경을 통해서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에게 말하고자 함이었는데 오늘날의 기독인들은 성경과 역행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이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즉, 성경의 참 뜻을 거슬러는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삯과 은혜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관계입니다. 집하인이 두 주인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가 이편 아니면 저편일 수밖에 없습니다. 


둘을 동시에 가지고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가 절대로 없습니다. 세상은 가능할 수 있을지 몰라도 성경은 그렇게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없는 범죄자로 들통나도록 하셨는데 그 율법을 열심히 지켜서 하나님나라에 공헌해 보겠다고 하는 인간들의 심사가 죄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로마서 5: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죄가 드러나야 하는데 죄를 더욱 짓지 아니하려고 애써서 거룩거룩하게 될려 하고 있으니 하나님처럼 되어버린 것이 오늘날의 기독인들이라는 것이지요. 스스로가 하나님이 되어 하나님 행세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글자 그대로 보고 행해버리면 그게 죄라는 것입니다. 모든 말씀은 인간이 못 지킨다를 알게 하심인데 그것을 지키는 것으로 이해하고 열심히 행동해 버리면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스스로 판 무덤에 갇혀버리는 것입니다.


 율법이 들어온 것은 죄를 더욱 노출시켜서 죄가 더욱 더 많아지게 돼야 그게 정상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죄가 드러나지 못하였다면 열심히 자신이 행하던 그 옛습관을 계속 추구하겠지요. 그 율법은 우리게에 구원을 주지 못한다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5: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그래서 그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존재임을 아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체수단으로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는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을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그리스도, 즉 하나님의 영은 반드시 사람이라는 예수를 매개체(중매쟁이)로 역사하여 예수그리스도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사람이라는 중매쟁이를 통해서 사람들과 상대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즉 하나님의 영이 임한 사람 예수가 그리스도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보내신 자, 대언자, 중보자, 예수+그리스도, 천사인 것입니다. 이런 대언자는 지금도 보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천년 전의 그 예수님은 이런 대언자 중보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고요. 지금도 이 땅에 보내지는 천사가 바로 이런 중보자의 사명으로 보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천사라고 하니 추수꾼 이만희 이런 단어들이 먼저 연상이 되는지 이단으로 많이 정죄를 하시더군요. 아닙니다. 추수꾼 천사는 성경에서 먼저 쓰여 있던 구절을 이만희 씨가 차용하여 자신의 유익을 위해 써먹은 것뿐이지 성경구절보다 이만희 씨가 먼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성경에 있는 구절들을 근거로 말씀드릴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주신 성경말씀은 지키라고 준 것이 아니라 못지킨다는 것을 알게 하심이었고 대체통로인 그리스도 즉, 예수그리스도인 천사를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이처럼 일하지 아니한 즉, 못 지킨다를 아는 자들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것일 뿐입니다. 즉, 일하면 복(이 땅의 복과 내세의 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 천사를 선물로 이 땅에 주심이 바로 선물로 주어지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선물로 받는 자들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것입니다. 이런 구원을 선물로 받는 자들은 아버지께 배워서 받게 될 뿐입니다. 율법은 죄인임을 알게 해서 어쩔 수 없이 불가항력적인 자신을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맡겨버리는 삶이 바로 그리스도에 의해 인도함을 받는 성도의 삶인 것입니다.


출처; 네이버카페 생명의 만나 남용모 목사

      유튜브                    남용모 목사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