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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택한 말씀을 보내서 구원을 이루십니다

작성자이드로|작성시간20.02.26|조회수63 목록 댓글 0

하나님은 택한 말씀을 보내서 구원을 이루십니다 


시편 107:20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
오늘날의 기독인들은 이천년 전 예수님이 우리를 고치시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만이 유일한 말씀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택한 성도들을 말씀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성경은 말씀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0:36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그 말씀이었던 예수 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도 말씀인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9:9“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성도들)을 말씀이라고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원문에는 ‘말씀들‘인 복수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미 앞에서 옷입은 자들로 복수로 기록되어 있기에 단수니 복수니 하는 것은 큰 문제될 게 없습니다. 그렇다면 말씀을 보내어 위경한 지경에서 건져내시는 그 말씀은 예수님 한 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말씀은 구약에서도 보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만이 유일한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보내지는 모든 자를 신구약을 불문하고 말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9:8
“주께서 야곱에게 말씀을 보내시며 그것을 이스라엘에게 임하게 하셨은즉”
그렇다면 이 땅을 사는 모든 자들 즉, 구원 받아야 할 자들에게는 반드시 말씀이 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땅을 사는 모든 자들은 위경에 처해 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모세가 보내져야 하는 것이었으며 사사들의 통치 시대에는 사사들이 등장하여 억압받는 이스라엘을 그 통치자들로부터 구원해 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약에는 죄 아래에서 신음하는 유대나라에 예수님이 오셔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일에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부활 승천 후에도 베드로와 바울 바나바 같은 사도들이 역시 하나님의 보내시는 말씀들이 되어서 하나님의 구원(새로운 창조) 행위에 쓰임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말씀은 시대마다 보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천년 전의 예수님 만이 유일한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천년 전 예수님은 그 이천년 당시의 말씀으로 보내어져 그 당시의 제자들을 위시한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영접함으로 구원을 받았던 사건이었지 오늘날을 사는 우리를 위한 구원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오늘날대로 이천년 전의 말씀이 보내졌던 그 모습으로 동일하게 말씀이 보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친히 천사를 보낸다고 하였지요. 그 천사들이 와서 땅 이끝에서 저끝까지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신다고요.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오늘날의 기독인들은 천사를 보낸다는 그 성경구절에는 괘념치 않고 이천년 전 그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는 유일한 구세주인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지요. 그 말씀이 보내져서 위경한 지경에 사는 자들을 구원한다고 하는데 그 위경한 지경이라는 그 지경은 어떤 상태를 말할까요? 지경이라는 단어는 ‘함정’ ‘파멸’이라는 의미의 단어인데 모든 인류가 파멸의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즉, 지옥에 갈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이지요. 


 이사야 53:8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
말씀이 이 땅에 보내짐은 바로 형벌받을 백성 때문이라고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내지는 말씀을 통하여서 만이 형벌받을 위치에 처한 사람들이 건져냄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천년 전 예수님을 믿어서 천국 간다는 말은 성경적 관점으로 봐도 상식에 맞지 않는 이론인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보내진 자는 이천년 전 예수님 한 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대마다 보내지는 모든 하나님의 보내신 자(종)가 말씀들인 것입니다. 지금도 이 땅에 하나님의 보내진 자가 있어야 그 보내진 자를 통하여서 만이 아버지께로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가로막고 있는 존재가 바로 천사들입니다. 왜 복수로 기록돼 있을까요? 시대마다 보내어지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유일한 구원자라고 하면 천사라는 단어가 복수로 기록돼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대마다 천사(사자; 하나님의 보내신 자)가 보내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는다고 하는 이천년 전의 그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뜬구름 잡는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이지도 않고 만날 수도 없는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상대할 때에 여러분과 직접 대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중보자를 세운다고 하잖아요. 그 중보자가 바로 천사이며 사자이며 말씀이며 하나님의 보내신 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로 가는 길(통로=과정)이 예수(말씀)라고 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라는 말씀(중보자)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갈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중보자는 반드시 사람대 사람으로 만나게 돼 있는 것입니다. 사람 대 사람이 만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구원은 성사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이천년 전의 예수님을 믿어서 천국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직접 사람과 사람이 대면하여 만남으로 구원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상세하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소자; 말씀, 보내신 자)에게 냉수 한그릇 대접한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이 양과 염소로 갈라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천년 전 그 예수님에게 냉수 한그릇 대접한 적이 없는 자들입니다.


이유는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만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만나고 대접하고 영접하는 그 말씀은 이천년 전 그 예수라는 말씀이 아니었다라는 확실한 결론인 것입니다. 각 시대마다 보내지는 말씀 그 말씀을 영접함으로 구원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시대마다 보내지는 하나님의 보내신 자가 바로 말씀을 보내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내심이 바로 성령을 부어주시기 위함인 것이고 구원을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의 행위라는 것입니다. 이런 구원의 방법 외에 다른 구원의 방법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요한복음 3:34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이렇게 시대마다 보내지는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하지요. 우리는 이천년 전의 그 예수님을 만난 적이 없기에 영접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천년 전 그 예수를 영접한 제자들과 그를 따르던 무리들이 영접한 자는 모두 구원을 받은 그런 모양으로 지금도 하나님의 보내진 자(말씀)를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이 땅에 대한 구원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으로 보내지는 그 형제와 화해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화해(화목)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냥 버려둔 채로 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마5;24-25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그 형제가 바로 말씀으로 시대마다 보내지는 자인 것입니다. 그 형제와 화목하는 자가 또한 모든 율법을 다 지켰다고 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켰다는 것은 또한 감옥에서(위험한 지경) 건져냄을 받았다는 말도 되고요.

출처; 네이버카페 생명의 만나 남용모 목사
       유튜브                       남용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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