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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랑채 게시판

월칭 마틸다(Waltzing Matilda)의 비극

작성자나린푸실|작성시간20.08.17|조회수316 목록 댓글 0


1. Band Played Waltzing Matilda

1955년, 우리 나라는 우리를 오스트랄리아의 아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유럽이 흔들리는 것을 멈출 시간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나에게 양철 모자를 주었습니다. 그들은 나에게 총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나를 유럽전쟁에 보냈습니다. 그때, 브라스 밴드는 Waltzing Matilda를 연주하기 시작했었고 배가 부두에서 멀어지면서. 모든 눈물 속에서 흔들어 대는 깃발들과 환호속에서 우리는 갈리폴리로 항해했습니다.


그 끔찍한 날을 기억합니다. 우리의 피가 모래와 물에 번져갈때 그리고 그들이 Suvla Bay라고 불렀던 그 지옥의 전장속에서 우리는 도살장의 어린 양처럼, 하나 둘 도살당하기 시작했고,

수많은 전우들이 죽어 가야만 하는 것을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Gallipoli battle tragedy  
Letter from the battlefield

https://www.irishtimes.com/polopoly_fs/1.2187870.1429880464!/image/image.jpg_gen/derivatives/ratio_4x3_w1200/image.jpg


War photographer Frank Hurley portrayed death everywhere at Passchendaele.

Credit:Australian War Memorial

Mud, death and despair at the Battle of Passchendaele

 



.......Waltzing Matilda, Waltzing Matilda
.......Who'll come a waltzing matilda with me?
.......And their ghosts may be heard
.......As they march by the billabong
.......Who'll come a-waltzing matilda with me...


떠날때 들려오던 월칭마틸다 밴드소리 ......

이젠 누가 나와 그 춤을 추겠는가 ......

사라져간 나의 전우들의 혼령이라도 온다면,

나와 함께 빌라봉 호수를 따라 행진하기라도하련만은 ....

이제 누구와 함께 월칭마틸다에 맞춰 행진할 수 있을까.....


이제서야 전쟁 가기전 어린시절의 배낭을 다시 걸머졌습니다.

그리고 나는 방랑자의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머레이의 녹색 분지에서, 먼지 투성이 오지로 ...... 나는 오늘도 마틸다 왈츠와 함께 행진하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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