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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을 구하는 악한 세대

작성자이드로|작성시간20.03.05|조회수79 목록 댓글 0

표적을 구하는 악한 세대


신구약 성경을 보면 많은 표적 기사들이 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표적을 구하는 것에 대해 악하다고 하고 있을까요? 

마태복음 16:4“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 가시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많은 표적을 행하였음에도 왜 앞뒤가 맞지 않는 듯한 뉘앙스로 답변을 하셨을까요? 표적은 겉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표적이라고 합니다. 표적은 인간이 행할 수 없는 기이한 행위로 다가오게 되는 현상들입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표적에 관심을 안 가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광야 빈들에서의 오병이어 칠병이어라는 사건만 봐도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만 따라 다니면 굶지 않을 수가 있었기 때문에 그 예수님을 찾아서 졸졸  따라 다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그들의 행태에 대해 예수님은 썩는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할 수 있는 양식을 위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주는 양식이 썩는 양식이었는지 영생하는 양식이었는지 도대체 어떤 양식이었다는 말일까요? 예수님의 이러한 책망을 들었던 무리들은 모두가 썩는 양식을 위해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즉 표적만을 보고 예수를 따랐다는 것입니다. 


표적을 보고 예수를 따른 것이 악한 행위였다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내려주는  참 하늘의 양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무리들은 그 떡을 썩는 양식으로 받아 들였다는 것입니다. 마치 돼지가 진주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발로 밟고 짓이기는 행태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따랐던 무리들이 예수를 보는 관점은 우리에게 배를 불리우게 하는 그런 능력있는 예수, 그 예수만 우리에게 있으면 우리는 걱정근심 모든 문제를 해결하여 주는 만능 해결사로서의 예수님이었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에게 나아와 표적 보여주기를 원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런 요구에 대하여 예수님의 주신 답변이 마16;4의 구절이었습니다.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줄 다른 표적이 없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요나의 표적은 무엇일까요? 바로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밤낮 3일을 지내는 것, 즉 죽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표적에 대해 결론내려 주신 것이 바로 3일간의 죽음이었습니다. 자신이 친히 여러 표적을 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죽는 이 죽음이 표적이라고 한정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도에게서의 유일한 표적은 죽음이라는 사실입니다. 


고린도전서 15:36“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표적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사인을 주다“, ‘가리키다’의 의미를 갖고 있는 단어입니다. 예수님이 표적을 행하였다면 ‘떡’이 최종적인 목적이었을까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떡을 주신 이면에는 어떤 다른 목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광야에서 모세를 따랐던 이스라엘이 먹은 그 떡에 대해 성경은 그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셨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32“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떡을 먹고 따랐던 썩는 양식으로 받은 자들은 그 떡이 예수가 주는 떡인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떡은 예수가 주는 떡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떡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예수를 믿어서 천국을 가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믿어서 천국가는 것이냐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친히 표현하시기를 내가 생명의 떡이라고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48“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성경은 예수님을 생명의 떡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떡을 내려주시는 분은 누구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이 예수라는 생명의 떡을 이 땅에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떡을 주시는 주체가 예수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인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오병이어 칠병이어 광야에서의 떡을 예수님이 주시는 것으로 알고 그 예수를 따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결국 그 예수님과 하나님을 동등 선상에 놓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이시고 하나님도 하나님이시라는 거지요. 이러한 오류를 성경은 정확하게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즉 두 주인을 섬기고 있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13“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성경은 성도에게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인들은 예수님과 하나님을 동등하게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신앙생활이라는 것이지요. 표적은 그 표적을 행하는 주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하는데 그 표적의 주체를 사람인 예수에게로 제한해버리는 오류를 양산해버린 것이지요. 


표적이라는 단어가 실체가 아니라 어떤 것, 즉 실체를 가리키는 나침판과 같은 것인데 나침판이 가리키는 그 목표점을 보지 못하고 나침판만 보게 되는 오류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봤으면 아버지를 봐야 하는데 그 예수만을 보고 하나님이라고 여겨버리는 오류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봤으면 아버지까지 봐야 하는데 그 아버지까지 보지 못하였으니 그 예수를 하나님이라고 여겨버린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9“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성도라면 그 예수를 통하여 아버지를 볼 수 있어야 참 성도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말씀하셨지요. 내가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라고 하셨지요. 길은 목적지로 가는 과정이지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목적지는 아직 남아 있는 것이지 길이 목적지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길을 지나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길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통로였을 뿐입니다. 그 통로를 목적지라고 믿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인데 오늘날의 교인들은 그 길을 목적지로 착각하고 있는 심각한 오류에 빠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표적이라는 단어에 대해 살펴보았는데요. 이 표적이라는 내용 안에는 여러 가지 현상들이 있습니다. 병을 낫게 하거나 죽은 사람을 살리거나 하늘에서 떡을 내리는 등등의 표적의 내용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표적들에 대해 예수님은 악한 세대가 구하는 것이라고 단언하였습니다. 왜 예수님은 이런 표적들을 행하였음에도 이런 표적을 악하다고 하였을까요? 결론은 지금 이시대에는 더 이상 이런 표적이 없음을 시사하는 언급입니다. 유일한 표적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성도가 죽는 죽음이 유일한 표적이라는 것입니다. 


표적의 역사를 살펴보면 구약에는 홍해의 기적이나 광야의 만나 사건 등등 수많은 기적(표적)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신약에서도 가나의 물의 포도주변형 사건 등등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표적을 보여달라고 하는 자들에게 더 이상의 표적이 없음을 단언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이나 베드로 등 예수와 한 생애를 회자했던 자들에게서도 역시 표적이 있었던 점은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표적이 있다면 유일하게 성도가 죽는 그런 표적 외에는 더 이상의 표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즉, 요나가 밤낮3일을 물고기 뱃속에서 죽은 죽음, 그 죽음 외에는 다른 죽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성도의 죽음이라는 표적 외에 더 이상의 다른 표적이 있다면 예수님이 말씀한 말씀과 배치되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 일어나는 신유은사니 방언의 은사니 어떤 신비한 체험이니 하는 것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표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표적을 근사하게 포장해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악한 세대가 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는 무관한 자기 스스로의 행위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표적에도 끼워들어갈 수 없는 유치한 술수에 불과한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유일한 표적은 바로 예수라는 아들을 주셔서 그 아들이 날마다 죽는 그런 표적 외에 다른 표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12“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성도에게 일어나는 표적은 바로 보낸 자가 하나님의 영에 의해 날마다 죽는 그 죽음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저 아들에게서 일하신다를 알게 된 자가  바로 예수를 보았으면 아버지를 본 자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서의 유일한 표적은 바로 하나님의 보내신 자, 아들이 구유에 누워 있는 것이 유일한 표적입니다. 구유에 누워있다는 것은 짐승의 먹이감으로 먹으라고(영접하라고) 뉘어 있는 것입니다. 표적으로 보낸 유일한 아들을 먹는 것(영접하는)이 영생하는 유일한 표적인 것입니다. 그 외에 다른 표적을 구하는 세대는 악한 세대일 뿐입니다. 그 아들이라는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먹고(영접하고) 그 아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내신 자(사자, 천사)임을 알게 된 자가 썩는 떡으로 먹지 않고 참떡으로 먹은 성도인 것입니다. 

아직도 이 아들이라는 떡 외에 다른 표적을 구하고 있다면 그것은 악한 세대입니다.


출처; 네이버카페 생명의 만나 남용모 목사

      유튜브                     남용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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