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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랑채 게시판

■ 왜? #복음(福音: #Gospel, #Good News)인가?

작성자나린푸실|작성시간20.03.19|조회수531 목록 댓글 0

#복음(福音)

  -  고대그리스어: εὐαγγέλιον 유앙겔리온, 라틴어: evangelium 에우앙겔리움



1. <AD70년> 로마제국의 베스파시안 황제의 큰아들 티투스(TITUS, 디도)의 로마 10군단이 유대왕국, 예루살렘에 있는 헤롯성전을 무너뜨리고, 대제사장이외엔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만일 들어오면, '야훼'가 마치 그리이스의 '제우스'처럼 벼락을 때려 죽게한다는 것이 유대인들의 믿음이었다.) 지성소까지 파괴한다는 소문에 유대인들은 헤롯성전이 보이는 올리브산등에 올라가 지켜보고 있었다.

2. 그때 로마군단이 지성소를 파괴하는것을 숨죽이고 보고 있던 유대사람들은 망연자실했다. <지성소를 파괴>했으나 <야훼는 침묵>했고 그에대한 아무런 인과응보 사필귀정의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광경에 유대인들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3. <유대의 전통과 가치>가 모두 무너져 버리게 되었고, 모세와 다윗의 <언약(구약)>의 선민의식마저 깨져버린 <유대인들의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 이전에 예수형제 야고보(유다),그리고 베드로등의 예수가 펼쳐놓은 '유대교 개혁운동'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AD70년 이후 종래는 야고보를 끝으로 유대민족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4. 앞서 언급한대로 유대전통의 가치가 무너져 버리자 미래에 대한 소망이 그들에게서 사라졌다. 이때 예수의 부활 사건이 대두되고 이것은 유대인 일부와 예수를 따르는 이들에겐 새로운 미래적 희망이고 오늘의 복음이 아닐 수 없었다.

5. 훗날, '하나님의 나라' 그 '평화의 나라' "the Peace Land of God, His Peaceful Land"의 복음의 선포로 새로운 하나님과의 계약이 훗날에 이루어 집니다. 위에서 언급한 유대교 개혁운동과 함께, (예수의 삶을 언급하지 않는) 바울등에 의해 기독교가 탄생했고, 지성소 파괴 사건 이후로 바울을 따르는 제자들에 의해 야훼 대신에 예수를 신으로, 구세주로 삼는, 그리스도교 운동이 더욱 더 힘을 받게 되었다.

6. AD70년, TITUS의 로마군단에 의해 유대왕국, 예루살렘의 헤롯성전과 함께 유대인의 지성소가 무너진 후, 거기서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는 드라마를 써서 보여줬다고 하는
예수의 자전적 드라마, 마가(Mark) , 그보다 한참 먼저 쓰여진 바울의 편지들에 없던 예수의 삶, 그의 자전적 이야기를, 전승들과 기록으로 남아있는 편린들을 모아 편집하여 엮어논 것이 마가복음이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복음(福音)의 시작이다. 하지만 마가복음에는 예수의 부활이야기는 없다.

7. "복음(福•音)"이라고 한것은, 그 당시만해도 인쇄술은 보잘것 없어서, 찌라시나 책으로 접할 수가 없었고, 단지 서신으로 쓰거나, 그리고 그것을 읽어 주거나 암송하는 소리로 들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고 비로소 알게 된다"는 말로, 그것을 복음(福音)이라고 했다.

8. 복음은, 호메르스의 '일리야스'와 '오딧세이'처럼, BC 4세기 전후에 시작된 자전적이고, 역사적이고, 서사적인 비극의 드라마 공연처럼, 서사시적 드라마를 낭독하거나 무대공연으로 보여주었다. 왜냐하면, 그때는 글로 표현하는 몇몇사람들을 빼놓고 거의 모두가 문맹자들이었기에, 드라마적 대본으로 민중들에게 보여주는 '표현예술'이 성행했던 그리이스-로마 문화시대였다. 팔레스타인-중동에서도, 이집트에서도 그때는 그것이 서구 국제 문화 조류였다. - (두번의 그리이스 여행 도중에 고대 그리이스 시대에  인간의 삶과 죽음의 테마를 주로 만들어 대중들 앞에서 무대를 펼쳤던 "드라마(DRAMA)라는 마을과 도시를 접했다)-  그리고, 오늘날 처럼 인쇄술이 발달된 후에야 비로소 복음서(福音書)가 된 것이다.)



=> 바울이 마가복음을 하찮은 글이라고 .... 부활 이야기가 없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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